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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찰나라도 열반의 체험 있어야 해탈

通達無我法者 2011. 3. 13. 20:07

 

 

한 찰나라도 열반의 체험 있어야 해탈

 

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五法蘊)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듯이 삼학(三學) 즉 세 가지 배움은 계.정.혜이다. 그리고 이 계율.삼매.통찰지의 삼학에다 해탈(解脫, vimutti)과 해탈지견(解脫知見, vimutti-n$aan*aa-dassana)을 더 하면 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 즉 오법온(五法蘊, pan$ca dhamma-kkhandhaa)이 된다. 이 다섯은 초기불전의 적지 않는 경들에서 “계의 무더기(siilakkhandha, 戒蘊), 삼매의 무더기, 통찰지의.무더기, 해탈의 무더기, 해탈지견의 무더기”(S3:24 등)로 나타나고, <십상경>(D34)에서 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五法蘊, pan$ca dhammakkhandhaa)라는 술어로 정착이 되고 있다.

 

한편 이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오법온은 우리 불교의 예불문에 계향.정향.혜향.해탈향.해탈지견향의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가운데 해탈(vimutti)이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열반의 체험이 바로 해탈이다. 초기불전에서 해탈은 가장 넓게는 네 가지 과(즉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증득을 뜻하기도 하고 아라한과의 증득을 뜻하기도 하고 열반의 실현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자의 경지를 체득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그것을 해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5법온

해탈지견…19가지 반조의 지혜

 

그런데 네 가지 과는 한 찰나라도 열반의 체험이 있어야 실현된다. 이러한 열반의 체험이 없으면 그 사람을 결코 예류자부터 아라한까지의 성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탈은 한 찰나라도 열반의 체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열반의 체험이 바로 해탈이다.

 

그러면 해탈지견이란 무엇인가? 반조의 지혜이다. 해탈지견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경전의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탈지견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주석서를 통해서 살펴볼 수밖에 없다. 여러 주석서에서 해탈지견은 반조의 지혜(paccavekkhan*aan$aan*a)를 뜻한다고 나타난다. 특히 몇몇 주석서에서는 “‘해탈지견’은 19가지 반조의 지혜이다.”(MA.ii.147 등)라고 19가지 반조의 지혜가 언급되고 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반조에는 ① 도에 대한 반조 ② 과에 대한 반조 ③ 버린 오염원들에 대한 반조 ④ 남아있는 오염원들에 대한 반조 ⑤ 열반에 대한 반조의 다섯 가지가 있다. 아라한에게는 남아있는 오염원들에 대한 반조가 없기 때문에 예류자부터 아라한까지의 성자들의 반조에는 모두 4×5-1=19가지가 있게 된다. <청정도론>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① 그는 ‘참으로 내가 이 도로써 왔구나’라고 도를 반조한다. ② 그 다음에 ‘이것이 내가 얻은 이익이구나’라고 과를 반조한다. ③ 그 다음에 ‘참으로 이들이 내가 버린 오염원들이구나’라고 버린 오염원들을 반조한다. ④ 그 다음에 ‘이들이 아직 남아있는 오염원들이구나’라고 뒤의 세 가지 도(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로써 버릴 오염원들을 반조한다. ⑤ 마지막으로 ‘이 법을 대상으로 삼아 내가 이 법을 꿰뚫었다’라고 불사(不死)인 열반을 반조한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반조를 가진다. … 아라한의 경우 남아있는 오염원들을 반조함이 없다. 이와 같이 모두 19가지 반조가 있다.”(Vis.XXII.20~21)

부처님의 가르침 즉 법(dhamma)은 이렇게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다섯 가지로 요약되기 때문에 초기불전에서부터 이 다섯을 법의 무더기(法蘊)라고 불렀던 것이다.

 

각묵스님/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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