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제7장 화엄종사상] 6. 화엄십종판 -(2) 대승사구

通達無我法者 2007. 4. 30. 11:49

제7장 화엄종사상

  6. 화엄십종판

   (2) 대승사구


화엄종의 교판인 십종판에서는 대승과 소승을 합하여 모두 열 가지로 나누어서 그 상이함과 심천을 밝혔습니다. 십종판 외에도 현수스님은 그의 저서인 탐현기(探玄記)에서 소승교와 대승교를 각각 따로 판별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발췌하여 해설하는 것은 그 중에서 대승교에 대한 것으로, 그는 모든 대승교를 네 가지로 나누어 교판한 것입니다. 그 명칭은 오늘날 자주 사용하는 대승시교(大乘始敎), 종교(終敎), 돈교(頓敎), 원교(圓敎)와는 다르지만, 그 기본 내용은 모두가 다 대승종으로서 이 대승종의 사상이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대승종에 네 구가 있다. 처음은 가(仮)를 포섭해서 실(實)을 따르는 것이요, 둘째는 가를 분별하여 실과 다르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가와 실을 합하여 변론하는 것이요, 넷째는 가와 실을 쌍으로 없애는 것이다.

就大乘宗하여 有四句하니 初는 攝仮從實이요 二는 分仮異實이요 三은 仮實合辯이요 四는 仮實雙泯이니라. [華嚴經探玄記;大正藏 35, pp. 117下 ~118上]


대승종에서 대승교를 분류하여 보면 네 구가 성립합니다. 처음의 ‘가(仮)를 포섭해서 실(實)을 따르는 것[攝仮從實]’은 가(仮)는 즉 색(色)이고 실(實)은 공(空)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색은 공을 따라가므로 일체의 색 이대로가 공이라는 말입니다. 곧 색즉시공을 말합니다. 두 번째의 ‘가를 분별하여 실과 다르게 하는 것[分仮異實]’은 이와 반대로 가는 전부 다 떼어 버리는 것으로 표현방법이 다소 어색하지만 색불시공(色不是空)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가와 실을 합하여 변론하는 것[仮實合辯]’은 가와 실을 합해서 분별하므로 쌍조를 말하는 것이고, 네 번째의 ‘가와 실을 쌍으로 없애는 것[仮實雙泯]’은 가와 실이 모두 없어져 사라지는 것이므로 쌍차를 말합니다. 이 네 구가 모두 합하여 가르침의 바탕이 되어 대승교가 성립되는 것이지 이 네 구를 떠나서는 대승교가 결코 원만하게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네 구는 결국 쌍차쌍조를 말하는 것이므로 쌍차쌍조를 제외하고는 결코 대승교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의 네 구가 (합하여) 하나의 가르침의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공과 유가 무애한 것을 대승법이라 이름한다. 말하자면 공이 유와 다르지 않아 유는 환유(幻有)요, 환유는 완연하여 환유 전체가 공이다. 유는 공과 다르지 않아 공은 진공(眞空)이요, 진공은 담연하여 진공 전체가 유이다. 그러므로 공과 유는 터럭만큼의 분별도 없다.

此上四句가 爲一敎体라 是故로 空有無碍를 名大乘法이니라 謂空不異有하여 有是幻有요 幻有宛然하여 擧體是空이며 有不異空하여 空是眞空이요 眞空湛然하여 擧體是有니라 是故로 空有無毫分別이니라.


쌍차쌍조인 중도에서 공과 유가 서로 원융무애하게 이루어진 것을 대승교라 하며, 이것을 떠나서는 대승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공(空)과 유(有)가 다르지 않다는 말은, 즉 유는 환유(幻有)로서 완연하여 환유 이대로가 공이므로 공즉시색이라는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또한 유와 공이 다르지 않다는 말은, 즉 공은 진공(眞空)으로서 가공(仮空), 단공(斷空)이 아니므로 진공이 담연하여 진공 이대로가 그대로 유이므로 색즉시공이라는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즉 원융무애한 중도는 항상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색과 공이 쌍조하고 색공이 쌍차하는 이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이론 전개를 하든지 간에 불교의 근본 입장은 이러한 이치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매번 늘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지마는 이 이치를 떠나서는 불교학이 존재할 수 없으니만큼 이것이 반드시 대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이치에 입각하여 공과 유가 삼팔선을 가르듯이 경계선을 긋지 못하고 색과 공이 무애자재하여 여기에서 대승불교의 기본교리 전체가 성립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