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20 상주물을 사사로이 씀을 경계하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03
20  상주물을 사사로이 씀을 경계하다   동산 혜공(東山慧空)스님 / 1096∼1158 
 

 동산 혜공(東山慧空:1096∼1158)스님이 여재무(余才茂)가 인부(짐꾼)를 빌어달라는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장하였다.
"지난날 외람되게도 보살펴 주신 은혜를 받고 헤어진 뒤, 또 은혜로운 편지를 받드니 더욱 자신의 부끄러움을 느낄 뿐입니다. 저는 본래 바윗골 사이에 사는 사람이라 세상사에는 무심합니다. 이는 재무(才茂)께서도 아시리라 여겨집니다. 지금은 장로가 되어 방장실(方丈室)에 거처하기는 하나 여전히 `수좌 혜공'일 뿐입니다.
사중살림은 한결같이 소임자에게 맡겨버리고 수입·지출의 장부도 모두 눈에 스치지를 않습니다. 의발(衣鉢)을 쌓아두지도 않고 상주물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외부의 초청에도 가지 않고 남의 도움을 청하지도 않습니다. 인연따라 안주할 뿐 애초에 다음날의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도 않습니다.
재무께서는 예로부터 도가 높다는 칭송을 받아왔읍니다. 그러므로 도에서 서로를 잊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인부 몇을 찾으시는데, 이 인부가 상주물에서 나오는지 이 혜공에게서 나오는지를 모르겠읍니다. 저에게서 나온다면 제게 무엇이 있겠으며 상주물에서 나온다면 그것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일단 사사로운 데 빠지고 나면 도적이 되고 마니 어떻게 선지식으로서 상주물을 도용할 수 있겠읍니까. 공께서는 관직에 몸 담으셨으니 좋은 일을 하셔야지 사중에서 이러한 일을 계획하시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또한 공께서는 민()지방 사람이라 아는 사람들도 모두 민지방의 장로들입니다. 한번 절에 욕심을 두게 되면 상주물을 다 훔쳐 자기가 차지하고 말 것입니다. 혹 그것으로 귀인과 우호를 맺거나 속가에 공급하거나 아는 사람을 대접하고 모신다면 그것이 사중의 스님네들이 쓰는 공용물〔十方常住 招提僧物〕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처사입니다. 요즈음 뿔을 달고 털을 뒤집어 쓴 채, 전생의 빚을 갚는 축생들 중에 이런 사람의 경우가 많습니다. 
이점을 옛날에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읍니까.
근래에 절집이 잔폐되고 승도가 쓸쓸한 것은 모두가 이런 탓입니다. 공께서는 우리를 이런 무리로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공이 결과적으로 신임을 받아 다른 사찰에서 허락 받았던 것도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으신다면 공의 앞날은 헤아릴 수 없는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어떻게 여기실는지 모르겠군요. 차가운 계절인데 가는 길에 몸조심하소서." 『어록(語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