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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安은 생生이고 반般은 멸(滅)이며, 마음은 인연이 수守는 도가 된다.
해설 들숨은 산소를 공급하여 세포에 활기를 줌으로써 정신을 맑게 한다. 즉 밖으로부터 생명력을 가져와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 날숨은 들어오던 숨이 그치고 나가는 것이므로 생의 극치에 이르러 멸하는 현상이다. 생명은 생과 멸의 되풀이다. 생만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생의 극치에서 멸이 있고, 멸의 극치에서 생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생과 멸은 상호 부정이 아닌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
들숨과 날숨은 무의식 속에서 행해지며, 그 무의식은 우리의 깊은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숨의 들어오고 나감도 있을 수 없다. 숨을 쉬는 것은 끊임없이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곧 마음이 인연이 되어 들숨과 날숨이 있게 된다. 이러한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곧 자연의 도리이다. 자연의 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코앞에서 이루어지는 호흡에 있다.
깨달음이란 들숨과 날숨이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라는 엄숙한 사실과 나의 본성이 생과 사 속에 있고, 호흡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의 참모습은 나의 참된 삶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고, 나의 참된 삶은 올바른 호흡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호흡은 육체적인 생리현상인 동시에 정신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올바른 호흡은 올바른 생리현상과 정신 상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호흡도 바르게 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숨의 들어오고 나감이 하나가 되면 무의식중에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게된다. 이런 호흡이 가장 바람직하다. 들숨과 날숨에 정신을 집중하여 그것이 한결같이 지속되면 드디어 호흡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나아가서는 무의식중에도 올바른 호흡이 이루어진다.
붓다는 호흡을 통해 우주의 진리를 알았고, 우주의 뜻이 바로 나의 뜻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삶은 일체 중생의 삶 그대로이다. 하늘을 나는 새, 물 속에서 노니는 고기, 땅 위를 기어다니는 미물에 이르기까지 숨을 쉬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생명은 호흡을 통해서 탄생하고 소멸한다.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생명이 탄생하고 유지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삶은 육체적인 들숨과 날숨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반드시 정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정신이 근본이 되어 육체적인 생리현상인 들숨과 날숨이 있게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존재가 인연에 의해 생기고 사라진다는 진리를 깨달은 붓다는, 우리의 마음이 인연이 되어 삶의 생과 멸인 들숨과 날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나가면 반드시 들어온다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지극히 평범한 이사실 속에 진리가 있다. 이는 우주의 뜻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며, 그 뜻을 지키는 것이 곧 밤이 되고 낮이 되는 것이요, 가면 오게 하고 만나면 헤어지게 하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은 나의 마음이 인연이 되어 그 도리를 지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올바른 호흡이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인 동시에 곧 도道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바로 내 속에 있다. 내 마음속에 있으며 들어오고 나가는 숨 속에 있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제29권 10에서 붓다는 이렇게 설법하고 있다.
"제자들이여, 들숨과 날숨을 생각하는 것을 잘 익혀야 한다. 그러면 몸이 피로하지 않게 되고, 눈이 아프지 않으며, 법을 관(觀)하여 즐거움에 머물 수 있고, 애착에 물들지 않게 되리다. 이와 같이 들숨과 날숨을 닦으면 좋은 결실과 큰 복리를 얻으리라. 그리하여 깊은 선정(禪定)에 들면 드디어 자비심을 얻고 미혹을 떠나 깨달음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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