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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安은 (마음이) 정定이 되고, 반般은 동요하지 않으며,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해설 호흡에 있어서 들숨과 날숨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들숨이 길든 짧든, 그 숨에 정신을 집중하면 마음과 몸이 안정된다. 몸이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가만히 있지 못하거나, 마음이 적정 순일하지 않고 불안하고 초조하거나 도는 혼탁하여 동요하는 것은 호흡에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을 들숨에 집중하여 생각이 한결같이 따르면 마음은 고요한 적정의 세계에 안주한다. 정定이란 마음이 고요하여 더없이 순일한 경지에 이른 상태이다. 이러한 경지를 삼매(三昧)samadbi나 등지(等至)라고 하며 정(定)이라고도 한다.
정에 들면 어떤 사물을 대하더라도 그 사물의 진상을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대상으로부터 받아들여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 그대로 분명하게 인식되어 적정함과 순일함을 잃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경지는 들숨에서 비롯된다. 만일 숨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마음이 착란을 일으켜 사물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광란을 일으켜 고통을 가져온다.
숨을 내보낼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숨을 길게 내보내거나 짧게 내보내면서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고행자들의 호흡수련이 건강이나 불사를 성취하기 위한 특수한 방법으로써 개척된 반면에, 붓다의 호흡법은 자연 그대로의 호흡을 명상함으로써 해탈에 이른다. 주어진 모든 법을 버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잡아함경》 제26권 <안나반나념경>에서 붓다는 이렇게 설법하고 있다.
"마땅히 안나반나(안반)의 염(念)(수의)를 닦으라. 비구가 안나반나의 염을 많이 닦으면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리하여 깨달음에 있어서나 보고 느낌에 있어서 고요하고 순일한 가운데 분명한 생각이 일어나 닦고 익힘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호흡이 고르면 몸과 마음이 안정된다. 호흡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과 생각을 같이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여 의식적으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의식을 통해서 잘못된 호흡을 올바르게 바꾸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대게 따로 떨어져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호흡하는 동안 마음이 제멋대로 달려나가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호흡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예컨대 마음이 어떤 일에 집착하여 골몰해 있을 때에는 들숨이 주가 된다. 따라서 나가는 숨이 줄어들게 되어 체내의 나쁜 독소가 그만큼 덜 배출된다. 탐욕에 끌려 있다든지, 마음속에 진도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든지, 슬픔이나 후회, 의심, 자포자기 등에 빠져 있으면 호흡도 고르지 않게 된다.
나가는 숨을 의식적으로 길게 내뿜는 것을 되풀이하는 동안에 호흡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이에 따라 마음도 순일한 적멸(寂滅) 상태로 가게된다. 이처럼 의식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중에 올바른 호흡이 이루어지면 마음은 절대 안정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제가지의 산란한 마음은 진정되고 고요한 마음이 찾아온다. 현대인들은 복잡한 사회생활 때문에 정신적인 안정을 찾기가 어렵고 불안이나 근심 속에서 살아가기 쉽다. 이런 생활을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진정제나 수면제에 의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몸이 좀 불편하면 우리는 흔히 약에 의존하려고 하나 이는 매우 잘못된 습관이다. 인간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가지고 있으며 생명을 재생시키는 힘도 갖추고 있다. 이런 힘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므로 잘 활용해야 한다. 혼탁하거나 산란한 마음, 불안과 초조, 비통함이나 분노 등은 모두 우리의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마음도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누구나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달을 수는 있지만 실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에 인간의 한계가 있다. 붓다는 평범하지만 깨닫기 어려운 것을 만인이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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