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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安)은 있음이요 반(般)은 없음이다. 마음이 있는 것만은 생각하면 도를 얻지 못하고, 마음이 없는 것만을 생각해도 도를 얻지 못한다. 있는 것만을 생각하지도 않고, 없는 것만을 생각하지도 않으면 이것이야말로 공과 정의 마음이므로 도를 따르는 것이다. 있다는 것은 만물을 일컫고, 없다는 것은 의혹을 일컬으니 역시 공이 된다.
해설 우리는 흔히 숨을 들이마시면 공기 중에 있는 산소가 코를 통해 폐 속으로 들어와 폐에 있는 피를 깨끗이 만들어 온몸으로 돌게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숨을 내뿜을 때에는 폐로 돌아온 핏속의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 우리 몸 속을 깨끗이 정화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들숨은 몸에 유익한 기운을 공급하고, 날숨은 체내의 나쁜 기운을 배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떤 실재하는 존재나 무, 즉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고정관념 속에서 호흡을 행하게 된다.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굳어지면, 그 관념에 집착하게 되어 호흡의 들어오고 나감이 순리를 잃게 된다. 있는 것만을 생각하여 숨을 들이마시거나 없는 것만을 생각하여 숨을 내보내면 호흡의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호흡은 들어오고 나가는 데 그 화가 있다. 들어오기만 하거나 나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들어오면 나가고, 나가면 들어와야 호흡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건강이 유지되고 마음의 안정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항상 '있다'거나 '없다'는 상대적 가치관에 끌려 어느 한쪽에 치우쳐 집착하기 쉽다. 그러나 어느 한 극단에 끌리면 도리에 어긋나며 진리에 역행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어느 한쪽 극단에 끌리지 않는 삶의 길인 중도(中道)를 가르친다. 이것이 공(空)이요 정(定)이다. 일상적인 호흡에서 들숨을 통해 산소를 들이마신다고 생각하면 '있다'는 고정관념에 끌리고, 날숨을 통해 탄산가스 등의 나쁜 요소를 배출한다고 생각하면 '없다'는 고정관념에 끌리게 되므로, 그것은 중도나 공이 아니다. 올바른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공이나 정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산소를 흡입한다거나 탄산가스를 뱉는다는 생각도 하지말고 무심(無心) 속에서 오직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만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한다는 개념이지만 사실상 이 세상에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집착일 뿐이다. 이 집착 때문에 대상이 없어졌을 때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있다'는 것도 없고 '없다'는 것도 없다. 따라서 만물도 만물이 아니므로 없어졌다고 해서 의혹에 빠질 필요도 없다. 만물이 있다는 고정 관념이나 없어진 데 대한 의혹의 고정관념은 수의, 즉 정신집중을 통해서 없앨 수 있다 정신집중은 긍정인 유(有)나 부정인 무(無)에 대한 고정관념과,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대한 집착을 없애 준다. 만물에 대한 긍정은 집착을 일으키며 부정은 자포자기와 허무에 빠지게 한다. '있다'는 데에도, '없다'는 데어도 치우치지 않고 공과 정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다. 호흡 역시 삶이라는 생명 현상의 하나이니, 올바르게 이루어지려면 공과 정의 상태에 있어야 함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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