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2-10. 악의 소멸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5:41

2-10. 악의 소멸

수식은 마음을 끊고자 한다. 숨에는 길고 짧음이 있으므로 마땅히 마음으로 그 길고 짧음을 다시 끊는다. 수의가 잘못되는 것을 그치고자 하기 때문이다. 잘못됨은 가히 지킬 것이며, 또한 가히 지킬 것이 아니기도 하다. 잘못된 것이 이미 다하면 마땅히 다시 시킬 바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설
호흡을 세는 것은 마음을 조절하여 잘못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숨과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하려면 숨의 길고 짧음에 일정한 질서가 있어야 한다. 숨의 들어오고 나감이 길고 짧음에 따라서 마음도 길고 짧게 집중되어 곧 마음을 끊게 된다. 마음이 끊어지면 잘못된 마음도 없어진다.

잘못된 마음이 곧 악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바르면 선, 바르지 않으면 악이라고 생각한다. 선행이란 바른 마음으로 하는 행위요, 악행이란 그릇된 마음으로 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악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신집중이 필요하다.

인간은 부모로부터, 아니 그 이전의 조상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어이 받았다. 그 능력은 성장하면서 자아의 세계를 형성해 간다. 이것이 스스로의 삶을 규정짓는다. 또한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거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도 한다. 우리가 보다 많은 것, 보다 넓은 세계를 보고 듣고 간직하려면 

자아의식으로 인한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자아의식이란 바로 우리의 지식, 의식, 사고 등을 말한다. 정신집중은 밖의 세상과 좁은 나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 자아의식을 활짝 열어 젖히는 일이기도 하다. 좁은 자아 속에 머물러 있으면 남과 단절되고 아집에 찬 에고ego에 갇히게 된다. 나아가 남을 해치고 자기만을 위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를 악이라고 한다. 자아의식이 사라져 무아의 세계에 있게 되면 세계가 활짝 열린다. 이때 너와 나의 관계가 새롭게 나타나 악을 떠나 선을 구축하게 되고 자비심, 이타적 행동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정신집중은 그릇된 자아의식을 깨뜨리는 작업이며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이기도 하다.

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의식의 벽을 뚫어야 하고 또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엄청나게 많은 자극을 추려내는 힘을 지녀야 한다. 다음으로는 넓은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심리학은 이것을 '무의식적 추리uncon-cious inferences'라고 하며, 동양에서는 직관(直觀)이라고 한다. 이것이 잘되었을 때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원만한 생명의 성취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창조력을 발휘하여 자신을 숙달시키는 일이다. 올바른 삶, 완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훈련시켜야 한다. 하나의 뚜렷한 목적을 향해 외곬의 길을 가는 것을 익숙해져야만 한다. 정신집중은 이러한 심리적 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이를 받아들여 입력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뇌 속에 입력된 '지향반응orient-ing reaction'은 생리적으로도 뇌파나 맥박, 그리고 피부 저항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습관화 이다. 

숨을 세는 것에서 시작된 정신집중이 악을 제거한다는 것은 자아를 해체하고 새로운 자아를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수피sufi나 기타요가 수행자들도 여러 방법을 수행 중에서도 명상, 곧 정신집중이 올바른 자각을 제한하는 장애물이나 구속을 물리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수피들은 평범한 자각을 깊은 잠이나 맹목적인 상태로 규정한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인 비베카난다Vivekaananda는 평범한 자각을 '술취한 원숭이'에 비교하기도 했다. 올바른 인간, 깨어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평범한 자각을 넘어서는 정신집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