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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식은 함께 뜻을 끊는다. 따르지 않으면 여섯 가지가 쇠퇴하기 때문이다. 서로 따르게 되면 여섯 가지 쇠퇴를 떠나고자 한다. 머무름〔止〕은 여섯 가지 쇠퇴를 물리치고자 한다. 관은 여섯가지 쇠퇴를 끊고자 한다. 환은 여섯 가지 쇠퇴를 받지 않고자 한다. 청정은 여섯 가지 쇠퇴를 멸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미 다하여 멸하면 곧 도에 따르는 것이다.
해설 호흡할 때 수를 세는 것은 마음에 눈이나 귀, 코, 혀, 기타를 통해 일어나는 욕심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쓸데없는 욕심을 일으켜 고통 당하고 자신의 생명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감각 기관은 고마운 것이면서 동시에 잘못 쓰면 우리를 멸망시킨다.
여섯 가지 감각 기능은 주관의 세계에 속에 있다. 주관은 객관에서 비롯된 것들을 취사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주관은 움직임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외부 세계에 이끌려 자기 자신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밖으로 달리는 마음을 차단하여 객관 세계에서 오는 자극을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으로 보지도 않고, 귀로 듣지도 않고, 코로 맡지도 않고, 피부로 감촉하지도 않고, 마음으로 느끼지도 않을 수는 없다. 우리는 눈으로 보되 보이는 것을 향해 마음이 멋대로 달려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귀로 듣되 들리는 것을 향해 마음이 달려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이처럼 보되 보지 않고, 듣되 듣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집착을 떠나서 자유자재로 상대하면서 그것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려면 밖으로 달려나가는 마음을 차단해야 한다. 호흡을 세는 것은 마음이 밖으로 달려나가지 않도록 하는 방편이다.
마음이 밖으로 달려나가 객관 세계에 집착하게 되면 육근(六根)이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여 우리를 쇠멸케 한다. 육근을 제어하는 것이 수행의 첫단계이다. 마음이 잘 길들여지면 객관적 대상이 다가올 틈이 없어진다. 마음이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게 되면 육근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여 생명의 쇠멸이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단계로는 아직 부족하다. 대상을 물리친다는 것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리친다는 마음까지도 사라진 상태에 도달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관조의 단계에서 그것을 끊어야 한다. 마음이 대상을 향해 달려가서 집착하게 되면 그 대상의 참된 모습을 알 수가 없다. 내 마음에 잘못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대상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객관을 의식하기 때문에 이런 상태 역시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객관을 의식하고 있는 한 그것은 아직 내 속에 있는 것이다. 객관이 내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내가 객관에 의해 점령당해 있다는 의미이다. 마음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자기 위치를 잘 지키고 있을 때 육근의 움직임은 쇠퇴하는 일이 없고 객관이 주관 세계에 나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무아(無我)의 세계는'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멸진한 세계이다. '나'라는 존재가 멸진하면 '너'또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나와 너가 없을 때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 이때의 너와 나는 있다거나 없다는 상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절대적인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비로소 무아로서의 나를 찾게 된다. 무아의 세계와 청정의 세계는 서로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서 비로소 진리가 살아나고 도에 따르는 삶이 펼쳐진다.
밖으로 달리려는 마음을 차단하고, 떠나고, 물리치고, 끊으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지막 단계에서는 완전히 없어진다.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을 예로 들어보자. 기분 나쁜 일이 마음에 남아 떠나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은 손상을 입는다. 그것을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을 때는 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음은 밖으로 달리고 우리의 육근은 손상을 입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보는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들리는 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좀처럼 잊혀지지 않던 그 일이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고 육근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객관 세계는 주관 세계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주관 세계 역시 객관 세계가 있으므로 존재한다. 이것도 저것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를 잘 살펴서 이것도 저것도 없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도이고, 이 도로 들어가는 길이 바로 안반수의이다. 수를 세는 것은 그 첫관문이다. 첫관문에서부터 길은 시작된다. 시작은 또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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