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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와 숨과 마음은 항상 영원한 것이 아니고 항상 고통이요, 공이요, 몸이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 (수를) 헤아리는 숨은 나가면 또한 멸하고, 들어오면 또한 멸한다. 이미 이것을 알면 도를 얻어 바로 마땅히 무상의 두려운 마음을 지닐 것이니, 이 마음을 얻으면 곧 (올바른) 숨을 얻는다.
해설 수를 세고, 마음이 숨의 들어오고 나감과 하나가 되는 안반수의에서는 항상 생각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 고통이며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있고 없다는 공의 도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먼저 호흡을 통해서 무상을 깨달아야만 한다. 모든 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호흡도 무상하다. 수를 셀 때에도 하나에서 시작하여 열로 끝낸다. 이는 생과 멸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에서 무한대의 수로 이어진다면 생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니 그런 법은 있을 수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므로 열에서 끝낸다. 생과 멸이라는 무상을 실천하면 진리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상한 인생을 더욱 절실히 느끼면 마음이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어, 마음을 한결같이 진리 그대로 간직하게 된다. 공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호흡을 통해 무념 무상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숨을 얻는다〔得息〕.'는 이런 경지를 말한 것이다.
숨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날숨이 멸해야 한다. 들숨의 핍팍 때문에 날숨이 멸하게 된다. 이것이 고(苦)의 모습이다. 또한 들숨이나 날숨이 생하고 멸하는 것은 절대적인 주체의 작용이 아니다. 숨 자체가 스스로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무아행(無我行)이다. 들숨이나 날숨은 항상 불변하는 것도, 서로 같은 것도 아니다. 곧 변하지 않는 지속〔常〕도 없고 균일함〔等〕도 없으니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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