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3-2. 마음은 수식의 스승이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5:45

3-2. 마음은 수식의 스승이다

수식을 얻지 못하는 자는 그 근본인 뜻을 잃었기 때문이다. 본래의 뜻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고요, 공이요, 몸이 아니다. 이 마음을 잃은 것은 전도(顚倒)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스승을 잃게 된다. 스승이란 처음 앉았을 때 첫 번째 들숨에서 몸의 편안함을 얻고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그 본래의 마음을 잃기 때문에 숨을 얻지 못한다.

해설
수를 세는 행위와 숨이 일치되면 수식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조화되어야 얻어진다. 정신과 육체가 조화되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의 조화를 통해 기쁨을 얻을 수 있다. 한 송이 꽃이 피기 위해서는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준비되고 서로 조화되어야만 한다. 조화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기 위한 조건이다. 조건이 갖추어지면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고, 그렇게되면 생명이 얻어진다. 수식을 얻었다는 것은 수와 숨이 조화되었다는 뜻이다. 수와 숨이 따로 있지 않고, 수가 수를, 숨을 떠난 상태가 조화이다. 즉 수와 숨이 둘이면서도 둘이 아닌 상태가 바로 수식을 얻은 상태이다.

숨과 수와 마음은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고 그 근본은 마음이다. 이미 말했듯이 마음에는 보다 깊은 곳에 있는 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마음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음이란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 받아들여져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면 경험을 통해 쌓인 습관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의 마음이 아니고 삶 속에서 이루어진 거짓된 마음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생명을 형성하는 근본이 되는 정신작용으로서의 마음이 있다. 이는 우리의 생명과 더불어 존재하는 참된 본래의 마음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세 가지 마음을 구별하여 다시 육단심(肉團心), 적취심(積聚心), 진실심(眞實心)이라고 한다. 육단심과 적취심이 거짓된 마음이라면 진실심은 참된 마음이며, 육단심과 적취심이 되어진 마음이라면 진실심은 근본적인 마음, 되게 하는 마음이다. 이와 같은 마음은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일체개고(一切皆苦), 온온개공(五蘊皆空)을 아는 마음이다. 이러한 근본 마음을 잃고 어지럽고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의 호흡은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으며 수를 센다 하더라도 차례대로 헤아리지 못하게된다.

근본 마음을 잃으면 마치 스승을 잃은 것과 같다. 스승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낙오되어 스승을 잃고 만다. 스승을 얻은 사람은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그를 따라가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얻어 수련을 쌓아나가면 호흡이 길고 깊게 행해지게 되어 복압력(腹壓力)이 생기고, 옆에 있는 사람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요하게 호흡하게 되고, 드디어 수를 떠나 몸과 마음이 안온한 가운데 삶을 즐기게 된다. 마음을 수식의 스승이라고 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비유이다. 스승이 올바르면 따르는 자가 바르게 되고, 스승이 그릇되면 따르는 자도 그릇되고 만다.《중아함경(中阿含經)》 제8권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으로 스승의 중요함을 설법하고 있다.

마치 소가 물을 건너듯
인도하는 자가 올바르지 않으면
일체가 바르지 않다.
이것은 근본이 되는 인도에 말미암는 것.
중생 또한 이와 같다.
무리 속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다.
인도자가 비법(非法)을 행해 
백성이 모두 고통을 받음은
왕의 법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밑에 있는 사람이랴.
법이 아닌 행위를 
백성이 알고 따른다.

마치 소가 물을 건너듯
스승이 가는 길이 바르면
따르는 자도 모두 바르다.
이것은 근본이 되는 인도에 말미암는 것.
중생 또한 이와 같다.
무리 속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다. 
인도자가 정법을 행해
백성이 모두 즐거움을 받음은 
왕의 법이 바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밑에 있는 사람이랴.
정법을 행하면
백성이 알고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