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3. 안반수의의 방법 - 1. 들숨과 날숨을 다섯씩 열까지 센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5:44

3-1. 들숨과 날숨을 다섯씩 열까지 센다

숨은 마음으로부터 생긴다. 생각과 숨이 합해서 하나의 수가된다. 숨이 끝까지 다한 수가 하나로 되고 또한 하나가 아니기도 하다. 마음이 밖에 있어서 숨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돈을 세는 것과 같다. 마음이 다섯에 있으면 수도 그와 같이 된다. 수식에서 먼저 수가 들어오는 까닭은 일곱 가지 악이 있고, 안에 세 가지 악이 있기 때문이다. (수를) 적게 쓰면 능히(악을)크게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수가 들어오는 것이다.

해설
숨의 수를 헤아릴 때는 숨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헤아려야 한다. 수를 헤아릴 때는 숨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마음을 집중시켜 수와 숨이 함께 끝나게 해야 하는데, 만일 수가 헤아려지지 않는다면 마음이 함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돈을 셀 때 오백원을 헤아려야 한다면 , 먼저 마음속에 5라는 숫자가 들어와 있어야 한다. 수와 숨이 합일하는 수식에 있어서도 수가 앞서고 숨이 뒤따라야 한다. 만일 숨이 앞서고 수가 뒤따르면〔息數〕, 즉 숨이 위주가 되고 정신집중이 뒤따르게 되면 잘못된 것이다. 붓다의 호흡법은 정신집중이 위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정신집중을 위해 숨을 세는 것이지 숨을 세기 위해 정신집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숨의 수를 세는 것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마음은 어찌하여 잘못된 상태에 있게 되는가?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마음이 거기 끌려가게 되는가? 정신이 집중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집중이 안된 상태에서는 온갖 악한 마음과 행동, 즉 앞에서 설명한 삼악(三惡)과 칠악(七惡)이 일어나게 된다.

숨을 셀 때는 시작부터 끝까지 숫자를 의식하면서 열까지 센다. 들숨과 날숨은 각각 다섯까지의 한계를 갖는다. 하나의 호흡은 들숨 한번과 날숨 한 번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들숨을 하나로 하고 날숨을 둘로 하여 모두 열 번을 하면 각각은 다섯번씩이 된다. 다섯 번을 한계로 삼는 이유를《解脫道論》제7권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스승께서는 안반념법을 닦는 네 가지 법을 설법하셨다. 곧 산(算)과 수추(隨逐)와 안치(安置)와 수관(隨觀)이다. 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답하셨다. 

'처음으로 좌선하는 사름은 숨이 처음 나갈 때부터 들어올 때가지 수를 세되, 하나에서 열까지 세고, 열을 지나지 않는다.' 

다시 이렇게 설법하셨다.

'하나에서부터 다섯에 이르되, 다섯을 지나지 않도록 한다. 마음을 (떠나지) 않게 하여 수를 세며 수를 떠나게 한다.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따라서 마음이 머문다. 이를 산(算)이라 한다."
또한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제8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란 수행자가 교묘한 방법으로 마음을 머물게 하여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되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을 하나로 하여 깨닫게 한다. 만일 마음이 흐트러지면 수가 줄거나 늘기도 하며 혹은 어지러워진다. 수가 준다는 것은 둘이 하나로 작아진다는 의미이다. 수가 는다는 것은 하나를 둘로 센다는 뜻이다. 수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숨이 나갈 때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들어올 때 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으면 수가 균등한 상태이다. 숨이 다섯 번 들어오고 다섯 번 나가는 것을 십수(十數)라고 한다. 만일 수행자가 수를 헤아릴 때 십수의 중간에서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다시 돌아와 하나부터 헤아리기 시작한다. 만약 십수가 다 차면 어지럽든 어지럽지 않든 반드시 돌아와 다시 하나부터 일으킨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열을 넘지 않고, 마음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열에서 감하지 않는다. 위에 (하나에서 열까지의 가운데에 있는 모든 수를 포함하여) 더 많은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들숨과 날숨으로 나누어 하나에서 열까지 세라고 설명하고 있다. 들숨과 날숨을 합해서 열을 헤아림으로써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을 수 있다. 흐트러진 마음이나 지나친 집중은 극단에 속한다. 불교의 가르침은 호흡에 있어서도 항상 중도를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