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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숨과 날숨이 다른 것은 날숨은 생사의 요소가 되고 들숨은 생각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날숨이 아픔과 가려움의 요소가 되고 들숨이 인식의 요소가 된다. 이렇게 그 쓰임이 다르다. 도인은 마땅히 이 뜻을 분별한다.
들숨은 죄를 받지 않고, 날숨은 죄를 제거하며, 수의는 죄에서 떠난다. 들숨은 인연을 받고, 날숨은 인연에 이르며, 수의는 인연을 떠나지 않는다.
해설 이미 설명했던 불교의 오온설(五蘊說)(오음설(五陰說))을 다시 상기해보자.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크게 정신〔名〕과 물질〔色〕로 나누어진다. 정신은 다시 객관 세계의 사물을 받아들이는 감수작용〔受〕과 그것을 다시 정리하여 생각으로 나타내는 사고작용〔想〕, 또 그 생각을 통해서 일어나는 충동적인 욕구〔行〕와 이 욕구에 의해서 판단하거나 인식하는 작용〔識〕으로 나뉜다. 결국 인간은 이 네가지 정신적 요소와 육체 기관의 작용을 통해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다섯 가지 요소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空)이다. 만일 이 오온을 실체적인 존재로 보게 되면 집착이 생겨 윤회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고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오온은 들숨과 날숨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호흡을 멈추면 우리의 몸과 정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흡과 오온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들숨은 오온 중 어떤 것과 관계가 있고, 날숨은 또 어떤 것과 관계가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관련되어 있다.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에 의하면 법은 법대로, 사물은 사물대로 모두 관련을 가지면서 서로 돕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들숨과 날숨은 각각 특별한 존재의의를 갖고 있다. 들숨과 날숨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존재의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날숨이 생사(生死)의 요소가 된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자. 오음중에서 색과 수에 속하는 요소는 고뇌의 원인이 된다. 주관이 객관 세계를 받아들이면서 고뇌가 생기기 때문에 색과 수를 생사음(生死陰)이라고 한다. 생과 사는 고뇌의 대표격이다. 날숨이 바르지 않으면 고뇌가 생긴다. 실제로 날숨은 체내의 이산화탄소 등을 밖으로 내보내 독소를 제거하니, 제대로 쉬지 못하면 독소가 나가지 못해 고뇌가 심해진다. 이와 반대로 들숨은 생각의 요소, 즉 사상음(思想陰)이 된다. 들숨이 생각의 근본이 된다는 말이다. 숨이 들어오지 않으면 산소 공급이 끊어져 모든 정신작용이 중지된다.
때에 따라서 날숨은 아픔과 가려움의 요소인 통양음(痛痒陰)이 되기도 한다. 호흡은 고통을 더해 주기도, 없애 주기도 한다. 바르게 하면 고통을 없애 주지만 잘못하면 고통을 가중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충분치 못한 날숨을 고통의 원인이라고 한 것이다. 한편 들숨은 정신활동의 근간이 되는 인식의 근원이 된다. 숨을 깊이 들이켜 많은 산소를 흡입하면 정신이 상쾌해지고 사유와 인식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불교 명상법의 요결은 이런 호흡의 의의를 깨닫는 데에 있다. 들숨으로 정신활동이 이루어지고 날숨으로 인간고가 해결될 수 있다면 그 숨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호흡은 산소의 흡수나 이산화탄소의 배출이라는 과학적인 차원에서만 의의를 갖는 것이 아니다. 호흡에는 생명 현상의 근원을 지배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불교는 호흡에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 일체의 사물에서 종교적, 철학적 뜻을 발견함으로써 사물의 존재 가치가 올바르게 정립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호흡과 정신집중은 우리의 행위를 규제하고 인연을 좌우하기도 한다. 여기서 들숨은 죄를 받지 않게 하고, 날숨은 죄를 제거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청소년 범죄의 발생 원인을 조사하여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범 청소년들의 호흡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즉 얕고 불규칙한 호흡으로 인해 산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깊고 긴 숨으로 충분히 산소를 흡수하고 나쁜 것을 배출하면 생리현상뿐만 아니라 정신작용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죄를 받아들이지도, 짓지도 않게 된다.' 는 말이다. 죄란 간단히 말해서 잘못된 생각이며 행위이다. 호흡이 올바르게 행해지면 신체기능과 정신활동이 올바르게 발휘되어 나쁜 생각도 생기지 않고, 나쁜 행위도 하지 않게 된다. 더욱이 정신이 집중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이나 행위가 끼여들 틈이 없게 된다.
숨과 정신집중은 인연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연이란 오고가는 법으로 오면 반드시 간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으며,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인연이란 인(因)과 연(椽)이 합쳐진 것인데, 인은 직접적인 원인이요 연은 간접적인 원인이다. 인연은 '연'이 근본이 되고'인'이라는 말이 덧붙여져 이루어졌다. 연은 범어의 프라탸야pratyaya를 번역한 것이다. 'pra-ti-aya', 즉 '∼로 향해서 가고(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들숨은 받는 인연이 되고 날숨은 가는 인연이 된다.'고 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연은 오는 인연을 받아들이고 가는 인연을 가게 하기도 한다. 인연에 따라서 산다는 말은 오는 인연을 받아들이고 가는 인연을 가게 한다는 뜻이다. 오는 인연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가는 인연을 가지 못하게 하면 우리의 삶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숨에 있어서도 인연법을 그대로 따르려면 오는 인연인 들숨을 잘 오게 하고, 가는 인연인 날숨을 잘 가게 하는 것이 도리이며, 그렇게 하면 건강과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인연에 따르려면 인연을 떠나지 않고 인연법 그대로 행해야 하며, 오고가는 것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한다. 그래서 '수의는 인연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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