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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기를, 무엇이 열의 수를 넘지 않게 하고, 열보다 덜하지 않게 합니까? 답하되 숨이 이미 다했는데도 아직 수를 세는 것이 넘는 것이고, 숨이 아직 다하지 않았음에도 수가 끝나는 것이 덜한 것이다. 수를 잃는 것도 잘못이요, 미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니, 이를 두 가지 잘못이라고 한다. 둘에 이르러 숨이 흩어지면 짧은 숨이 되고, 아홉에 이르러 숨이 흩어지면 긴 숨이 된다. 열의 숨을 얻으면 쾌적한 숨이 된다.
해설 수를 세는 방법을 설하고 있다. 앞에서 여러번 말했듯이 수(數)·수(隨)·지(止)·관(觀)의 네 단계에서부터 들어간다. 첫 단계인 수를 산(算), 둘째 단계인 수를 수추(隨逐), 셋째 단계인 지를 안치(安置), 넷째 단계인 관을 수관(隨觀)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해탈도론(解脫道論)》제7권의 설명을 다시 상기해 보면, 수를 세어서 열을 넘거나 열에 못 미치면 잘못된 수식이다. 하나에서 둘까지 세고 그만 수를 잃으면 짧은 숨이 되고, 아홉까지 세고서 잃으면 긴 숨이 된다. 이와 같이 짧거나 긴 숨은 올바른 안반념이 아니다. 반드시 흩어지지 않고 열까지 수를 세어야 한다. 그 후에 다시 하나로 돌아가 열까지 센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은 숨과 하나가 되어 고요한 상태로 들어가기 시작하고, 이윽고 쾌적한 호흡이 행해지게 된다. 열까지만 세는 이유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가장 적당한 수가 열이기 때문이다. 열에 미치지 못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열을 넘으면 수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이는 직접 실행해 봄으로써 알 수 있다.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도 집착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흩어지거나 집착하지 않는 중도를 가기 위해 열까지만 센다. 하나에서 열까지의 수들은 모든 수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더할 필요도, 덜할 필요도 없다.
처음 호흡수련을 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심하게 산란해지면 열까지 세지 않고 다섯에 그칠 수도 있다. 다섯에 이르러서 다시 하나로 돌아온다. 이렇게 하여 호흡과 마음이 서로 따르게 되어 쾌적함을 느끼면 흥미가 생기고, 흥미가 생겨 마음의 산란이 바로잡히면 차원을 높여 열까지 세면 된다.
열을 넘으면 집착이 생기니, 이를 취심(聚心)이라고 한다. 마음이 흩어지면 산심(散心)이라고 한다. 취심과 산심은 나쁜 것이므로 이들을 양악(兩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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