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3-7. 호흡을 통해 인연법을 발견한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5:53

3-7. 호흡을 통해 인연법을 발견한다

도인이 안반수의를 행하여 마음을 그치려고 한다면, 어떤 인연으로 마음을 그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안반수의를 설하노니 들으라. 안이란 무엇이고 반이란 무엇인가. 안은 들어오는 숨을, 반은 나가는 숨이다. 생각과 숨이 서로 떠나지 않으면 이것이 안반이요, 수의는 마음이 그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해설
붓다의 제자 한 사람이 물었다. "수행하는 사람이 안반수의를 닦아서 마음을 그치게 하고자 할 때 어떤 인연으로 그치게 할 수 있습니까?" 붓다가 이렇게 답했다. "먼저 안은 숨이 들어오는 것이고, 반은 숨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나가는 숨과 들어오는 숨이 서로 다르면서도 같이 합하여 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중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남자와 여자, 해와 달, 밤과 낮, 선과 악,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 등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르면서 하나로 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경솔하고 게으른 사람은 침착하다. 호흡도 마찬가지이다. 들어오는 숨은 몸에 이로운 산소를 흡수하지만 나가는 숨은 몸의 독소를 뿜어낸다. 이는 인연법에 의한 작용으로서, 숨의 인연을 잘 살리려면 들숨과 날숨을 서로 떠나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서도 우주의 진리를 간파할 수 있다. 연기(緣起)인 공의 도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 육체와 정신등 모든 것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고 이것과 저것이라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원론(二元論)은 아니다. 이것과 저것이 대립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도 대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양자(量子)이론은 정신과 물질이 엄격하게 분리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소련의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바이츠제커박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열린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자 이론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엄격하게 분리될 수 있는 대상이나 사물이 없다. 전통적인 물리학과는 달리 현대 물리학에서는 정신과 물질의 화해가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붓다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이 사실을 통찰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것은, 물질이나 마음이 실체가 없으면서 이것과 저것의 화해로써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물리학이 발전되면 될수록 붓다의 가르침을 보다 실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은 사실을 과학적으로 실증하는 데에 그칠 뿐이지만, 붓다는 그것을 우리의 삶에서 살려내도록 가르치고 있다.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사물의 구조에 따라 그것을 살릴 수 있다. 유물론이나 유심론의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견해는 사물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한다. 즉 그 사물을 제대로 살릴 수 없게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올바르게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호흡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에 대해 정확히 하면 하나의 호흡 현상 속에서 우주의 깊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달마다라선경(達摩多羅禪經)》의 제5 <수행방편도승진분(修行方便道升進分)>에 있는 설명을 통해 안반수의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비구여, 안반념의 공덕에 머무는 것〔功德住〕, 더욱 올라가서 나아가는 것〔升進〕은 능히 지혜를 더하게 한다. 내가 순차로 이를 설하노니 공덕에 이미 머물렀으면 더욱 나아가 수행하여 올라가도록 하라.

수행은 마음을 코 끝에 굳게 머물러 있게 하고, 생각을 전념하여 분명하게 하며, 올바르게 관(觀)하여 바람의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에 의지한다.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매어 굳게 머물게 하여, 생각을 이어 나가서 잊지 않으면 그것이 공덕에 머무는 첫 단계이다. 이런 공덕을 얻어 머무르게 된 후, 방편을 일으켜 공덕을 더 얻으려고 할 때 거기 머무르면 곧 더욱 올라가게 된다. 더욱 진전이 있을 때에는 공덕도 더욱 생(生)한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더욱 나아가면 공덕에 머물게 된다.

들숨과 날숨이 올바르게 이루어진 모습은 이러하다. 공덕과 그릇된 허물, 숨의 가벼움과 무거움, 차가움과 뜨거움, 부드러움과 거침, 껄끄러움과 매끄러움 등을 알아서 들숨과 날숨을 섭수(攝受)한다. 이를 여러 감각 기관에 받아들여 그와 관련되는 객관 세계에서도 이것을 섭수하여 고요하게 머무르게 된다. 밖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되돌려 섭수하는 뜻도 이와 같다. 바람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을 아나(阿那)라고 한다. 마음이 관련된 것에 끌려 따라 나가면 그치게 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고, 마음이 관련된 것에서 일어나면 다시 억제하여 멸하게 한다. 수행하여 관이 더하면 이를 억제하여 지(止)에 따르게 한다. 만일 수행하여 지가 더하면 이를 일으켜서 관에 따르게 한다. 견(見)이 더하면 독 촉(觸)으로써 하고, 촉이 더하면 독 견으로써 한다. 사대종(四大種)을 장양(長養)함은 마땅히 숨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라. 사대(四大)(地·水·火·風)가 다시 증익하면 수행하는 사람은 사대에 집착한다. 들숨의 힘은 고요히 머물게 하며, 선법(善法)을 일으키고 악을 능히 없애 나가게 한다.

숨이 짧아지면 점차로 멸하여 마음이 안정된다. 세존께서는 이를 아나(阿那)라고 하셨다. 또한 반나(般那)의 모습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독 터럭의 모든 구멍과 숨의 길을 깨끗이 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이니, 처음은 들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일어난다. 수행할 때에 여러 감각 기관이 연에 따르고, 마음이 그에 따르는 것을 날숨, 즉 반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