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3-11. 도에 드는 경지에 이른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5:56

3-11. 도에 드는 경지에 이른다

수식은 홑이 되고, 상수는 겹이 되고, 지는 한결같은 마음이 되고, 관은 아는 마음이 된다. 환은 도(道)를 행하고, 정은 도에 들어간다.

해설
다시 안반수의의 여섯 단계를 정의하고 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세는 것이 수식이다. 이때는 마음속에 수만 있다. 다른 생각을 끊고 오직 수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생각을 한 생각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순수한 세계로 가는 방편이다. 선에 있어서도 화도(話頭)를 잡는 것은 복잡한 생각을 끊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이 하나로 정리되면 나가거나 들어오는 숨에 따라서 마음도 같이 움직이게 된다. 숨의 길고 짧음, 숨이 머무는 곳의 넓고 좁음, 또는 숨이 멀리 나가거나 가까이 나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주관과 객관이 대립하지 않고 하나가 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주관은 주관대로 객관은 객관대로 존재한다. 숨이 객관이고 생각이 주관이 다. 이들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다음으로 마음을 몸의 어느 한 곳에 머물게 있게 한다. 곧 지(止)이다. 예를 들면 숨이 코로 들어오고 나갈 때, 코끝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코끝이라는 대상에 대한 생각도 없이 하나의 마음만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객관이 주관으로 들어온 것이다.

관의 단계에서는 한 곳에만 마음을 머물게 하지 않고 바라는 바에 따라서 머물게 한다. 예를 들어 꽃을 보려면 꽃만을 보고,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보려면 그것만 본다. 기쁠 때에는 기쁨을 보고, 슬플 때에는 그 슬픔을 보게 된다. 이 경지에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인 색, 수, 상, 행, 식의 어떤 것이라도 뜻에 따라 관찰하게 된다.

환의 단계에서는 앞의 지나 관으로부터 전환되어 사념처 등을 일으킨다.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사념처란, 몸이 청정한 절대 가치의 세계가 아니고, 마음의 즐거움도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며, 또한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우리의 마음이 밖으로 달려나갔다가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와야 비로소 일어난다. 이렇게 됨으로써 진실한 진리의 세계로 가게 된다. 어떤 것이 진리이며, 어떤 것이 진리가 아닌지를 관찰해서 알지 않으면 진리에 도달할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지관(止觀)의 단계를 지나서 진리를 행하는 단계에 이른다. 환의 단계란 이런 것이다.

마지막 청정의 단계에서는 모든 번뇌를 없애고 진실 그대로의 세계에 있게 된다. 이런 경지에서는 사선근(四善根)으로부터 무간(無間)에 들어가고, 학(學)으로부터 무학(無瑕)에 이른다고 한다. 사선근이란 첫째, 불 앞에는 더운 기운이 있듯이 설사 악업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설사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착한 본성을 버리는 일이 없다. 셋째, 착한 본성이 흔들리지 않고 넷째,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게 착한 성품을 가지는 것이다. 무간은 반드시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는 단계다. 무학이란 더 배울 것이 없는 최상의 세계를 일컫는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제17 <안반품(安般品)>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때 세존이 나운(羅雲)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시니 나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말씀에 예배하며 세 번 돌은 후에 안타원(安陀園)으로 갔다. 한 나무 밑에 앉아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결가부좌하였다. 다른 생각 없이 마음을 코끝에 두고 숨이 길게 나가면 길다고 알고, 숨이 길게 들어오면 길다고 알고, 또한 숨이 짧게 나가면 짧다고 알고, 숨이 짧게 들어오면 짧다고 알고, 또한 나가는 숨이 차면 차다고 알고, 들어오는 숨이 차면 차다고 알고, 또한 나가는 숨이 따뜻하면 따뜻하다고 알고, 들어오는 숨이 따뜻하면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다. 몸을 관찰하여 들숨, 날숨이 모두 이러함을 알았다.

때로 숨이 있으면 있다고 안다. 때로 숨이 없으면 또한 없다고 안다. 만약 숨이 마음으로부터 나가면 마음으로부터 나간다고 알고, 또한 마음으로부터 들어오면 마음으로부터 들온다고 알았다. 이때 나운은 이와 같이 사유하고 욕심이 곧 해탈을 얻어 다시 악함이 없으며, 깨닫고 관찰함에 기쁨과 평안함을 얻는 초선(初禪)에서 놀며, 깨닫고 관찰함에 스스로 기뻐하여 일심으로 깨달음이 없고 관찰함에 스스로 기뻐하여 일심으로 깨달음이 없고 관찰함이 없는 삼매의 기쁨인 이선(二禪)에서 논다. 다시 기쁨조차 없고 오로지 몸의 즐거움을 알고, 성현의 가호를 구하는 것으로 기뻐하는 삼선(三禪)에서 놀며, 저 고락의 길이 멸하여 다시 근심과 고(苦), 낙(樂)이 없고 생각이 청정한 사선(四禪)에서 놀아 삼매 속에서 마음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었다."

'청정함은 도에 들어간 것이 된다.'는 삼매의 청정한 마음이 모든 근심 걱정이 없고 번뇌가 사라진 세계임을 뜻한다. 이 세계에 들어가야 도에 들어간 경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