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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가는 숨이 멸하면 들어오는 숨이 생한다. 들어오는 숨이 멸하면 나가는 숨이 생한다. 없기 때문이다. 곧 사람의 마음과 만물의 마음도 일어나면 이미 없어지고, 사물은 생겨나면 다시 사라진다. (본래) 없기 때문이다. 나가는 숨이 아니면 들어오는 숨이요, 들어오는 숨이 아니면 나가는 숨이다. 아니라는 것은 숨이 나갈 때 마음이 들어오는 숨을 생각하지 않고, 숨이 들어올 때 마음이 나가는 숨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아니라고 말한다. 중(中)을 믿는다는 것은 곧 도에 들어감이니, 중은 도인 인연을 보고 도를 믿는다. 이것이 중을 믿는 것이다.
해설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이다. 실체란 불변하는 실존적 본체이다. 우리의 몸은 다섯 가지 구성 요소인 오온에 의해 존재하나 그 구성요소는 실체가 없다.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정신적인 것도, 물질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호흡도 예외일 수 없다. 들어오는 숨, 나가는 숨은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는 인연이므로 공이다. 따라서 나가면 반드시 없어지고 그 반대인 들어오는 숨이 생한다. 들어오는 숨도 있으면 멸하고, 따라서 그 반대의 것이 생한다. 이와 같이 있으면 없어지고 다른 것이 생한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곧 삶이다. 이때의 죽음이나 삶은 절대적인 죽음이요, 절대적인 삶이다. 죽음의 상대적인 가치로서의 삶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절대적인 죽음이요 삶이다. 즉 상대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이다. 죽음에 있어서 삶이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삶에 있어서도 삶이나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음도 아니고 삶도 아니다.
숨이 나갈 때 들어오는 숨을 생각하지 않으면 상대적인 차원을 초월한 것이다. 숨이 나간다는 생각이나 들어온다는 생각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마음이 없으면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나가는 숨에서 들어오는 숨을 생각하지 않고 들어오는 숨에서 나가는 숨을 생각하지 않으면,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이 같이 있으면서도 모순되지 않고 조화된다. 이처럼 나간다는 생각도 없고 들어온다는 생각도 없이 나가고 들어오는 숨이 중(中)의 실천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중을 떠나지 않으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려면 중을 실천해야 한다. 중을 실천하면 도(道)가 인연임을 보게 되고, 그 인연에 의해서 이것과 저것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거역할 수 없으며 따라서 다소곳이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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