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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숨은 보시로 복을 짓는 것과 같으니, 일체의 선법이 이미 일어나면 곧 멸한다. 하물며 다시 다음의 생각이랴? 익혀진 죄행이 또한 무수한 옛 세상에서 현세로 향하였으나 마음은 이와 같지 않음이 상수이다. 다른 사람도 이와 같아서 이미 깨달아 안 것은 마땅히 끊는다. 이미 끊은 것은 안과 밖의 마음을 마음이 관하여 그친 것이다.
해설 보시는 복을 짓는 선행이다. 그러나 일체의 선행도 영원한 복을 짓는 행위는 아니다. 일체의 선법도 한 번 일어나면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복을 짓지만 그 마음도 일어나면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을 일으킬 때 일으키고, 없앨 때 없앨 수 있어야 한다. 생과 멸이 무상한 속에서 생과 멸을 뜻대로 하는 것이 바로 상수이다. 숨이 들어오면 나가고, 나가면 들어오는 것에 따라서 마음도 나가고 들어오므로 숨의 생멸에 따르게 된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이 법에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가에 집착하면 법을 따르지 못한다. 가령 죄를 짓는 버릇이 생기면 그 버릇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죄를 떠나지 못한다. 이는 마음의 생멸법에 따르지 않아서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지식도 끊을 때는 끊어야 하니, 관념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지식까지도 끊으면 곧 마음이 마음을 관찰하여 그치게 한 것이다. 마음이 마음을 관하여 임으로 마음을 일으키고 없앨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호흡에 따르게 하여, 호흡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지면 다시 생기는 도리를 확실히 터득해야 한다. 그것을 마음 자체의 모습으로 익혀야 한다. 안반수의법은 이러한 힘을 얻는 호흡 명상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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