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9-8. 無爲야말로 正에 이르는 길이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7:36

9-8. 無爲야말로 正에 이르는 길이다.

근본을 바르게 하는 바는 각자 다르게 행한다. 무위로써 근본에 맞서고, 구하지 않음으로써 올바름에 맞선다. 무위로써 무위에 상대한다. 떳떳하지 않음으로써 도를 상대한다. (능히)없고 있게 함으로써 또한 없고 있음에 맞소고, 또한 없게 하고 있게 하는 근본과 없게 하고 있게 하는 올바름이 가진 바가 없게 된다.

해설
사물의근본이 올바름이라면 모든 것은 근본으로부터 비롯되므로 올바라야 한다. 그러나 이미 근본으로부터 멀어져서 바르지 않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니 이는 잘못이다. 근본이 올바르다면 나타난 세계도 올바라야 한다. 그러나 근본 세계인 주체(能)와 나타내어진 세계인 객체(所)가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다. 마치 뿌리와 가지와 잎, 꽃과 열매가 근본은 같으나 각각 나타난 모습이 다른 것처럼 같으면서도 같지 않고, 같지 않으면서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관계라고 할 것이다. 이른바 불이(不二)의 관계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나타내고 나타내어진 것과의 사이에 둘이 아닌 관계에 있다. 이것이 또한 연기의 도리이다. 다시 말하면 뿌리가 바르고 나타난 모습도 바른데 그 작용은 각각 다르다. 나타난 모습은 같으나 작용은 다른 것이다. 또한 작용은 같으나 모습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물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인연이 모여야 하고, 원인과 결과는 어느 것이나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근본으로서의 올바름은 어떤 성격을 가질까. 첫째로 무위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무위는 사심 없이 행한다는 뜻이요, 무심히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함이 있으면 그로 인해서 무한한 능력이 제한을 받아 근본능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은 함이 없는 무심의 상태에서 나타난다. 어떠한 것에 마음이 걸려 있으면 함이 생겨 생사의 한계를 가진다. 태어나면 함이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죽음이 따른다. 그러므로 함이 있는 세계가 현실세계라면 무위의 세계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세계이다.

그래서 근본진리는 불생불멸이지만 생멸의 세계가 나타난다. 나타난 세계는 함이 있는 세계요, 근본진리의 세계는 무위의 세계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올바름으로 나타난 것을 '함이 없다.'고 했는가. '무위로써 근본에 맞선다.'는, 나타난 올바른 세계에 함이 없으니, 이러한 무위로써 근본인 올바름에 상대한다는 뜻이다. 근본은 함이 없는 세계다. 함이 없는 올바름이다. 그러므로 근본으로부터 나타난 세계도 함이 없는 올바름이다. 즉 연기의 도리이다. 무위로부터 무위의 세계가 전개된다. 되어진 세계를 함이 있는 유위라고도 하나 유위 속에 무위가 있다.

유위에서 유위를 떠나 무위를 증득하는 것이 도이다. 우리의 몸도 무상함 속에 영원이 있다. 무상함 속에서 상(常)을 보고 유위법(有爲法) 속에서 무위법(無爲法)을 보는 사람은 법을 본 사람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무위로써 근본이 되는 무위에 상대한다고 했다. 이것이 연기의 도리이다

또한 되어진 세계인 올바름의 존재들은 떳떳하지 못한 무상한 존재이다. 생과 멸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상함 역시 근본인 도가 무상하기 때문이다. 근본이 무상이므로 나타난 세계도 무상일 수밖에 없다. 무상은 모든 존재의 실상이다. 근본자성이 무상이다. 절대불변하는 실체란 있을 수 없다. 붓다는 이를 가리켜 무아(無我)라고 하셨다. 무아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무상하다. 근본인 올바름도 무상하므로 떳떳하지 않은 올바름으로 나타난다. 정법(正法)도 있을 수 없다. 올바르다거나 올바르지 않다는 모든 법도 절대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법은 무아이며 무상이다. 무상한 것은 무상한 것으로부터 나타난다. 이것도 인연의 법이다. 

또한 능히 있고 없게 하는 근본이 이 세상의 만물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한다. 모든 존제가 있다가 없어지는 까닭은 그의 근본에 있고 없게 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있고 없는 것은 생과 사의 되풀이다. 생과 멸의 법이요, 윤회의 법이다. 이런 것도 인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근본이 되는 올바름은 아무것도 가진 바가 없다. 어디에도 끌리지 않는 세계이며, 아무것도 갖지 않았기에 무한량하게 가졌고, 그 무한량한 것은 또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무일물(無一物)이 무진장이요, 무진장이 무일물이다. 무일물이 근본의 올바름이요, 무진장이 나타난 올바름이다. 무일물이 무위요, 무진장도 무위다. 무일물인 하나의 도에서 수많은 무상한 존재를 창도해낸다. 무진장한 창조물은 하나의 도일 뿐이므로 단 하나의 물건도 없다. 정도는 무위정도(無爲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