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10-15. 근본으로 돌아가는 일

通達無我法者 2007. 12. 5. 17:58

10-15. 근본으로 돌아가는 일

 

묻되, 지금 생각하는 바가 있는데 어찌하여 무위라고 합니까. 답하되, 몸과 입으로 계를 행하고 마음이 도를 행하도록 향해 간다.
비록 생각하는 바가 있어도 근본 무위로 가는 것이다.

해설
모든 것은 근본으로부터 나와서 근본으로 돌아간다. 무위는 마땅히 돌아가야 할 곳이면서 근원이 된다. 근원은 보이지 않으나 근원이 없는 것은 없듯이, 그로부터 현상세계가 비롯되었음은 틀림없는 진리다. 노자의 무위자연설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온 것은 온 곳으로 돌아가는데, 돌아가고 보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위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사상이 아니다. 근원을 보고 근원으로 돌아갈 줄 알라는 사상이다.

'생각하는 바가 있다.'는 없다가 생긴 것이다. 없다가 생겼다면 그것은 없는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 '있다'나 '없다'는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면서 있고 또한 없다.'로 바꿔 말할 수 있으니, 유위가 곧 무위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우리의 몸이나 입으로 계를 지키거나 지키지 않음은 몸과 입으로 하는 행위다. 곧 유위이다. 만일 이러한 계행이 없다면 죽은 사람이다.

이러한 계행을 지키는 이유는 그 계가 인간 행동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계를 지키지 않으면 사회는 파괴되고 인간도 살 수 없다. 인간은 지켜야 할 계행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몸이나 입으로 계행을 지켜서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음은, 남을 위해서라기보다 인간의 근원적인 요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생활의 근원인 계행을 지키는 행위는 함이 있지만(有爲) 함이 없는 (無爲)행위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유위이지만 근본 무위로부터 나온 것이면서 또한 근본 무위로 돌아간다. 호흡도 마찬가지다. 숨의 들어오고 나감은 유위이지만 생명의 근원인 무위에서 비롯되었으니 당연히 근원으로 돌아간다. 그 근원이 바로 열반적정이다. 무위가 열반적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호흡수련을 하거나 명상을 하여 열반에 이르려는 것은 특수한 어떤 세계를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가 아니라 당연히 돌아가야 할 근원으로 가는 행위이다. 인간 정신의 근원은 고요한 열반의 세계다. 인간 행동의 근원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올바른 행위다. 계행이란 바로 인간의 근원으로 가는 행위이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대상에 끌리지 않고 대상과 어울리면 근원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의 구실을 다한다. 호흡조절의 여섯 가지 관계를 통해서 청정에 이르는 것은 청정이 근원이기 때문이다. 청정의 세계에서는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유위(有爲)이면서 호흡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의식이 없는 무위로서 적정 그대로 순일하게 행해진다.

근본 무위로 가는 생각은 생각하는 바가 없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대상에 끌리지 않고 생각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한다.

칠불계(七佛誡)에서 말해지듯이 불교는 마음의 청정함과 몸과 입의 청정함을 얻는 가르침이다. 몸이 청정하고 입이 청정하면 악을 짓지 않고 선을 행하여 남을 즐겁게 한다. 마음이 청정하면 바로 열반의 적정락(寂靜樂)을 맛보며 그 행위는 자리이타인 보현행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일체법이 청정하므로, 반야바라밀다가 청정하다고 했다.

일체법은 열반적정으로부터 나왔고 열반적정으로 돌아간다. 반야바라밀다는 열반적정 속에 스스로 존재하며, 계는 일체법의 근원이다. 몸과 입으로 계를 지키게 하려면 근원이 깨끗해야 한다. 몸과 입의 근원은 마음이므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일체법이 깨끗해진다. 호흡에 있어서도 마음이 청정하여 적정을 떠나지 않으면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 모두 바르다.

뿌리와 가지는 다르지 않다. 근원이 튼튼하면 가지도 튼튼하고, 가지가 튼튼하면 뿌리도 튼튼하다. 호흡이 바르면 마음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호흡도 바르다. 바르고 고요함이 바로 열반의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