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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되, 어떤 것을 스스로 안다고 하고, 어떤 것을 스스로 증득한다고 합니까. 답하되, 능히 오음을 분별함을 스스로 안다고 하고, 도를 의심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득한 것이라고 한다.
해설 아는 것과 깨닫는 것과는 다르다. 아는 것은 사물을 분별하여 알아차리는 것이므로 사물에 대한 지식이다. 인식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깨달아서 아는 증득은 아아서 얻는 것이니 알게 된 지식을 일상 생활에서 살리는 것이다.
'도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이런 뜻이다. 도란 실천이니 의심하지 않고 실행하여 생활 속에서 살려지고 있는 지식이다. 이런 지식은 보고 들어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깊은 반성과 관찰을 통해서 확인되며, 다시 체험이나 이성에 의해서 확증되었을 때에서야 있을 수 있다. 실천을 통해서 확증된 지식은 삶의 길을 밝게 비춰주는 영구한 등불과 같다. 그러므로 스스로 증득된 것을 지혜라고 말해진다.
이처럼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동양, 특히 인도에서는 지식보다 지혜를 소중히 여긴다. 지혜는 명상을 통해서 얻어지며, 명상은 깊은 반성과 투철한 통찰을 따르게 한다. 반성을 통해서 과거를 바르게 보고 통찰을 통해서 미래를 내다본다.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으면 현재를 올바르게 살릴 수 있다. 지혜는 현재를 올바르게 살리는 힘이 있다.
호흡이 안정되어 지에 이르고, 지에서 다시 관으로 나아가고, 그 관이 자신의 것으로 얻어지면 환이 된다. 환은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이니 실천이 따른다. 그 실천이 곧 정이다. 정의 실천은 의념이 없어 신념을 가지고 전심전력으로나아가니, 붓다의 49년 간의 교화와 그의 한결같은 거룩한 삶이 대표적인 본보기다.
스스로 증득하는 데에는 깊이와 넓이가 있다. 위대한 성자들만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얻은 깨달음과 우주로 확대된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붓다는 실로 이런 분이다. 이 외의 수많은 성자나 선인, 도인, 현자나 선지식이라고 말해지는 사람들은 모두 그 깊이와 넓이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 붓다는 무상정등정각자(無上正等正覺者)라고 말해진다. 비록 우리 범부들이 붓다의 경게에는 미치지 못해도 명상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깨달음에 속한다. 명상은 고요한 생각을 통해서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어 한결같이 확대되어 흐르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이런 체험이 깊어지면 에지를 얻는다. 곧 자증(自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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