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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상수, 지, 관, 환, 정으로 《삼십칠품경》을 행하면 오히려 깨달은 자가 될 수 있다. 하물며 어찌 죄에 상대할 것인가. 시방(十方)에서 산과 같이 쌓았더라도 정진하여 도를 행하면 죄를 만나지 않는다. 물어 가로되, 경에서 말하기를 짓는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만나지 않습니까. 답하되, 지어서 쓰기 때문이다.
해설 《삼십칠품경》을 닦아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식과 상수와 지와 관과 환과 정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 사념처로부터 팔정도가 얻어지기 때문이다.
부처의 경지에 이르면 이미 번뇌가 없어졌으니 죄가 있을 수 없다. 죄란 악이요 장애물이다. 모든 악이 정화되었으니 생각하고 행하는 바가 선이요 올바름뿐이다.
수식이라는 선교한 방편으로 마음이 흩어지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고요히 안정된다. 몸의 자율신경이 강화되어 외부의 자극에 잘 적응하니 건강도 되찾는다. 이것이 상수의 세계다. 마음의 고요함이 한결같아서 어떤 곳에 머물러 집중력을 얻으면 그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이 생긴다. 이것이 지다. 이때까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알고 있던 것은 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그 사물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인연의 도리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관이다. 지는 마음의 집중이 심화된 것이며, 관은 그것이 확대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체의 견해가 전환되어 새로운 가치관을 얻고 자신을 되찾게 된다. 이것이 환이다. 나와 남, 나와 자연이 올바른 관계를 갖고 조화 속에서 서로 결점이 없다. 이것이 정의 세계다.
이러한 세계에 이르면 비로소 《삼십칠품경》의 내용이 행해진다. 죄나 악은 마음의 번뇌에서 생긴다. 청정한 마음에 어찌 죄가 따르겠는가. 시방 세계에서 산과 같이 많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모두 정화되면 더 이상은 죄가 아니다. 일체의 법이 그대로 청정한 부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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