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사량분별 버리고 한 생각에 집중해야...
좌선의 및 천태의지관 등 수행의 기본사항을 기술하고 있는 전적들에는 선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시작하기 이전에 점검해야 할 내용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그중의 하나로 주변의 모든 잡무를 쉬라는 식제연무(息諸緣務, 放捨諸緣 休息萬事)가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번잡함, 사람들과의 관계, 생활과 관련한 잡다한 일들, 문자에 대한 집착 등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으로 요약하자면 모든 것을 놓은 상태에서 수행에 들어가야 함을 말한다. 이는 근본불교에서의 수정(修定)법이나 초기 선종사에서의 수행법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외형적으로는 생활 속에서의 번잡함 제거를 의미하지만 선수행의 구조와 관련해 본다면 일체의 사량분별을 버리고 하나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는 것을 말한다.
일체의 사량분별을 여읜다는 것은 단순히 분별의식을 갖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수행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모든 주의(主義), 주장들을 제거하는 이른바 ‘그릇 비움’을 말한다. 기존의 모든 가치관이나 진리관, 생활관 등 자신이 절대적 가치나 관점으로 여기고 있던 것을 버리고 수선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수선의 용이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남아 있게 되면 새로이 접하는 선의 세계를 기존의 관점으로 분별 헤아리고, 취사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들은 그 자신은 스스로 확립한 것이라고 하지만 살아오면서 상황과 필요성에 의해 외부로부터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주입된 것일 뿐, 근본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릇은 비우면 비운만큼 새로운 것이 들어갈 수 있고, 그 새로운 것에 의해 기존의 것들을 올바로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올바로 볼 수 있을 때 그 모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바로 반야 지혜의 활용이요, 진공묘용(眞空妙用), 임운자재(任運自在)이다.
주목할 것은 그릇은 비우면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불변의 것으로 규정한 진리, 절대적 가치관 등으로 무장되어 있는 한 그릇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제거하면 여타의 무한한 불변적 진리, 가치라는 것들을 수용·용해시킬 수 있고, 이에 의해 십우도 맨 마지막의 언급처럼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지 않고 이전 현성들의 가르침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세상에 다니며 교화 성불시키는 삶’이 가능해진다.
선은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논리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다만 새로운 또하나의 분별세계만을 가져올 뿐이다. 이를 위해 입문 단계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화두 등에의 집중이 이를 자연스레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입문자에게 비움과 고집함의 차이는 무척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