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세음보살의 전생이야기
옛날 남인도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만 부인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몇 년 후 재혼을 하였습니다. 한동안 단란한 생활을 하던 중 어느 해 큰 흉년이 들어 생활이 어렵게 되자 아버지는 이웃나라로 장사를 하러 떠나게 되고, 새어머니 혼자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새어머니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해보니 장차 아이들이 자신이 사는데 큰 장애물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버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저녁, 새어머니는 사공과 짜고 바다 위에서 아버지가 기다린다며 아이들을 조각배에 태워 바다 한가운데로 보내 버렸습니다. 엉겁결에 조각배에 타게 된 형제는 곧 태풍을 만나게 되어 무서움과 추위에 서로를 부둥켜 안고 어머니를 부르며 울어댔지만, 당연히 바다 한가운데서 불쌍한 그들을 구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야속하게도 조각배는 뒤집혀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한편 새어머니는 사공과 정을 통하고 바다에 빠진 아들들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행히 형제는 파도에 휩쓸려 한 무인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아무도 없는 그곳 무인도에서 근근히 목숨만을 연명해가던 중 어느 날 형이 굶주림에 지쳐 울면서 동생과 마지막 ‘다짐’을 하였습니다. “아우야, 이제 우리 목숨이 다 된 것 같구나. 아무리 살려 해도 이제는 살 방법이 없는 우리 신세가 가련하구나.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와 같은 신세를 가진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와 같이 부모형제를 잃고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사람, 풍랑에 휩싸여 고생하는 사람, 독을 가진 짐승에 물리거나 악한 귀신에 시달려 고난이 많은 사람,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나지 못해 깨달음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의 고통을 걷어주되, 그들에게 합당한 몸을 나투어 구제해 주도록 하자.” 이 같은 32가지의 원願을 그들은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찢어진 옷자락에 써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가슴 아픈 이야기는 관세음보살의 전생에 관한 설화입니다. 곧, 형제의 간절한 원이 관세음보살이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바로 그 마음이란 말입니다.
반야심경의 첫 말인 관자재보살이 실은 이렇듯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이란 말은 익숙해도 '관자재보살'이란 말은 생소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표현의 차이 말고도 깊은 의미가 있는데, 이제 예를 하나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버지가 사장인 회사에 아들이 직원으로 아버지를 돕고 있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직원회의 때 아들이 아버지가 사장이라고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 회의 분위기는 가족회의 수준이 되어버리고 말 겁니다.
반대로 집에서 가족끼리 단란하게 밥을 먹으며 아버지에게 ‘사장님’한다면, 만약 내가 아버지라도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쥐어 박을 것입니다.
이처럼 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의 차이는 위의 예와 같이 사장님과 아버지를 구별해 불러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써 우리 중생을 구제해 주시는 분[아버지]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렇다면 관자재보살[사장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