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원효와 마음의 자재
원효가 한 암자에서 혼자 수도할 때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날 밤, 길 잃은듯한 여인이 찾아와 하룻밤만 묵고 갈 것을 청했습니다. 원효는 차마 비바람 속으로 여인을 내칠 수 없어 허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워낙 허름하고 단칸인 방인지라 원효와 그 여인의 거리는 숨소리도 들릴 정도였습니다. 더욱 침침하지만 등불에 비친 그 여인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젊은 원효는 공연히 여인을 맞아들였다고 후회하였지만 돌이킬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도 여인의 모습이 떠올라 원효는 정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원효는 여인의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밤새 염불로 지새웠습니다. 젊은 원효에게 그 밤은 길고긴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드디어 새벽녘이 되었습니다. 원효는 밤새 뜨거워진 몸을 간밤에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난 계곡에 들어가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알몸으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원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따지듯이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밤새 나를 괴롭혔으면 됐지 이거 너무하지 않소, 이젠 알몸으로 나를 유혹하려 들다니.’ 이에 여인은 ‘제가 밤새 뭘 어쨌게요. 그리고 지금은 저도 목욕을 할 뿐인데요.’ 라고 답하고는 바로 무지개를 타고 폭포위로 사라졌습니다.
이 설화는 소요산 자재암에 얽힌 설화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 사찰들의 ‘안내문’에 보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태반은 원효나 의상이 창건했거나 한때 머물러 수행하던 도량이라 주장합니다. 자재암도 그런 절 중 하나인데 이 자재암은 원효가 머물렀던 곳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요석공주와 그 아들 설총이 살았었다는 사적史蹟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화에서도 어쨌든 젊은 원효는 한때 정을 나누었던 요석공주보다 오히려 ‘이상한’여인의 지극히 당연한 대꾸의 말에서 크게 깨침을 얻었습니다. 즉,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불법의 진수를 뼈져리게 실감한 것입니다. 원효가 얻은 그 진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음의 자재自在함을 얻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절을 자재암이라 부른다는 이야기인데, 이젠 제가 이 특정 절의 설화를 소개하는 이유를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원효에게 그렇게 갈등을 주었던 여인이 앞서 말씀 드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관세음보살의 32가지 모습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젊은 구도자 원효에게 ‘한 수’ 가르쳐주기 위해 그런 모습과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불,보살의 응신應身과 방편方便 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재自在란 개념을 이해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자재自在를 알아야 관자재보살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원효에게 여인의 몸으로 직접 체득시킨 것이 바로 자재의 경지입니다. 이 자재의 경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의 어떤 자극이나 변화에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경지이고, 또 하나는 외부의 어떤 자극이나 변화를 아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설명 드린, 다를 것 같은 두 가지 마음의 경지는 물론 다른 것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이 원효에게 일깨워주고자 했던 것은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경지에 가깝고, 반야심경 첫머리에 나오는 관자재보살의 ‘자재’는 모든 것을 아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경지에 합당하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풀이는 제가 앞에서 말씀 드린 관세음보살[아버지]와 관자재보살[사장]의 차이인 것이기도 합니다.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