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자재보살로 시작하는 이유
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은 결국 같은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관자재보살보다 관세음보살이 훨씬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우리에게 친숙한 관세음보살이 아닌 관자재보살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즉, 반야심경은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수행자인 ‘관자재보살’이 설하는 수행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경의 첫 단어에서부터 명확히 해두자는 의도인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아버지’가 아닌 ‘사장’의 자격으로서 말한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아마 이 반야심경 만큼 해설서가 많은 경전도 드물 겁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의 시작이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관자재보살로 시작하는 이유를 밝혀 놓은 책을 저는 여태껏 보질 못했습니다.
법당에서 부처님전에 예불한 후 신중단(불법을 지키는 신들을 모신 단)에 이 반야심경을 독경하는 까닭은 신중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즉, 반야심경의 도리를 잘 알고 따르라고 법문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어떤 불자가 신중단에서 반야심경을 읽으며 절도 같이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경우입니다. 어명御命을 전하는 사람이 졸개라도 그 명을 받드는 사람이 임금이 아니라면 당연히 무릎을 꿇고 어명을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신중단에 반야심경을 독경하는 법은 퇴옹 성철스님이 젊은 수좌(선 수행을 하는 스님)때 선방의 몇몇 수좌들과 ‘장차 부처가 될 수행자가 불법을 옹호하는 신에게 절할 수 없다. 오히려 법문을 해주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시행한 것이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시 퇴옹다운 대단한 기개가 탄복스럽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또 한번 옆길로 새어볼까 합니다. 관자재보살이 관세음보살과 같은 분임은 충분히 설명된 듯한데, 관세음보살은 그 전신前身이 남자였는데 불화佛畵의 모습이나 그 표현은 거의 중생의 자비로운 어머니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나라의 회창법난(842~845 무종의 불교 말살 정책) 때, 무주 황제의 딸이 여러 스님들을 모시고 보타락가산(관세음보살이 상주하신다는 산 이름)으로 가던 중 군사들이 쫓아오자 관세음보살을 불렀는데, 이들이 건널 때는 멀쩡했던 다리가 뒤쫓아 온 군사들이 건널 때는 끊어졌다고 합니다.그로 인해 사람들은 이 공주를 관세음보살의 화현化現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후 관세음보살을 여자로 묘사하게 되었다는 그럴듯한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중국불교가 한국불교에 미친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 역시 이 책이 풀어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입니다.
※ 성법스님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