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성법스님

반야심경 / 성법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1. 2. 11:51

고양시 용화사 성법스님

http://www.sejon.or.kr

⊙ 물질에서 진리를 찾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법에서 수행방법으로

시고 공중 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 수행방법에서 깨달음으로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야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증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완성된 지혜인 반야

지혜롭다는 말은 그 범주가 어디까지 일까요? 그 반대인 어리석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어리석음은 상대적입니다. 즉 사람들은 나보다 생각이 모자란 듯싶으면 어리석다고 단정지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리 생각하는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은
‘너도 마찬가지야’
라고 여깁니다. 이 단정적 사고의 순환은 결국 우리 모두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컴퓨터 회사는 사용설명서에
‘아무 키나 누르세요(Press any Key)’라는 말을 모두 ‘엔터 키를 누르세요(Press Enter Key)’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도대체 ‘any’
키가 어디에 있느냐는 문의가 너무 많이 들어 왔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이러한 문의를 한 사람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상대적 어리석음의 기준이 되어버린
'너도 마찬가지'
라는 단정적 사고의 순환인 듯합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지혜로워 보이는 세종 때의 재상 황희의 얘기입니다.

황희의 부인이 선물로 들어온 배를 남편이 오면 먹도록 황 정승의 침소 선반에 올려놓고 나갔다. 황 정승이 정청에서 돌아와 책을 읽노라니 선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살펴보니 쥐가 배를 물어가려고 애를 쓰다가 저 혼자 힘으로는 끌어갈 수 없음을 깨닫고 동료 쥐를 데리고 와서는, 한 쥐는 배를 안고서 눕고 한 쥐는 안고 누운 쥐를 물고 끌어 선반의 뒷구멍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황 정승은 그 일이 하도 신기하고 감탄스러워 그 결과를 보려고 그냥 두고 책을 읽는 데 골몰하여 한참 후에 살펴보니 배 대여섯 개를 모두 물어가버리고 없었다.
저녁때 부인이 황 정승 방에 들어가보니 배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황 정승에게 배를 먹었느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쥐 이야기를 부인에게 했겠지만 사사로운 일은 일체 말이 없기로 유명한 사람인지라 황 정승은 그때도 안 먹었다고만 대답했다.
조금 후에 안에서 여종의 비명이 들리기로 나가보니 부인이 남자종에게 매를 들려 여종을 심문하고 있었고 여종은 울며 배를 먹었다고 자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인이 여종에게 배를 어찌했느냐고 물어보았겠고 모른다고 하므로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고문을 가하자 매 몇대를 맞고는 먹지 않은 배를 먹었다고 한 것이다.
그 일을 보고 황 정승은 다음날 정청에 나가 여러 관원을 모아놓고 전날 집안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매 몇 대를 맞고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는데, 현재 조정이나 지방 관청에서 죄인 취조에 차마 볼 수 없는 가혹한 형벌을 가하니 그 중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며 그 시정책을 새로 마련하였다 한다.


어리석음이 상대적 이라면 지혜는 절대적입니다. 누구든 황희보다 더 좋은 생각을 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더욱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영리하고 슬기로워 상황 판단이 명확하다는 차원의 범주를 넘어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절대지絶對智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반야般若'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경전을 해설하는데
경명經名의 뜻을 먼저 설명하는 것이 통례인데 저는 본문부터 해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 실수가 아니라 ‘의도’
입니다. 불교의 경전은 이름에 그 경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 엉터리 해설이나마 인내심을 갖고 다 읽으실 때면 경명은 이미 지혜로 가득 채워진 머리로 저절로 이해가 되실 겁니다.

 

※ 성법스님 -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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