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입능가경(入楞伽經)

입능가경 제 6 권

通達無我法者 2007. 12. 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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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능가경 제 6 권
  
  
  원위 천축삼장 보리류지 한역
  
  
  
5. 로가야타품(盧迦耶陀品)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어느 때에 말씀하시기를, 로가야타(盧迦耶陀)1)의 여러 가지 변설(辯說)을 만약 친근하거나 그 사람에게 공양하면 욕식(欲食 : 세간의 財利)을 섭수(攝受)함이요, 법식(法食 : 출세간의 法利)을 섭수함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변설을 친근하거나 공양하면, 욕식을 섭수함이요, 법식을 섭수함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변재와 교묘한 말과 글귀는 세간을 미혹함이요, 진여(眞如)법에 의하여 말함이 아니며, 참다운 뜻[義]에 의하여 말함이 아니요, 다만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의 정(情)에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세속의 일만을 말함이며, 다만 공교로운 말로서, 말과 글귀가 아름답고 교묘할 뿐이요, 정의(正義)를 잃었으니 대혜여, 이를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변재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허물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이와 같은 변재는 다만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를 포섭
  
  
  
1) 범어 lo yata의 음역으로 로가야(路伽耶)·로가야타(路伽耶陀)라고도 하고, 순세외도(順世外道)·순세파(順世派)라고 의역한다. 유물론의 입장에서 지·수·화·풍의 4대(大)와 그 활동공간인 허공의 실재만을 인정하여 쾌락론을 주장하였으며, 윤회·업·공양·보시 등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단멸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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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이요, 여실한 법성(法性)에 들어가서 설법함은 아니다.
  그는 일체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했으므로 두 변(邊)인 사견(邪見) 더미 가운데에 떨어져, 자기도 정도(正道)를 잃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 잃게 한다. 그러므로 능히 모든 취(趣)에서 윤회(輪廻)함을 벗어나지 못하니, '오직 자심(自心)뿐임'을 보지 못하고, '바깥 법의 모양이 있다'는 것에 분별하며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망하게 분별함을 떠나지 못한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로가야타가 비록 여러 가지 교묘한 변재로 모든 법을 말하기 좋아함이 있으나, 바른 이치를 잃었으므로 생(生)·노(老)·병(病)·사(死)와 우(憂)·비(悲)·고(苦)·뇌(惱)의 모든 고(苦)의 더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명자(名字)와 글귀와 비유와 공교로운 말에 의하여 사람을 미혹하고 속인다'라고 말한다.
  대혜여,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여러 논(論)을 널리 짓고, 스스로 성론(聲論)을 지었는데, 저 로가야타의 한 제자가 세간의 신통(神通)을 증득하고, 제석천궁에 올라가서 논법(論法)을 내세우면서 말하기를, '교시가(憍尸迦)여, 내가 그대와 함께 내기를 하겠으니, 그대와 논의하여 만약 이기지 못하면 굴복하기로 다짐하겠다'라고 하고, 일체 천인(天人)으로 하여금 지켜보게 하여, 곧 함께 다짐하기를, '내가 만약 그대를 이기면, 그대의 천 수레바퀴[千輻輪]를 부셔버릴 것이요, 내가 만약 이기지 못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디마디를 끊어서 그대에게 사과하겠다'라고 하였다. 로가야타의 제자는 용의 몸을 나타내어 석제환인과 논의하여 그의 논법으로 곧 능히 저 석제환인을 이기고, 그로 하여금 굴복하게 하고서 곧 하늘에서 천 수레바퀴를 부수기를 작은 티끌 같이하고, 즉시 인간에 내려왔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바라문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비유에 맞게 축생(畜生)의 몸까지 나타내고 여러 가지 명자에 의하여 세간의 천인(天人)과 아수라(阿修羅)를 미혹시키며, 세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생멸(生滅)법에 집착하게 하는데,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마땅히 로가아타의 바라문을 멀리할 것이니, 저 말을 따르면 능히 고(苦)의 더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로가아타의 바라문을 친근하며 공양하여 물으며 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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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것이다.
  대혜여, 로가아타의 바라문이 말한 바 법은 다만 현전(現前)하는 몸의 지혜[身智]의 경계만을 보고서 세속의 명자에 의하여 삿된 법을 말함이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바라문이 지은 바 논(論)은 백천 게송이 있는데, 후세 말세에 나누어져서 많은 부(部)가 되어 각각 이름은 다르지만, 그는 자심의 견인(見因)에 의하여 지은 것이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바라문에게는 제자로서 그의 논법을 받을 리가 없기 때문에, 후세에 나누어져서 많은 부의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이 된 것이다.
  대혜여, 외도들의 속마음은 여실한 알음이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인(因)과 여러 가지 다른 알음에 의하여 제 마음대로 만들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며, 자재(自在)와 인(因) 등에 집착한다.
  대혜여, 일체 외도의 지은 논 가운데는 이러한 법은 없고, 오직 이 모든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인문(因門)에서 백천만 법을 말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는 이 로가야타임을 알지 못한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 외도가 오직 로가야타만을 말하여, 세간의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와 비유에 의하여 모든 인(因)에 집착한다면 세존이시여, 시방(十方) 일체 국토의 중생과 천인과 아수라들이 부처님 계신 곳에 모이면, 여래께서 또한 세간의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와 비유로서 설법하시고,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신 법을 말씀하지 아니하신다면, 또한 일체 외도의 말한 바와 같아서 다르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로가야타를 말하지 아니하며, 또한 모든 법이 오지 않고 가지 아니함도 말하지 아니한다.
  대혜여, 내가 말한 모든 법이 오지 않고 가지 않는다[不來不去]고 하는 것은 대혜여, 어떤 것을 오는 것이라 이름함인가? 대혜여, 이른바 오는 것이란 생취(生聚)이니, 화합하여 생긴 것이다.
  대혜여, 어떤 것을 가는 것이라 이름함인가? 대혜여, 이른바 가는 것이란 이름하여 멸(滅)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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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혜여, 내가 말한 '가지 않고 오지 않는 것'이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나의 말함은 저 외도의 법과 같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외물(外物)이 있고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자심의 견(見)임을 내세워 말한 까닭이며, 두 곳[處]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상(相)과 경계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능히 공(空)·무상(無常)·무원(無願)의 3해탈문에 들어가니, 이를 '해탈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나는 기억하고 있다. 과거 어느 곳에 있을 적에, 그 때 어느 로가야타의 큰 바라문이 있어 나의 처소에 와서 나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구담(瞿曇)이여, 모든 것은 짓는 것인가?'
  대혜여,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모든 것은 짓는 것이라 함은 첫 번째의 로가야타이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구담이여, 모든 것은 짓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모든 것은 짓는 것이 아니라 함은 두 번째의 로가야타이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모든 것은 항상됨[常]인가? 일체 무상(無常)함인가? 일체 생(生)함인가? 일체 불생(不生)인가?'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여섯 번째의 로가야타이다.'
  대혜여, 그 로가야타는 또한 나에게 말하였다.
  '고타마여, 모든 것은 같음인가? 다름인가? 모든 것은 갖추어져 있는가? 모든 것은 갖추어지지 않았는가? 모든 것은 여러 법이 인(因)에 의하여 생기고, 여러 가지 인(因)으로 생김을 보는가?'
  대혜여,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열 한 번째의 로가야타이다.'
  대혜여, 그는 또한 나에게 물었다.
  '구담이여, 모든 것은 무기(無記)인가? 모든 것은 유기(有記)인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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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가 있는가? 내가 없는가? 이 세상이 있는가? 이 세상이 없는가? 후세가 있는가? 후세가 없는가? 해탈이 있는가? 해탈이 없는가? 모든 것은 공(空)인가? 모든 것은 공이 아닌가? 모든 것은 허공인가? 모든 것은 연멸(緣滅)이 아닌가? 열반인가?
  구담이여, 짓는 것인가? 짓는 것이 아닌가? 중음(中陰)이 있는 것인가? 중음이 없는 것인가?'
  대혜여,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말한 것은 모두 로가야타이며, 내가 말한 바가 아니요, 바로 그대의 설법이다.
  바라문이여, 나는 말하기를 끝없는 희론과 허망한 분별과 번뇌로 훈습함을 따르기에 저 3유(有)를 말함이니, 오직 이 자심의 분별로 나타나있는 것임을 깨지 못한 것이다. 바깥 법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외도법과 같은 것은 아니다.'
  대혜여, 외도는 말하기를, 아(我)와 근(根)과 의의(意義)인 세 가지가 화합하여 능히 알음을 낸다고 하였으나 나는 이와 같지 아니하며, 나는 인(因)을 말하지도 않으며, 또한 인(因)이 없다고 말하지도 아니하고, 오직 자심의 분별로서 가히 취함[可取]과 능히 취하는[能取] 경계의 상(相)이 있는 것을 본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거짓 이름인 인연의 모임으로 모든 법이 생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 때 바라문 및 다른 경계도 아니니, 아견(我見)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혜여, 열반과 허공과 연멸(緣滅)이 3수(數)를 이룬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짓는 것과 지음과 지음 아닌 것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대혜여, 또한 로가야타의 바라문이 있어 나에게 와서 물어 말하였다.
  '고타마여, 세간의 무명(無明)과 애착(愛)과 업(業)의 인(因)으로 3유(有)가 생겼는가? 인(因)이 없는 것인가?'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두 법인 로가야타요, 나의 법이 아니다.'
  바라문이 다시 나에게 물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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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타마여, 일체법이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에 떨어진 것인가?'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로가야타요, 나의 법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다만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이 외물(外物)에 집착함이 있으면 모두 이 로가야타요, 나의 법이 아니다.'
  대혜여, 로가야타인 바라문은 또한 나에게 물어 말하였다.
  '고타마여, 혹 어떤 법이 로가야타 아닌 것이 있는가? 고타마여, 일체 외도가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와 인(因)과 비유를 건립하여 말한 것은 모두 우리의 법이다.'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법이 그대의 법 아님이 있으며, 건립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여러 가지 명자와 글귀를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뜻에 의하고 뜻에 의하여 말하지 아니함도 아니지만, 로가야타가 건립한 법은 아니다.
  바라문이여, 법에는 로가야타가 아님이 있다.
  저 법은 모든 외도나 그대도 요달하여 알지 못할 것이니, 허망하게 바깥 진실 아닌 법과 분별과 희론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떠난 것이라 하는가? 있음과 없음이란 자심에서 나타난 모양임을 관찰하여 여실히 깨달음이니, 그러므로 일체 분별을 내지 아니하며, 바깥 모든 경계인 법을 취하지 아니하여 분별하는 마음이 쉬고, 스스로 머무를 곳인 고요한 경계에 머무르니, 이를 로가아탸가 아니라고 이름한다. 이는 나의 말하는 법이요, 그대의 말함은 아니다.
  바라문이여, 스스로 머무를 곳에 머무르는 것이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니, 불생불멸이란 것은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이를 로가야타가 아니라고 이름한다.
  바라문이여, 간략하게 말하건대 어떠한 곳이 식(識)이 행하지 아니하며, 취하지 아니하며, 물러가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고 생하지 아니하며, 집착하지 아니하며, 좋아하지 아니하며, 보이지 아니하며, 보지 아니하며, 머무르지 아니하며, 부딪히지 아니함이 머무름이 된다고 함이니,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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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문이여, 여러 가지 모양에 집착함, 자아(自我)가 애착인 모든 인(因)에 화합한 것은 이 바라문인 로가야타의 법이요, 나의 법이 아니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바라문이 나의 처소에 와서 이러한 법을 묻기에, 나는 그 때 그에게 대답하였다.
  '바라문이여, 아까 말한 바와 같다.'
  그 때 바라문은 말 없이 가면서, 나에게 참다운 법[眞法]을 건립함을 묻지 아니하였다.
  그 때 바라문은 마음속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기를, '이는 사문(沙門)이며 석자(釋子)는 우리 법엔 등졌으니 이는 참으로 불쌍하다. 그는 일체법에 인(因)이 없고, 연(緣)이 없고, 생(生)하는 모양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심의 분별로 나타난 법으로, 만약 능히 자심의 나타난 모양임을 깨달으면,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대혜여, 그대는 지금 나에게 '무슨 까닭으로 로가야타의 여러 가지 변설을 친근·공양·공경하면 그 사람은 다만 욕미(欲味)만을 섭수하고 법미(法味)를 섭수함이 아니라고 합니까'라고 묻는가?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식구(食句)라 이름하며, 어떤 것을 법구(法句)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능히 미래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은 두 뜻을 묻는구나.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내 그대를 위하여 말할 것이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식(食)이 되는가? 식미(食味)와 촉미(觸味)이니, 구할 방편을 좋아하여 공교로움과 아첨으로 맛을 붙여 바깥 경계에 집착함이니, 이와 같은 법들은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으니, 능히 둘이 없는 경계인 법문의 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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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이다.
  대혜여, 또한 식(食)이라고 이름한 것은 사견(邪見)에 의하여 음(陰)·유(有)의 갈래가 생겨 생(生)·노(老)·병(病)·사(死)와 우(憂)·비(悲)·고(苦)·뇌(惱)를 떠나지 못하여 애착이 유(有)에서 나니, 이러한 법들을 식(食)이 된다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나와 일체 부처님께서는 저 로가야타의 바라문을 친근·공양하는 것은 식미만을 얻고, 법미는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법미(法味)가 되는가? 여실히 두 가지 무아(無我)를 알아서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의 모양을 보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분별하는 상(相)을 내지 아니하며, 여실히 모든 지위의 상상(上上) 지혜를 능히 알기 때문에, 그 때는 능히 심(心)·의(意)·의식(意識)을 떠나서 여러 부처님의 지혜와 지위를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모든 구가 다한 곳[無盡句]을 섭취하며, 여실히 일체 부처님의 자재(自在)한 곳을 능히 알 것이니, 법미가 된다고 이름한다. 그는 일체 사견(邪見)과 희론 분별인 두 변(邊)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대혜여, 외도의 설법은 흔히 중생으로 하여금 두 변에 떨어지게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외도들은 흔히 단(斷)과 상(常)을 말하니, 인(因)이 없기 때문에 상견(常見)에 떨어지며 인(因)이 멸함을 봄으로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대혜여, 내가 말한 여실견(如實見)은 생멸(生滅)에 집착하지 않음이니, 그러므로 나는 법미가 된다고 말한다.
  대혜여, 이것을 내가 말한 식미와 법미라고 이름함이다.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 법을 배울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을 섭취(攝取)하는데
  계(戒)로서 모든 악을 항복 받고
  지혜로 사견(邪見)을 없애니
  3해탈이 증장(增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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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도의 허망하게 말함은
  모두 세속에서 논함이니,
  사견의 인과(因果)로서
  정견(正見)없이 세운 말이었네.
  
  내가 건립한 법이란
  허망한 인연의 견해를 떠나서
  제자를 위해 말함이며
  세속 법을 떠난 것이네.
  
  마음 뿐이요, 바깥 법이 없으니
  2변(邊)의 마음인
  능취(能取)와 가취(可取)가 없는 법으로
  단상(斷常)의 견해 떠났다네.
  
  마음이 행하는 곳이란
  모두 세속에서 논함이니,
  만약 자심(自心)을 관찰하면
  모든 허망함을 보지 않으리.
  
  오는 것은 인(因)의 생함을 본 것이며
  가는 것은 과(果)의 멸함을 본 것이니,
  여실히 거래(去來)를 알아서
  허망을 분별 아니하리.
  
  상(常)과 무상(無常)과 짓는 것을
  피차(彼此)의 물건으로 여기지 말 것이니,
  이와 같은 모든 법은
  모두 세속론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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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열반품(涅槃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열반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열반이란 것은 어떠한 법들로서 열반이라 이름합니까? 외도들도 각각 열반을 허망하게 분별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모든 외도들은 허망하게 열반의 모양을 분별하니, 저와 같은 외도의 분별하는 바는 이 열반이 아니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외도는 모든 경계를 싫어하며, 음(陰)·계(界)·입(入)을 보고 모든 법의 무상(無常)한 것을 없애고, 심(心)과 심수(心數)법이 나지 않으며, 현전(現前)에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즐거운 경계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모든 음(陰)이 없어진 곳은 등불이 꺼지고, 여러 가지 바람도 그침과 같아서 모든 상(相)을 취하여 망상(妄想)으로 분별하지 않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저 외도는 이와 같은 법을 보고 열반이라는 생각을 낸 것이요, 견(見)이 없어지므로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는 것은 아니다.
  대혜여, 혹 어떤 외도는 방(方)으로부터 방(方)에 이르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모든 경계가 바람과 같다고 분별하니, 그러므로 분별이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말하기를,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인 경계를 보지 아니하여 없어지지 않음[不滅]이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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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분별로서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을 보기 때문에, 능히 모든 괴로움이 생하고, 자심의 견해로서 허망하게 일체 모든 상(相)을 분별함이라 하여 모든 상을 두려워하고, 모양이 없는 것[無相]을 보고 깊은 마음으로 좋아하여 열반이라는 생각을 낸다.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일체법의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을 보고, 멸(滅)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법이 있는 것이라고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아(我)·인(人)·중생(衆生)·수명(壽命)·수자(壽者)의 모든 법이 멸하지 아니함을 보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또한 다른 외도는 지혜가 없으므로 보는 바 자성(自性)과 사람의 수명(壽命)이 전변(轉變)한다고 분별하고, 전변함을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죄(罪)가 다하므로 복덕(福德)도 또한 다하는 것이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기를, 번뇌가 다하여 지혜에 의지하므로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다른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중생을 자재천(自在天)이 만들어냄을 보았다고 하여,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기를, 모든 중생은 번갈아 함께 하는 인[共因]으로 난 것이요, 다른 인(因)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니, 저와 같은 외도는 인(因)에 집착하여,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고 어두워서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기를, 진체의 도를 증득하였다고 하여,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지음[作]과 짓는 바[所作]가 있어서 함께 화합하였다고 하여, 같음과 다름과 갖춤과 갖추지 못함을 보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기를, 일체법이 자연히 생기는 것이 요술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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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고 하여, 여러 가지 보배와 가시[棘] 등인 물건이 자연히 나는 것을 보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기를, 만물(萬物)이 때[時]로 짓는 것이라 하여 시절임을 깨달아 알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기를, 물건이 있는 것을 보며 물건이 없는 것을 봄으로, 있고 없는 물건을 보는 것이라 하여 이와 같이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한다.
  대혜여, 다른 법과 지혜를 내세우는 이가 말하기를, 여실히 보는 것은 오직 자심이라 하여, 바깥 모든 경계를 취하며 집착하지 아니하고, 네 가지 법[四種法]을 떠나며 일체법이 저[彼]와 저의 법이 같음을 보고 자심의 분별하는 상을 보지 않으며, 2변(邊)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경계를 보지 아니하며, 세간은 일체 진실이 아님을 내세우며, 여실법(如實法)에 어리석은 것임을 보고, '모든 법을 취하지 아니함을 진실이 된다'라고 이름하며, 자신이 거룩한 지혜를 증득함으로서 여실히 두 가지 무아[二無我]를 알고 두 가지 번뇌의 때[垢]를 떠나서, 2장(障)이 청정하며, 여실히 상상(上上) 지위의 모양을 능히 알고, 여래 지위에 들어가서 여환삼매(如幻三昧)를 얻고, 심(心)·의(意)·의식(意識)을 멀리 떠나서 이와 같은 등의 견(見)을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사견(邪見)의 각관(覺觀)으로 모든 논(論)을 말하기를, 여실한 정법(正法)으로 더불어 상응(相應)하지 못하니, 지혜 있는 자는 꾸지람이 될 것을 멀리 떠난다고 한다.
  대혜여, 이와 같은 외도들은 모두 2변(邊)에 떨어져서 허망하게 분별하므로 진실한 열반이 아니다.
  대혜여, 일체 외도는 이와 같이 열반을 허망하게 분별하기 때문에 세간에 머무르는 사람도 없으며, 열반에 드는 사람도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일체 외도는 자심(自心)의 논(論)에 의하여 허망하게 분별하므로 여실한 지혜가 없으니, 저와 같은 외도의 제 마음에서 분별함은 이와 같은 법이 없으며, 가고 오며 요동하여 이와 같은 외도의 열반은 없는 것이다.
  
[183 / 415] 쪽
  대혜여, 그대와 일체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일체 외도의 허망한 열반을 멀리 떠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외도는 열반이란 견해로
  각각 분별을 일으키니,
  모두 심상(心相)으로부터 생함이요
  해탈 방편은 없는 것이네.
  
  능박(能縛)과 소박(所縛)을 떠나지 못하고
  모든 방편을 멀리 떠나서
  스스로 해탈인양 생각하나
  실로 해탈은 없으리라.
  
  외도의 내세우는 법이란
  뭇 지혜로 제각기 달리 취함이니,
  그는 모두 해탈이 아니요
  어리석은 허망한 분별이네.
  
  일체 어리석은 외도는
  지음과 짓는 바를 허망하게 보고,
  그러므로 해탈이 없으면서
  유무(有無)법을 말한다네.
  
  범부는 희론만을 좋아하여
  진실한 지혜는 듣지 않고
  3계(界)의 근본은 여실한 지혜로
  고(苦)를 없앤 것이라고 말하니,
  
  
[184 / 415] 쪽
  비유컨대 거울 속의 모양이
  비록 보이나 있지 않음과 같아서
  훈습의 거울에 마음이 나타나는데
  범부는 둘이 있다고 말하네.
  
  유심(唯心)으로 보여짐을 알지 못하여
  그러므로 둘이라 분별하니,
  마음뿐임을 여실히 알면
  분별은 곧 나지 않으리.
  
  마음은 갖가지로 이름하나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을 떠났으며
  보이는 상도 볼 수 없거늘
  범부는 허망하게 분별한다네.
  
  3유(有)도 오직 망상(妄想)이며
  바깥 경계도 실로 없건만,
  망상으로 갖가지 보는 것을
  범부는 그를 알지 못하네.
  
  경(經) 마다 분별로서
  여러 가지 다른 명자(名字)를 말했으나,
  그 언어(言語)를 떠난 법이어서
  말할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7. 법신품(法身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185 / 415] 쪽
  "세존이시여, 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당신의 증득하신 바 안으로 깨달아 아시는 법을 말씀하시기 원하옵니다.
  어떠한 법을 법신(法身)이라 이름합니까? 저희와 일체 보살이 여래 법신의 모양[法身相]을 잘 알면, 자신과 다른 이까지도 함께 의심이 없는 데에 들어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의 의심되는 바를 뜻대로 묻거라. 그대를 위하여 분별해 주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응공·정변지의 법신(法身)은 짓는 법[作法]입니까? 짓지 않는 법입니까?
  인(因)입니까? 과(果)입니까? 능견(能見)입니까? 소견(所見)입니까? 말함입니까? 말할 바입니까?
  지혜입니까? 지혜로 깨달을 바입니까?
  이와 같은 말과 구절[句]는 여래의 법신과 다른 것입니까? 다르지 않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응공·정변지의 법신 모양이라고 하는 이러한 말과 구절은 짓는 법이 아니며, 짓지 않는 법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2변(邊)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만약 여래를 짓는 법이라 말한다면, 이는 무상(無常)이니, 만약 무상이라면 일체 작법도 마땅히 여래일 것이다. 그러나 불(佛)·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이 작법을 허가하지 아니하신다.
  대혜여, 만약 여래 법신이 짓는 법이 아니라면 이는 몸이 없음이니, 한량없는 공덕과 일체의 행(行)을 수행하였다고 말한 것은 곧 허망한 것이다.
  대혜여, 만약 짓는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토끼 뿔이나 석녀와 같아서 짓는 인(因)이 없기에 또한 몸도 없을 것이다.
  
[186 / 415] 쪽
  대혜여, 만약 법이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라면, 저 법체(法體)는 네 가지 상(相)을 떠난 것이다.
  대혜여, 저 네 가지 법은 세간(世間)의 언설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만약 법이 네 가지 법을 떠난 것이라면, 저 법은 다만 명자만 있는 것이 석녀와 같다.
  대혜여, 석녀 등은 명자와 글귀의 법일 뿐이니, 말하건대 4법과 같다.
  만약 4법에 떨어지는 것이라면 지혜 있는 자는 취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일체 '여래를 묻는 어구'를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또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체 모든 법이 무아(無我)임을 말하리니, 그대는 무아의 이치를 잘 들어라.
  무아는 안 몸[內身]이 무아이니, 그러므로 무아이다.
  대혜여, 일체 모든 법에 자기 몸[自身]이 있고, 다른 몸[他身]이 없는 것인가? 그것은 소와 말과 같다.
  대혜여, 비유컨대 소의 몸은 말의 몸이 아니며, 말은 또한 소가 아니니, 그러므로 있다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저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혜여, 일체 모든 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체상(體相)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리석은 범부는 모든 법의 무아(無我)인 체상을 알지 못하니, 분별하는 마음 때문이요, 분별 아니하는 마음은 아니다.
  대혜여, 이와 같아서 일체법이 공했으며, 일체법이 나지 않는 것[不生]이며, 일체법이 체상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대혜여, 여래 법신도 또한 이와 같아서, 5음(陰)에서 같음도 아니며 다름도 아니다.
  대혜여, 여래 법신이 5음과 같다면, 곧 무상(無常)이니, 5음은 짓는 바 법이기 때문이다.
  대혜여, 여래 법신이 5음과 다르다면, 곧 두 법이 있어서 체상이 같지 아니함이 소의 두 뿔이 서로 같아서 다르지 아니하나, 별개의 자체가 있어서 길고 짧음이 다른 것과 같을 것이다.
  대혜여, 만약 이와 같을진대 일체 모든 법이 마땅히 다른 모양이 없으면서
  
  
[187 / 415] 쪽
  다른 모양이 있음이 소의 왼쪽 뿔이 오른쪽 뿔과 다르며, 오른쪽 뿔이 왼쪽 뿔과 다른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길고 짧은 것이 서로 상대하여 각각 다르며, 색(色)의 여러 가지가 서로 차별됨과 같다.
  대혜여, 이와 같이 여래 법신의 모양은 5음에서 같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다르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요, 해탈에서도 같다고 말하지 못하며 다르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요. 열반에서도 같다고 말하지 못하며 다르다고 말할 수 없어서, 이와 같이 해탈에 의하므로 여래 법신의 모양이라고 말한다.
  대혜여, 만약 여래 법신이 해탈과 다르다면, 곧 색상(色相)과 같아서 바로 무상(無常)할 것이요, 만약 여래 법신이 해탈과 다르지 않다면, 곧 능증(能證)과 소증(所證)의 차별이 없을 것이다.
  대혜여, 수행하는 자는 곧 능증과 및 소증을 보기 때문에 그러므로 같음[一]이 아니다.
  대혜여, 이와 같이 알 수 있는 경계는 같음도 다름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대혜여, 만약 법이 항상되는 것도 아니며, 항상됨이 없는 것도 아니라면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요, 유위(有爲)도 아니며 무위(無爲)도 아니요, 각(覺)도 아니며 불각(不覺)도 아니요, 능견(能見)도 아니며 가견(可見)도 아니요, 음(陰)·계(界)·입(入)을 떠난 것도 아니며, 음·계·입에 나아가는 것[卽]도 아니요, 명(名)도 아니며 경계도 아니요, 같음도 아니며 다름도 아니요, 상속(相續)도 아니며 상속 아님도 아니요, 일체 모든 법을 벗어난 것이다.
  만약 모든 법을 벗어났다면 그 이름만 있을 뿐이요, 만약 다만 그 이름만 있다면, 저 법은 생(生)함이 아닐 것이니, 생함이 아니므로 저 법은 멸함도 아니다.
  멸함이 아니므로 저 법은 허공과 같아서 평등하다.
  대혜여, 허공은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다. 만약 법이 인도 아니며 과도 아니라면 저 법은 가히 관찰할 수 없을 것이요, 가히 관찰할 수 없다면 저 법은 모든 희론을 벗어난 것이요, 만약 일체 희논을 벗어났다면 여래 법신이라 이름할 것이니, 이를 여래·응공·정변지의 법신의 모양이라 이름할 것이다. 그 일체 모든 근(根)과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188 / 415] 쪽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과 근(根)을 떠나서
  과(果)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고,
  이미 각(覺)·소각(所覺)을 떠났으며,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을 떠났다네.
  
  모든 인연과 5음(陰)에서
  부처님께서 보는 법이 없으니,
  만약 보는 법 없다면
  어떻게 분별한다고 하겠는가.
  
  지음도 지음 아님도 아니며
  인(因)도 또한 과(果)도 아니요
  음(陰)도 음을 떠남도 아니며,
  또한 딴 곳에 있지도 않으니,
  
  어떠한 마음으로 분별하겠는가.
  분별로는 능히 보지 못할 것이며,
  저 법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모든 법은 법 그대로일 뿐이네.
  
  먼저 있음으로서 없다고 말하고
  먼저 없음으로서 있다고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없다고도 말할 수 없고
  또한 있다고도 말하지 못하리.
  
  아(我)와 무아(無我)에 어리석어
  단지 음성에만 집착하니
  
[189 / 415] 쪽
  그는 2변(邊)에 떨어져서
  허망한 말로 세간을 망치네.
  
  일체 모든 허물을 떠나면
  나의 법을 곧 볼 것이니,
  이는 바른 견해라서
  부처님 비방하지 아니하리.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해설해 주십시오.
  여래께서는 곳곳에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생(生)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또한 말씀하시기를,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 것이 여래 법신이라고 이름함이니, 그러므로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없는 법이기 때문에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고 이름한 것입니까? 여래의 딴 이름으로서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한 것입니까? 그러나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도 아니함은 있음과 없음의 법[有無法]을 건립함을 떠났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이 생함이 아니라면, 이는 일체법이라 말하지 못할 것이니 일체법이 생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만약 다른 법에 의하여 이러한 이름이 있다면, 세존께서는 마땅히 저희를 위하여 말씀하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190 / 415] 쪽
  "여러 법신은 없는 물건도 아니며, 또한 인연에 의하여 있다고도 말하지 아니할 것이며, 또한 허망하게 '생함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다'라고 말함도 아니다.
  대혜여, 내가 항상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말한 것은 뜻대로 나는 몸[意生身]이라 이름함이다.
  여래 법신은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의 경계가 아니며, 또한 7지(地)에 머무르는 보살의 경계도 아니다.
  대혜여, 내가 말한 불생불멸은 곧 여래의 다른 이름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제석과 왕과 부란타라(不蘭陀羅)1), 손과 손톱과 신체와 땅과 먼지와 허공과 무애(無礙),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명호가 이름은 다르나 뜻은 한 가지이니, 많은 이름에 의하여 '많은 자체(自體)의 제석 등이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혜여, 나도 또한 이와 같아서, 사바세계에서 3아승기(阿僧祗) 백천(百千)의 명호가 있어, 범부는 비록 말하나 이것이 여래의 다른 이름임을 알지 못한다.
  대혜여, 혹 어떤 중생은 여래를 아는 자도 있으며, 자재(自在)를 아는 자도 있으며, 일체지(一切智)를 아는 자도 있으며, 세간을 구함[救世間]을 아는 자도 있으며, 도자(導者)가 됨을 아는 자도 있으며, 장자(將者)가 됨을 아는 자도 있으며, 승자(勝者)가 됨을 아는 자도 있으며, 묘자(妙者)가 됨을 아는 자도 있으며, 세존을 아는 자도 있으며, 부처님을 아는 자도 있으며, 우왕(牛王)을 아는 자도 있으며, 스승을 아는 자도 있으며, 선인(仙人)을 아는 자도 있으며, 범(梵)을 아는 자도 있으며, 나라연(那羅延)2)을 아는 자도 있으며, 승자(勝者)를 아는 자도 있으며, 가라라(迦羅羅)3)를 아는 자도 있으며, 구경(究竟)을 아는 자도 있으며, 아리타니미(阿梨陀尼彌)를 아는 자도
  
  
1) 범어 pura -dara 의 음역으로 인드라신, 범천(梵天)과 함께 불법을 수호하는 신.
2) 범어 n r ya a 의 음역으로 힌두교의 비쉬누(vi u)신을 가리킴. 일반적으로 금강역사(金剛力士)·견고역사(堅固力士) 혹은 역사(力士)라고 의역하며 엄청난 힘을 가진 신을 의미한다.
3) 범어 kalala 의 음역으로 태내오위(胎內五位)의 첫 번째 단계로 태아가 모태에서 발생한지 최초의 7일간을 말함.
 
[191 / 415] 쪽
  있으며, 달(月)을 아는 자도 있으며, 태양을 아는 자도 있으며, 바루나(婆樓那)1)를 아는 자도 있으며, 비야사(毘耶娑)2)를 아는 자도 있으며, 제석(帝釋)을 아는 자도 있으며, 힘(力)을 아는 자도 있으며, 바다를 아는 자도 있으며, 불생(不生)을 아는 자도 있으며, 불멸(不滅)을 아는 자도 있으며, 공(空)을 아는 자도 있으며, 진여(眞如)를 아는 자도 있으며, 실제(實際)를 아는 자도 있으며, 열반을 아는 자도 있으며, 법계(法界)를 아는 자도 있으며, 법성(法性)을 아는 자도 있으며, 상(常)을 아는 자도 있으며, 평등을 아는 자도 있으며, 불이(不二)를 아는 자도 있으며, 무상(無相)을 아는 자도 있으며, 연(緣)을 아는 자도 있으며, 불체(佛體)를 아는 자도 있으며, 인(因)을 아는 자도 있으며, 해탈을 아는 자도 있으며, 도(道)를 아는 자도 있으며, 실체(實諦)를 아는 자도 있으며, 일체지(一切智)를 아는 자도 있으며, 의생신(意生身)을 아는 자도 있다.
  대혜여,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여래·응공·정변지의 사바세계와 다른 세계에서 3아승기인 백천의 명호들은 더하지도 줄지도 아니하는데, 중생은 모두 '물 속의 달과 같이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범부는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므로 2변(邊)이 상속(相續)하는 법에 떨어진다. 그러나 모두 나를 공경하며 공양한다.
  그리고 명자(名字)와 구의(句義)를 잘 알지 못하므로 차별상을 취하여 능히 스스로 알지 못하고, 명자에 집착하므로 허망하게 불생불멸을 분별하여 '없는 법이다'라고 이름하고, 여래의 명호가 차별한 모양이 인타라(因陀羅)3)와 제석과 왕과 부란타라(不蘭陀羅) 등과 같음을 알지 못하니, 능히 이름과 진실을 결정하지 못하고 명자와 음성을 따라 법을 취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1) varu a의 음역으로 바라문교에 있어서 율법신(律法神), 수신(水神).
2) 범어 Vy sa의 음역으로, 『마하바라타(Mah bh rata)』를 편찬한 자로 알려져 있다.
3) 범어 Indra의 음역으로 인드라신을 가리킴. 제신의 우두머리로서 천계에 군림하고, 많은 악인(樂人)과 미녀를 거느리고 있다. 불교에서는 석제환인(釋帝桓因) 또는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번역되며, 호법(護法)의 선신(善神)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92 / 415] 쪽
  대혜여, 미래 세상에 어리석은 범부가 말하기를, '이름과 같아서 뜻도 또한 이와 같다. 그런데도 다른 이름에 뜻이 있음을 능히 알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뜻은 체상(體相)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또한 말하기를, '명자와 음성에 다르지 않고 뜻이 있으니 명자와 음성이 곧 뜻이다. 무슨 까닭인가? 명자의 체상을 알지 못한 까닭이다'라고 한다.
  대혜여,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음성이 곧 생이며 곧 멸이요, 뜻은 생멸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대혜여, 음성의 성질은 명자에 떨어짐이나 뜻은 한가지로 명자에 떨어지지 않으니, 유(有)·무(無)를 떠났기 때문이며, 생함이 없고 체(體)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여래의 설법은 자기 음성에 의하여 말함이요, 모든 명자가 이 유(有)·무(無)임을 보지 않으므로 명자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혜여, 만약 사람이 명자에 집착하여 말하는 자는 그 사람은 잘 설법한다고 하지 못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법은 명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의 경(經) 가운데서 말하기를, '불(佛)·여래는 끝까지 한 자도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한 이름도 보이지 아니하였다'라고 하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은 명자가 없으니 뜻에 의함이요, 말이 없으니 분별에 의하여 말함이다.
  대혜여, 만약 설법하지 아니한다면 불·여래의 법륜(法輪)이 단멸(斷滅)할 것이니, 법륜이 단멸하면 또한 성문과 연각과 보살이 없을 것이요, 성문과 연각과 보살이 없다면, 어떠한 사람을 위하여 어떠한 법과 어떠한 일을 말할 것인가?
  대혜여,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언설(言說)과 명자에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명자와 장구(章句)는 정해진 법[定法]이 아니요, 중생의 마음에 의하여 말함이니, 불·여래는 중생의 믿음을 따라서 모든 법을 말함은 그들로 하여금 심(心)·의(意)·의식(意識)을 멀리 떠나게 함이요,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를 말하여 모든 법을 건립함은 아니다.
  여실히 일체 모든 법의 고요한 모양을 능히 아는 까닭이며, 다만 자심(自心)을 보고 알 바인 법을 깨달아서 두 가지 마음으로 분별하는 상을 떠났기에
  
  
[193 / 415] 쪽
  이와 같이 말하지 아니한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다.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문자와 말만을 따르는 자는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자신도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잃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 망가뜨려서 깨닫지 못하게 한다.
  대혜여, 모든 외도들은 각각 자기 이론에 의지하여 다른 견해로 말한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일체 지위의 모양을 잘 알고, 말하기 좋아하고 변론에 재주가 있는 문사(文辭)와 장구(章句)를 잘 알며, 일체 모든 지위의 모양을 잘 알고서 명구(名句)와 말하기 좋아하고 변론에 재주가 있음에 나아가 취하여 모든 법의 뜻과 상응(相應)하는 모양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때엔 자신이 무상(無相)의 법락(法樂)에서 낙수(樂受)를 받을 것이며, 대승에 머물러 중생으로 하여금 알게 할 것이다.
  대혜여, 대승을 취하는 자는 바로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과 보살을 섭수(攝受)함이며,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과 보살을 섭수함은 바로 수승하고 묘한 법장(法藏)을 섭수함이며, 법장을 섭수함은 바로 불종(佛種)이 끊어지지 않게 함이며, 불종이 끊어지지 않게 함은 일체 수승하고 묘한 나는 곳[生處]을 끊어지지 않게 함이니, 저 수승한 곳의 여러 보살들이 저 곳에 나기를 원하는 까닭이며, 모든 중생을 대승법에 두어서 10자재력(自在力)으로 모든 중생의 형색과 모든 번뇌[諸使]를 따라 능히 나타내어 여실법을 말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여실법인가? 여실법이란 다름이 아니요[無異], 차별이 아니며, 취(取)함이 아니고, 버림[捨]이 아니며, 모든 희론을 떠났기 때문에 여실법(如實法)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선남자·선여인은 문자와 음성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 일체법은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사람들을 가리킬 때에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만, 저 어리석은 사람은 곧 손가락에만 집착하고, 손가락으로 인하여 가리키는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음성을 듣고는 명자인 손가락
  
  
[194 / 415] 쪽
  에 집착하고 목숨이 마칠 때까지도 마침내 능히 문자의 손가락을 버리고 제일의(第一義)를 취하지 못한다.
  대혜여, 비유컨대 곡식은 범부의 먹는 것이지만 방아를 찧지 않고, 밥을 짓지 않으면 먹을 수 없으니, 만약 그 어떤 사람이 밥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먹는다면, 미친 짓이라 이름할 것이니, 모름지기 차례로서 밥을 짓고 익혀야만 바야흐로 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대혜여, 불생불멸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공교로운 지혜와 방편의 행을 닦지 않는다면 법신(法身)을 구족(具足)하여 장엄할 수 없을 것이다.
  대혜여, 명자에 집착하고서 뜻을 얻었다고 말하는 자는 저 어리석은 사람이 방아찧음과 밥 지을 줄을 알지 못하고 문자인 곡식을 먹으며, 뜻인 먹음을 얻지 못함과 같으니, 이러한 뜻으로 마땅히 뜻을 배우고 문자에 집착하지 말 것이다.
  대혜여, 말한 바 뜻이란 열반을 이름함이다. 명자를 말함은 분별하는 상에 묶이어 세간의 알음을 내는 것이다.
  대혜여, 뜻이란 많이 들은[多聞] 사람을 따라서 얻어지는 것이다.
  대혜여, 많이 들은 이라고 함은 뜻의 공교한 방편을 말함이요, 음성의 공교한 방편이 아니다.
  대혜여, 뜻[義]의 방편이란 일체 외도의 삿된 말을 떠난 것이며, 또한 화합하고 섞임도 아닌 것이니,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자신이 외도의 삿된 법에 떨어지지 않으며, 또한 다른 이로 하여금 외도의 법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대혜여, 이를 많이 들어서 뜻의 방편이 있는 것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뜻을 얻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다문지자(多聞智者)를 친근하여 공양하고 공경할 것이요, 명자에 집착하는 자를 마땅히 멀리 떠나며, 마땅히 친근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 때 대혜보살은 부처님의 힘을 입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세존께서 말씀하신 '일체법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라고 함은 기특(奇特)한 것이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일체 외도도 또한 모든 인(因)이 불생불멸이라 말하며, 여래께서도 또한 허공과 수(數)가 아닌 연멸(緣滅)과 열반계(涅槃界)가 불생불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5 / 415] 쪽
  세존이시여, 외도들도 또한 '모든 인연에 의하여 모든 중생이 생겼다'라고 말하며, 여래도 또한 '무명(無明)과 애착과 업과 분별하는 인연으로 모든 세간이 생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여래께서는 또한 '인연과 명자가 서로 다르고, 바깥 인연에 의하여 능히 모든 법을 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외도도 또한 '바깥 인연에 의하여 모든 법을 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외도의 말과 더불어 차별이 있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는 '인(因)과 작은 티끌(微塵)과 수승함(勝)과 자재천(自在天)과 범천(梵天) 등인 그 아홉 가지 인연으로서 모든 법이 불생불멸한다'라고 말하며, 여래께서는 또한 '일체 모든 법이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은 것으로, 유무(有無)를 가히 얻을 수 없으며, 모든 4대(大)가 멸하지 않아 자기 모양[自相]이 불생불멸이다'라고 말씀하시니, 불·여래의 여러 가지 말씀을 따른다면 외도의 말한 바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외도들도 또한 '모든 대(大)가 대(大)의 체(體)를 떠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모든 대(大)를 분별하며, 여래도 또한 그리하여 모든 대를 분별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뜻으로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가 외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같지 않다면 여래께서는 마땅히 있는 바 다른 모양을 말씀하실 것이며, 만약 다른 모양이 있다면, 마땅히 외도의 말한 바와 같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불·여래께서 자기 법에서 수승한 모양을 말씀하지 아니하신다면 모든 외도에도 또한 마땅히 부처님께서 계시리니, '모든 법이 불생불멸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것처럼 한 세계에 많은 부처님께서 계셔서 함께 출세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며,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한 세계에서도 마땅히 많은 부처님께서 계시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말한 바 유무(有無)의 인(因)이 차별이 없는 까닭입니다.
  
[196 / 415] 쪽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그의 말이 헛되고 그름이 없는데,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당신의 법에서 수승한 모양을 말씀하시지 아니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설법한 바 '불생불멸이다'라고 하는 것은 외도의 불생불멸과 같지 않으며, 또한 저 '불생(不生)하는 무상(無常)한 법이다'라고 함과 같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모든 외도는 '실로 체성(體性)이 있어서 불생불멸인 모양이 있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와 같이 '있다', '없다'고 하는 붕당(朋黨)더미에 떨어지지 않는다.
  대혜여, 내가 말한 '유무법을 떠났다'는 것은 생(生)·주(住)·멸(滅)의 모양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일체 여러 가지 색상이 환과 같으며 꿈과 같이 보니, 그러므로 그 '있다',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어찌하여 그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형색와 체상은 보고 보지 못함과 취하고 취하지 못함이 있는 까닭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일체 모든 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
  대혜여, 오직 자심의 분별로 봄을 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일체 세간의 모든 법은 본래 생함이 아니며 멸함이 아닌데, 그럼에도 모든 범부는 분별을 내니, 성인(聖人)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마음으로 진실 아닌 의(義)를 분별함은, 비유컨대 범부가 건달바성을 보며 환사(幻師)가 짓는 여러 가지 환상인 사람과 여러 가지 코끼리와 말을 보되, 그것들이 들어가며 나가는 것을 보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말하기를, '이들이 이와 같이 들어가며, 이와 같이 나간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대혜여, 그러나 그 곳에는 참으로 사람이 출입함도 없고, 오직 자심의 견(見)의 미혹으로 분별함이니, 생(生)과 불생(不生)의 법도 또한 이와 같다.
  대혜여, 그러나 그 곳에는 참으로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인 모든 법이 없는 것이 저 환사가 짓는 환상의 일들과 같다.
  
[197 / 415] 쪽
  그러나 저 환사는 생함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다.
  대혜여, 모든 법의 유무(有無)도 또한 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생멸(生滅)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직 모든 범부가 전도(顚倒)된 마음에 떨어져서 생멸(生滅)을 분별함이니, 성인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혜여, 전도(顚倒)라는 것은 마음대로 분별하기를, 이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으며, 저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지 않음이며, 또한 전도된 분별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전도하는 자는 모든 법이 '있다', '없다'고 함에 집착하고 고요함을 보는 것이 아니다. 고요함을 보지 못한 자는 허망한 분별을 능히 멀리 떠나지 못하니, 그러므로 대혜여, 고요함을 본 것을 수승한 모양이라 이름할 것이다.
  모든 모양을 보지 않음을 수승한 모양이라 이름함이니, 능히 생인(生因)의 상(相)을 끊지 못한 까닭이다.
  대혜여, 무상(無相)이라고 말함은 일체 모든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떠남이니, 생함이 없고 상(相)이 없는 것은 나의 말한 바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열반이라 말한 것은 모든 법의 여실히 머무는 곳을 본 것임을 말함이니, 분별하는 심(心)과 심수(心數)의 법을 멀리 떠나고, 차례로 여실히 수행함에 의하여 스스로 속 몸의 거룩한 지혜로 증득하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음을 말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생한다는 견해를 막기 위하여
  무생법(無生法)을 건립하였으니,
  내가 말한 '법은 인(因)이 없다'고 함을
  범부는 능히 알지 못하네.
  
  내가 말한 법은 인(因)이 없다고 함을
  범부는 알지 못함이여.
  일체법은 생함이 아니며
  
[198 / 415] 쪽
  또한 없다고도 할 수 없으리.
  
  건달바와 환상과 꿈과 같이
  모든 법은 원인이 있지 아니하며
  모든 법은 공하여 모양이 없으니
  어찌 내가 말함이 될 것인가.
  
  화합하는 인연을 떠났기에
  지혜로도 능히 보지 못하며,
  공(空)이란 본래 생함이 아니니,
  그러므로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하나하나 인연으로 화합하였기에
  보이는 물건이지만 얻을 수 없으니,
  외도가 볼 바도 아니요,
  화합함도 얻을 수 없으리.
  
  꿈과 환상과 털 바퀴와
  건달바와 아지랑이를
  원인이 없이 허망하게 보지만,
  세간 일도 또한 그러하네.
  
  무인론(無因論 : 無因無緣論)을 항복 받아
  능히 무생의(無生義)를 이루니,
  무생을 능히 이룬다면
  나의 법이 없어지지 않으리.
  
  무인(無因)의 모든 논(論)을 말하면
  외도는 놀래며 두려워한다.
  
[199 / 415] 쪽
  어찌하여 어떤 사람은
  무슨 까닭으로 어떤 곳에서
  
  모든 법 '인(因)이 없다'라고 하는가.
  인도 아니요, 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지혜 있는 자 그를 능히 보면
  생멸의 견해 능히 떠나리.
  
  법에 생(生)과 불생(不生)이 없음은
  인연상(因緣相)이 없기 때문이니,
  만약 법의 명자(名字)가 되면
  뜻이 없음[無義]을 내가 말하네.
  
  법이 유무(有無)로 생함이 아니며
  또한 인연을 기다림도 아니요,
  현전(現前)의 법이 이름 있는 것도 아니니,
  또한 공(空)이 아닌 말이라 이름하네.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의 경계도 아니요
  7지(地)에 머물러 있는
  그 곳만이 무생(無生)인 모양이네.
  
  모든 인연법을 떠났기에
  모든 인연을 막기 위하여
  '건립함이 유심(唯心)이다'라고 말하여
  나는 말하기를 '무생(無生)이다'라고 이름한다.
  
  모든 법이란 인연이 없으며
  
[200 / 415] 쪽
  능소(能所)의 분별을 떠나서
  유무의 붕당을 떠났기에,
  나는 말하여 '무생'이라 이름하네.
  
  마음은 보여진 법도 떠났으며
  두 법체도 또한 떠났으니,
  몸을 전변한 의정상(依正相)을 나는 말하여 '무생'이라 이름하네.
  
  외물(外物)도 실(實)과 실 아님이 아니니
  또한 마음의 취할 바도 아니요,
  환상과 꿈과 털바퀴이며
  건달바와 아지랑이라네.
  
  모든 견해가 멀리 떠난 것을
  무생의 모양이라 함이니,
  이와 같은 공(空) 등의 법과
  여러 문구도 마땅히 알리라.
  
  생(生)과 공(空)도 아니며
  생과 공이 없는 것이지만
  모든 인연이 화합하여,
  생(生)도 있고 또 멸(滅)도 있으니,
  
  모든 인연 떠나면
  생도 멸도 아니라네.
  인연 떠나면 법이 없고
  화합 떠나면 얻을 수 없으리.
  
  외도는 허망하게 분별하여
  
 
[201 / 415] 쪽
  같음과 다름이 있다고 보지만
  유무와 생함이 아닌[不生] 법에는
  유무(有無)를 얻을 수 없으리.
  
  다만 화합한 모든 법으로서
  생멸이 있는 것을 본 것이니,
  다만 명자만이 있어서
  이리 저리 얽매였다네.
  
  저 인연의 얽매임을 떠나면
  생하는 법을 얻을 수 없으리.
  생하는 법에 생함을 보지 않으면
  모든 외도의 허물을 떠날 것이다.
  
  내가 말한 인연의 얽매임을
  모든 범부는 알지 못하니,
  만약 인연의 얽매임을 떠나면
  다시 다른 법은 있지 않으리.
  
  이는 인연이 없는 말이며
  인연의 얽매임을 파괴한 뜻이니,
  등불이 모든 색상을 나타냄과 같아서
  얽매임으로 남도 또한 그렇다네.
  
  이는 얽매임을 떠난 것이며
  별로 또한 법의 생함이 있으니
  생하는 법 본래 자체가 없어서
  자성(自性)이 허공과 같다네.
  
  
[202 / 415] 쪽
  얽매임을 떠나 법을 구함은
  어리석은 사람의 아는 바가 없는 것,
  다시 다른 무생(無生)이 있으니
  성인의 얻은 바 법이라네.
  
  저 생함에 생함 없는 자는
  이는 무생인(無生忍)이니,
  만약 모든 세간을 보면
  곧 이 얽매임을 본 것이리.
  
  일체가 모두 얽매임이니
  곧 마음이 정(定)을 얻어야 하며,
  무명과 애착과 업 등은
  곧 안의 얽매임이라네.
  
  굴대과 진흙덩이 바퀴와
  종자(種子)는 바깥의 큰 얽매임이며,
  만약 법이 있다 해도
  인연으로부터 나는 것이리.
  
  얽매임의 뜻[義]을 떠나면
  그는 성교(聖敎)에 머무름 아니니,
  만약 생하는 법이 없다면
  그는 어느 얽매임이 될 것인가.
  
  이리 저리 서로 남으로
  이를 인연이라 이름함이니,
  굳음·젖음·뜨거움·움직임의 법에서
  범부는 분별을 낸다.
  
[203 / 415] 쪽
  얽매임을 떠나면 다른 법이 없으니
  그러므로 자체 없다 말함이네.
  의사가 여러 병을 치료할 적에
  병에 따라 대치함과 같아서,
  
  논함은 차별이 없지만,
  병이 다르므로 처방이 다르듯이
  나는 모든 중생이
  번뇌의 허물에 오염됨을 생각하고서
  
  근기와 힘의 차별을 알고
  감당함을 따라 말함이지만,
  나의 법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근기와 병을 따라 달리 말했지만
  나에겐 오직 일승법이니
  8성도(聖道)가 청정함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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