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입능가경(入楞伽經)

입능가경 제 10 권

通達無我法者 2007. 12. 24. 13:12
[340 / 415] 쪽
  
입능가경 제 10 권
  
  
  원위 천축삼장 보리류지 한역
  
  
  
18. 총품 ②
  
  제불(諸佛)의 주지하시는
  원력(願力)의 청정함에 의하여
  직위를 받음[受職]과 삼매와
  공덕과 또한 10지(地)와
  
  허공과 토끼 뿔과
  또는 석녀의 아이이니,
  분별하는 법은 이와 같아서
  없는데 명자(名字)를 말함이네.
  
  인훈습종(因熏習種)인 세간의
  있지도 없지도 않는 곳에서
  능히 보고 해탈을 얻으면
  법무아(法無我)를 알리라.
  
  실체(實體)는 명자를 분별함이요
  타체(他體 : 依他起性)는 인연으로부터 나니,
  나는 성취(成就; 圓成實性)라고 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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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경에서도 항상 이를 말했노라.
  
  자(字)·구(句)·명신(名身) 등의
  명신의 수승한 법에서
  어리석은 사람의 분별함은
  코끼리가 깊은 진흙에 빠짐과 같네.
  
  천승(天乘)과 범승(梵乘)
  또한 성문승(聲聞乘)과
  여래와 연각인
  나는 이러한 승(乘)을 말하였노라.
  
  모든 승(乘)은 다할 수 없으니
  마음이 이와 같이 생(生)함이네.
  마음이 전멸(轉滅)한다면
  승(乘)과 승자(乘者)도 없으리라.
  
  심(心)과 분별과 식(識)과
  의(意)와 또한 의식(意識)이여,
  아리야(阿梨耶)가 셋이 있는데
  사유심(思惟心)은 다른 이름이었네.
  
  명(命)과 따뜻함과 식(識)에서
  아리야(阿梨耶)는 명근(命根)이었고,
  의(意)와 그리고 의식(意識)은
  분별의 다른 이름이었네.
  
  심(心)은 몸을 주지하고
  의(意)는 항상 모든 법 지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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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識)은 자심(自心)의 경계로서
  모든 식(識)과 함께 분별하네.
  
  나[我]의 애착[愛]은 어머니요
  무명(無名)은 아버지라 말하니,
  모든 경계를 알아 깨달으면
  그러므로 부처라 말한다.
  
  모든 사(使)는 원가(怨家)이며
  뭇 화합은 음(陰)이니,
  상속(相續)하는 자체가 없어서
  그를 끊으면 무간(無間)이라 이름하네.
  
  두 아(我)의 번뇌 없어짐과
  두 가지 무아(無我)와
  불가사의(不可思議) 변화와
  생사(生死)가 없으면 부처라 이름하네.
  
  의(意)는 상응하는 법체이며
  아법(我法)은 속 몸이니,
  만약 능히 이와 같이 보면
  그는 망각(妄覺)을 따르지 않으리라.
  
  실로 모든 법은 없는데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은
  허망한 법에 의지한 것이니,
  어찌 해탈을 얻으랴.
  
  생멸이 화합한 속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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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위(有爲) 법을 본 것이니,
  2견(見)을 증장하였기에
  인연법을 잃지 아니하네.
  
  파초와 꿈과 환(幻) 등으로
  이 세간은 이와 같다네.
  오직 한 법만이 진실함이니
  열반은 의식(意識)을 떠났다네.
  
  탐심과 진심(嗔心)이 있으며
  어리석음과 인(人)이 있고
  애착으로부터 음(陰)이 생겼으니,
  음(陰)과 유(有)는 또한 꿈과 같다.
  
  어느 밤에 법을 증득했고
  어느 밤엔 멸(滅)에 들겠다는
  이 두 중간에
  나는 한 자(字)도 말 아니하였네.
  
  속 몸으로 법을 증득했다는
  나는 이와 같은 말에 의지하니,
  저 부처님과 나의 몸은
  수승한 법을 말한 것 없노라.
  
  실로 신아(神我)인 물건 있다고 하지만
  5음(陰)은 저의 모양을 떠났네.
  음(陰)의 체(體)가 실로 있다지만
  저 음에는 아(我)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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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각 자기 견(見)의 분별로
  수번뇌(隨煩惱)와 사(使)가 있으니,
  세간의 자심(自心)을 얻으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으리라.
  
  모든 인(因)과 인연으로
  세간이 이와 같이 생겼으니,
  이 네 법이 상승함이라
  그는 나의 교법에 머무르지 아니하네.
  
  유(有)와 무(無)도 생법(生法)도 아니요
  유무(有無)를 떠나면 불생(不生)이니,
  어리석은 이는 어찌하여
  인(因)과 연(緣)으로부터 생겼다 분별하랴.
  
  유무(有無)의 4구(句)를 떠나고서
  만약 능히 세간을 본다면,
  그 때엔 심식(心識)을 굴리고
  곧 무아(無我)법을 얻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生)함이 아니니
  그러므로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모든 연(緣)이 곧 과(果)이니
  과(果) 가운데에 유(有)가 생하였네.
  
  과 가운데에 두 가지가 생겼기에
  과 가운데엔 마땅히 둘이 있으리라.
  그러나 둘 가운데에 과가 없으며
  과 가운데에도 물건을 보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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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觀)과 가관(可觀)을 떠나서
  만약 유위(有爲)법을 본다면
  마음을 떠나 오직 이 마음이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하네.
  
  양(量)은 실체와 형상이
  연(緣)을 떠난 실체로서
  구경(究竟)이며 제일 청정함이니,
  나는 이와 같은 양(量)을 말한다.
  
  만약 거짓 이름을 나[我]로 여긴다면
  실법(實法)을 가히 보지 못하리니,
  이와 같은 음(陰)과 음의 체(體)는
  거짓 이름이요 진실이 아니네.
  
  평등은 네 가지가 있으니
  상(相)과 인(因)과 생(生)이며
  무아(無我)도 또한 평등함이며
  이 넷은 수행자의 법이다.
  
  모든 견(見)을 전환(轉)한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은
  견(見)도 아니며 생(生)도 아니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한다.
  
  법이 없고 또한 없는 것 아니어서
  유무(有無)의 체성을 떠났으니,
  진여는 마음을 떠났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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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여와 공(空)과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는
  뜻대로 나는 몸과 마음이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분별이 훈습에 의하여
  여러 가지가 여러 가지를 내며,
  중생은 마음이 바깥을 보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가견은 외물(外物)이 없고
  마음의 여러 가지 견(見)과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본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성문의 극진한 지혜에서
  불·여래께서는 낳을 것이다.
  일체 벽지불은
  화합함이 없이 생(生)한다.
  
  바깥 색상(色相)은 없는 것이요
  자심에서 바깥 법을 본 것이니,
  자심을 깨달아야 하는데
  어리석은 이는 유위(有爲)를 분별하네.
  
  어리석은 이는 외법(外法)임을 알지 못하고
  자심에서 여러 가지를 보지만,
  비유로서 어리석은 사람을 막아 말하기를
  네 가지 법에 집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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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因)도 없고 분별도 없음과
  비유와 다섯 가지 논(論)과
  자심의 체성과 형상을
  능히 알면 슬기로운 것이리.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에 의하면
  이는 분별의 상(相)이니,
  분별에 의지하여
  분별이 거기서 나타나네.
  
  낱낱의 분별이 화합함은
  이 한 종자의 인(因)이라.
  객(客)이 둘이요, 법도 둘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나지 않는다네.
  
  분별의 심(心)과 심법(心法)은
  삼계에 머물러서
  모든 법을 나타냄이니,
  저 자체는 허망함이라.
  
  인(因)이 나타나는 화합에 의하여
  그러므로 12입(入)이 있으니,
  인(因)에 의해서 화합을 관찰하는
  나는 이러한 법을 말하지 아니하네.
  
  거울 속에 물상을 보며
  눈병으로 털 바퀴를 보듯이,
  이와 같이 훈습하는 마음에 의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마음에서 본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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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이 함께 하여
  분별을 내었으니
  외도의 분별함과 같은
  이러한 바깥 모양은 없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노끈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뱀이라고 하듯이
  자심의 의(義)를 알지 못하고
  바깥 법을 분별한 것이라네.
  
  노끈은 노끈의 자체에서
  1과 2의 자체를 떠났지만,
  노끈을 분별하기 때문이니
  이는 자심(自心)의 과실이네.
  
  어떤 법이 어떤 체(體)에 의지하랴.
  분별로는 능히 보지 못하리.
  저(彼)를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모든 법체(法體)는 이와 같음이네.
  
  유(有)에 의하므로 무(無)를 말하고
  무에 의하므로 유를 말함이니,
  그러므로 무를 말할 수 없고
  또한 유를 말할 수도 없느니라.
  
  곧 분별과 분별이여
  이는 저 법체가 아니다.
  어찌하여 견(見)은 체(體)가 없는가?
  분별을 내었기 때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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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色)의 체(體)는 색의 몸[色身]이 없으니,
  병(甁)과 모직[氈] 등과 같다.
  보여진 것은 없는 법이니
  어찌 분별함이 있으랴.
  
  만약 분별이 미혹이라면
  유위(有爲)법의 끝없는 데에서이다.
  어느 법이 중생을 미(迷)하게 하였는지
  모니(牟尼)께서는 저희 위해 말씀해 주소서.
  
  모든 법은 법체(法體)가 없고
  오직 이 마음이라 말하니,
  자심을 보지 못하고서
  분별을 일으킨 것이라네.
  
  만약 분별이 없다면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인
  저 법은 다른 체(體)가 없을 것인데,
  그러나 지혜로는 능히 깨닫지 못하네.
  
  만약 성인에게 저 법이 있다면
  범부의 허망한 저 법이 아닐 것이니,
  만약 성인에게 허망한 저것 있다면
  성인과 어리석은 이 다름없으리.
  
  성인은 미혹이 없으니
  마음의 청정함을 얻었기 때문이네.
  어리석은 사람은 신심(信心)이 없기에
  그러므로 분별하며 분별하네.
  
 
[350 / 415] 쪽
  어머니가 아들을 위하여 말하기를
  허공에서 과일을 가지고 오리니,
  너는 과일을 가지고 울지 말라 하거든
  아이가 그 여러 가지 과일을 가지듯이
  
  나는 모든 중생에게
  여러 가지 과일을 분별하여
  탐내도록 여러 가지로 말하였으나
  유무(有無)의 붕당(朋黨)을 떠났노라.
  
  만약 본래 법체가 없을진대
  인(因)도 인을 따름도 아니요,
  본래 생함이 아니면서 처음 생함이나
  또한 그 자체는 없는 것이라네.
  
  몸도 없고 또한 생(生)함도 아니며
  인연을 떠난 곳도 없으니,
  생멸의 모든 법체는
  인연을 떠난 곳[處]이 없네.
  
  대략 이와 같이 관찰하여
  유무(有無)는 다른 곳이 아니라고 하리.
  인연으로부터 생긴 법이니
  지혜 있는 자는 분별하지 말지어다.
  
  1체(體) 2체라 말함은
  외도의 어리석은 말이다.
  세간은 환과 꿈 같고
  인연으로부터 생함도 아니다.
  
[351 / 415] 쪽
  언어(言語)의 경계에 의하여
  대승의 위없는 법을
  나는 요의(了義)에 말했건만
  어리석은 이는 깨닫지 못하네.
  
  성문과 외도는
  질투로서 설법하기에
  뜻(義)엔 서로 합하질 못하니
  망각(妄覺)에 의해 말한 때문이네.
  
  상(相)·체(體)·형상(形相)·명(名)을
  네 가지 법이라 하니,
  이와 같은 법을 보고
  분별을 내느니라.
  
  1과 2와 많음[多]을 분별함이여,
  그는 범천(梵天)의 속박에 따름이니,
  해와 달과 모든 하늘이라 하는
  이러한 견(見)은 나의 제자가 아니네.
  
  성인은 정법(正法)을 보고
  여실한 수행으로써
  능히 허망한 상(相)을 굴리고
  또한 거래(去來)를 떠났네.
  
  이는 해탈의 인(印)이며
  내가 제자에게 가르침이니
  유무법을 떠났고
  또한 거래상(相)을 떠났네.
  
[352 / 415] 쪽
  여러 가지 색(色)과 식(識)을 굴리고
  만약 모든 업을 멸한다면,
  마땅히 상(常)과 무상(無常)이 아닐 것이요
  세간의 생하는 법은 없으리라.
  
  굴릴 때에 만약 업이 멸하여
  색(色)이 저 곳을 떠난다면
  유무(有無)의 과실(過失)은 떠났으나
  업(業)은 아리야(阿梨耶)에 머무르네.
  
  색(色)은 멸하는 체상(體相)이요
  식(識) 가운데에 유(有)도 또한 그러하니
  색과 식이 함께 화합하여
  모든 업(業)은 읽지 아니하네.
  
  만약 저와 함께 화합하였다면
  중생이 모든 업을 잃으리.
  만약 화합한 업을 없애면
  속박도 열반도 없으리라.
  
  만약 저와 함께 없어진다면
  세간 가운데에 나서
  색(色)도 함께 화합하여
  차별 없는 것도 마땅히 있으리라.
  
  차별 있다 또 차별 없다 함은
  다만 이 마음의 분별이다.
  모든 법의 생멸(生滅)없는 체(體)는
  유무의 붕당을 떠났다네.
  
[353 / 415] 쪽
  거짓 이름과 인연법은
  번갈아 서로 차별이 없으니,
  색(色) 가운데의 무상(無常)이
  번갈아 서로 모든 법을 낸다네.
  
  피차(彼此)의 상(相)을 떠남이란
  분별로서 알지 못하리라.
  있는 것 없는 것, 무엇이 성립하랴.
  색(色)의 무상(無常)과 같다.
  
  만약 분별을 잘 본다면
  곧 타력(他力)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요,
  이는 타력(他力)의 법에서
  또한 분별 일으키지 않으리라.
  
  만약 분별을 없앤다면
  이는 나의 법을 없앤 것이요,
  나의 법 가운데에서
  또한 유무(有無)를 비방한 것이다.
  
  이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 있든지
  나의 법륜(法輪)을 없애니
  그와 함께 말하지 말지어다.
  
  지혜 있는 자는 함께 말하지 않을 것이니
  비구(比丘) 법과 같지는 아니하네.
  이미 분별을 없앴다 하고
  허망하게 유무를 떠났다고 하네.
  
[354 / 415] 쪽
  견(見)은 털 바퀴와 환상과 같고
  꿈과 건달바 같으며
  또한 견은 아지랑이 같으니
  이는 유무를 본 것이다.
  
  저 사람은 불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니
  만약 그를 포섭하려는 사람 있다면,
  그 사람은 2변(邊)에 떨어질 것이요
  또한 다른 사람까지 무너트리리라.
  
  만약 고요한 법을 알면
  이는 여실한 수행자요
  유무 법을 떠나리니
  마땅히 그 사람을 포섭하리.
  
  세간의 어느 곳에서는
  금과 은의 모든 보배를 내듯이
  여러 가지로 만드는 업은 없건만
  중생은 수용하네.
  
  중생의 진여인 체(體)는
  업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요,
  견(見)이 아니므로 업(業)이 없으며
  또한 짓는 업으로 생김도 아니네.
  
  모든 법이 법체(法體)가 없음은
  성인의 분별함인 것이요,
  모든 법이 있다 함은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이네.
  
[355 / 415] 쪽
  만약 법이 이와 같음이 없고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과 같다면,
  일체법은 없으리니
  중생도 또한 더러움이 없어야 하리.
  
  모든 법은 마음에 의해 있으며
  번뇌도 또한 이와 같아서
  태어남과 죽음과 모든 세간이
  모든 감관(根)을 따라 구르네.
  
  무명(無明)과 애착이 화합하여
  그리고 몸을 내었으니,
  다른 사람의 항상 법이 없다 함은
  어리석은 이의 분별인 것이네.
  
  만약 인(人)과 법(法)이 생함이 아니라면
  수행자는 감관(根)을 보지 않으리,
  만약 모든 법이 없고도
  능히 세간의 인(生死의 因)을 짓는다면
  
  어리석은 사람도 짓는 것을 떠나고서
  저절로 해탈을 얻으리라.
  범부와 성인의 차별이 없으니
  유무(有無)가 어찌 성립하랴.
  
  성인은 법체가 없으니
  3해탈을 닦았기 때문이네.
  5음과 인(人)과 법에는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 있도다.
  
[356 / 415] 쪽
  모든 인연과 감관을
  나는 성문을 위해 말했노라.
  인연은 없고 오직 마음뿐이며
  묘한 일과 모든 지위와
  속몸의 진여 청정함을
  불자를 위해 말하였노라.
  
  미래 세상에서는
  나의 법륜(法輪)을 비방하면서
  몸에는 가사를 입고
  유무(有無)의 모든 법을 말하리라.
  법의 인연이 없는 것이
  이 성인의 경계라네.
  
  법체가 없다고 분별함은
  망각자(妄覺者)의 분별인 것이네.
  미래 세상에 사람 있으되
  찌끼[糠]먹은 어리석은 종류들이
  인(因)이 없다는 사견(邪見)으로
  세간 사람을 파괴하리라.
  
  미진(微塵)으로부터 세간이 생겼으나
  그러나 미진은 인(因)이 없고
  아홉 가지 물건은 항상됨이라 하여
  사견(邪見)으로 이와 같이 말하네.
  
  물건으로부터 물건이 생기고
  공덕이 공덕을 내는데,
  이 법은 법과 다르고
  
[357 / 415] 쪽
  분별하는 이것 자체가 옳은 것이다.
  만약 본래 없다가 처음 생겼다면
  세간은 마땅히 근본이 있으리라 한다.
  
  나는 말하기를 세간에는
  본제(本際)가 있지 않다 한다.
  삼계의 모든 중생은
  본래 없고 처음 생겼다면
  개와 낙타와 나귀는 뿔이 없으나
  반드시 뿔이 나는 것은 틀림없으리라.
  
  눈(眼)은 본래 없다가 처음 생겼으며
  색(色)과 식(識)도 또한 그러하네.
  자리[席]와 갓[冠]과 흰 모직 등도
  진흙 덩이 속에도 마땅히 나리라.
  
  모직[氎]에는 병(甁)이 없고
  부들[蒲]에도 또한 모직 없다.
  1은 1 가운데에 진실함이니
  무슨 까닭으로 인(因)이 나지 않음이랴.
  
  목숨이 바로 몸이니
  이는 본래 없다가 처음 생김이라 하네.
  이것은 그의 설법이요
  나는 모든 법이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인연법을 알고서
  그런 후에 저들의 법 막았노라.
  저 사견을 막고서
  
[358 / 415] 쪽
  그런 후에야 자법(自法)을 말한다.
  그러므로 외도의 법을 알고서
  그런 후에야 정법(正法)을 말한다.
  
  제자들이 미혹할까 두려워하여
  유무(有無) 법을 세웠노라.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이 생겼다 함은
  가비라(迦毘羅 : 외도 가운데 하나)의 나쁜 뜻이었네.
  
  그는 모든 제자를 위하여 말하기를,
  모든 공덕은 전변(轉變)하여
  실(實)도 아니며 비실(非實)도 아니요
  연(緣)도 아니고 연이 아닌 것도 아니니,
  모든 인연이 없기 때문이며
  실법(實法)의 불생(不生)도 없다하네.
  
  유무 법을 떠났으며
  인(因)도 연(緣)을 떠나고
  생멸(生滅)법을 떠나서
  자체의 법이 보여짐도 떠났도다.
  
  세간은 환과 꿈 같아서
  모든 인연 법을 떠났으니,
  인연이라는 견해를 세우기에
  그러므로 분별 내느니라.
  
  새와 짐승이 아지랑이를 물로 애착함이
  건달바와 털 바퀴와 같아서
  유무 법을 떠났으며
  
[359 / 415] 쪽
  인(因)과 연(緣)을 떠났다네.
  
  3유가 인(因)이 없음을 보고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도 보리라.
  어떤 사람에게 사법[事]이 없으리요,
  다만 내심(內心)만 있을 뿐이다.
  
  마음의 사법을 멀리 떠난다면
  유심(唯心)이라고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바깥의 사법을 관찰한다면
  중생은 마음을 일으키리라.
  
  어찌하여 마음에 인(因)이 없으리요,
  유심(惟心)이라 말할 수도 없으리.
  진여(眞如)와 유심(唯心)만 있다면
  어느 사람인들 성법(聖法)이 없으랴.
  
  유(有)와 비유(非有)라 함이여
  그는 나의 법을 알지 못함이네.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법으로서
  만약 마음이 이와 같이 난다면
  이는 세간의 마음이니,
  마땅히 유심(唯心)이라 말하지 못하리.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이
  만약 꿈속에 생(生)함 같다면
  마땅히 두 가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두 모양이 없느니라.
  
  
[360 / 415] 쪽
  칼이 스스로 베이지 못하며
  손가락이 또한 스스로 가리키지 못하듯이,
  마음이 스스로 보지 못함도
  그 일이 또한 이와 같다네.
  
  다른 것도 인연도 아닌데
  분별함과 분별하는 사법이며
  5법과 두 마음이나
  고요함은 이와 같은 것이 없다네.
  
  능생(能生)과 생(生)이며
  또는 두 가지 법상(法相)에
  나의 뜻에는 능생(能生)이 없고
  설법에도 자상(自相)이 없다.
  
  여러 가지 형상 자체에서
  만약 분별을 낸다면
  허공과 토끼 뿔인
  저 체(體)가 없음이 마땅히 생할 것이다.
  
  만약 모든 법상이 있다면
  마땅히 바깥 사법도 있으리라.
  바깥 분별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떠나면 다시 법은 없으리.
  
  끝없는 세간에서
  바깥 모든 법은 없느니라.
  마음에 생인(生因)이 없으나
  바깥 의(義)를 본다.
  
[361 / 415] 쪽
  만약 인(因)이 없이 생장(生長)한다면
  토끼 뿔도 또한 마땅히 나리라.
  증장하는 인(因)이 없으니
  어찌하여 분별을 내랴.
  
  현재에 법이 없는 것과 같아서
  이와 같이 본래도 또한 없네.
  자체가 화합한 체성도 없으니
  어찌하여 마음이 능히 생하랴.
  
  진여와 공(空)과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와
  일체법의 생(生)함 아닌 것이
  이 제일의(第一義)의 법이네.
  
  범부는 유무에 떨어져서
  인과 연을 분별하니
  인(因)은 없어 본래 생함이 아니지만
  3유(有)를 알지 못하도다.
  
  마음에서 가견(可見)을 본 것은
  무시(無始)로 달리 본 것이다.
  시초도 없고 또한 법도 없으니
  어찌하여 견(見)의 다름이 있으랴.
  
  만약 물건이 없이 능히 생(生)한다면
  가난한 사람도 마땅히 재물이 많으리라.
  어찌하여 물건이 없는데도 마음이 생하는지
  모니(牟尼)께서는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362 / 415] 쪽
  이 일체가 무심(無心)이지만
  모든 법이 없지 않으며
  건달바와 꿈과 환이어서
  모든 법은 인(因)이 있지 아니하네.
  
  생함이 없고 체상(體相)이 없는
  공(空)한 법을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화합한 법을 떠난 것이여,
  이는 모든 법을 보지 않음이다.
  
  그 때엔 공(空)이며 무생(無生)이니
  나는 법상(法相)이 없다고 말하네.
  꿈과 털 바퀴와 환과
  건달바와 물로 애착함이네.
  
  인(因)이 없는데 견(見)이 있으니
  세간법도 또한 그러하네.
  이와 같이 하나[一]에 화합하여
  가견(可見)을 떠나면 없는 것이다.
  
  외도의 견(見)이 아니니
  화합함도 이와 같음이 없도다.
  의(依)가 무인(無因)임을 항복 받으면
  무생(無生)을 성취하리라.
  
  만약 능히 무생(無生)을 이루면
  나의 법륜(法輪)이 멸하지 않으리,
  인(因)이 없는 모양을 말하면
  외도는 두려워함을 내느니라.
  
[363 / 415] 쪽
  어찌하여 어떤 사람 위하랴.
  어느 곳에서 모든 법이 나왔는가.
  어느 곳에서 법이 생겼는가.
  인(因)이 없이 법이 생겼도다.
  
  인 없는 가운데에 나서
  두 인(因)이 없으니,
  만약 능히 지혜 있는 자의 견(見)있다면
  그 때엔 사견(邪見)을 굴리리라.
  
  생(生)을 말하여 일체법이라 하고
  무생(無生)을 물건이 없음이라 하니,
  모든 인연을 관찰하면
  그 때엔 사견(邪見)을 굴리리라.
  
  법이 있으므로 이름(名)이 있고
  법이 없으므로 이름이 없으며
  법이 없으면 생(生)함이 아니요
  또한 인연을 기다림도 아니네.
  
  이름은 법에 의(依)함이 아니요
  이름은 체(體)가 없음이 아니네.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는 그 경계가 아니네.
  
  7지(地)에 머무르는 보살이여,
  그는 생(生)하는 상이 없으니
  인연 법을 굴리기에
  인(因)의 뜻을 막았느니라.
  
[364 / 415] 쪽
  오직 마음에 의함을 말하니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한다.
  인 없이 모든 법 생하였기에
  분별과 분별을 떠났다네.
  
  유(有)와 무(無)의 세움을 떠났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을 말한다.
  마음은 가견(可見)을 떠났으며
  또한 두 체(體)를 떠났다네.
  
  의지(依止)의 법을 굴리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한다.
  바깥 법체를 잃지 않으며
  또한 내심(內心)을 취하지 않네.
  
  일체 사견(邪見)을 떠났으니
  이것이 무생(無生)의 모양이었네.
  이와 같은 공(空)과 무상(無相)의
  일체를 마땅히 관찰하리.
  
  생함이 아니요, 공(空)하고 공한 법이니
  본래 불생(不生)이 공(空)인 것이다.
  모든 인연이 화합하여
  생(生)과 멸(滅)이라네.
  
  화합한 법을 떠나면
  생도 아니며 멸(滅)도 아니다.
  만약 화합법을 떠났다면
  또한 실법체(實法體)도 없으리라.
  
[365 / 415] 쪽
  같은 체(體)와 다른 체는
  외도의 분별함이네.
  유무(有無)가 생(生)하지 않는 법은
  실(實)도 생(生)도 불생(不生)도 아니네.
  
  모든 인연을 떠났으니
  생(生)과 불생(不生)은
  오직 이 명자로서
  피차 번갈아 서로 묶임[鎖]이었네.
  
  가생(可生)인 체성은 필경 없으며
  차별 인연으로 묶임이었네.
  가생(可生)을 떠나서 생(生)함이 없으니
  이는 외도를 떠난 것이었네.
  
  나는 오직 이 묶임[鎖]이라고 말하나
  그러나 범부는 알지 못하네.
  그러나 가생(可生)인 법체는
  묶임을 떠나면 다시 차별 없네.
  
  저 사람은 인(因)을 말함 없고
  모든 묶임을 파멸하여 없애니,
  등불이 모든 물건을 비추어 요달하듯이
  묶임도 또한 마땅히 비추어 요달하리.
  
  만약 다시 다른 법이 있다면
  묶임의 체(體)를 떠나리.
  체(體)도 없고 또한 불생(不生)으로
  자성이 허공과 같네.
  
[366 / 415] 쪽
  묶임의 법을 떠났건만
  어리석은 이는 달리 분별하니,
  이는 생함이 아닌
  성인의 얻은바 법과 다른 것이네.
  
  저 법은 생(生)이면서 불생(不生)이니
  불생(不生)이 무생(無生)인 것이다.
  만약 모든 세간이
  곧 이 인연의 묶임임을 본다면
  
  세간이 무슨 묶임이랴.
  그 때엔 마음이 정(定)을 얻으리니,
  무명(無明)과 애착과 업 등은
  이는 안의 묶임의 법이다.
  
  깃발과 진흙덩이와 바퀴 등으로
  4대(大)가 바깥 법임을 요달하니,
  다른 법체(法體)에 의하여
  이는 인연으로부터 생(生)함이라 하네.
  
  묶임의 체성 뿐만 아니라
  양(量)과 아함(阿含)에도 머물지 않네.
  만약 생하는 법이 없다면
  지혜는 무슨 법으로 인(因)이 되었으랴.
  
  저 법이 번갈아 서로 나니
  이 모든 인연도 아니다.
  뜨거움·젖음·움직임·굳음을
  어리석은 이는 법으로 분별하네.
  
[367 / 415] 쪽
  이 묶임은 법이 없으니
  그러므로 체상(體相)이 없다네.
  의사[醫]가 병에 의하여
  병 다스림의 말함이 차별되듯이
  
  병의 논함은 차별이 없으련만
  병에 따라서 차별하니
  나는 중생의 몸에 의하여
  번뇌탁(煩惱濁)을 말해 주네.
  
  모든 근기와 힘을 알고서
  나는 어리석은 이를 위해 말한다.
  번뇌와 근기는 차별하나
  나의 교법은 차별이 없느니라.
  
  나에게 오직 일승(一乘)이 있으니
  시원하게 성도(聖道)에 드는 것이었네.
  병(甁)과 모직과 갓과 뿔이여,
  토끼 뿔은 인(因)이 없네.
  
  인(因)이 없는데 저에 의해 생겼으니
  저 인(因)의 법은 없는 것이었네.
  저는 인(因)이 없는 법이니
  그대는 무(無)를 취하지 말지어다.
  
  인이 있음에 인에 의하므로 없음이요
  무(無)에 의하여 상응(相應)이 아니네.
  유법(有法)은 무(無)에 상대함이니
  이는 함께 상대인 법이라네.
  
[368 / 415] 쪽
  만약 조금 있는 법에 의한다면
  조금 있는 법을 본 것이다.
  인(因)없이 소법(少法)을 봄이니
  소법은 이 인이 없는 것이네.
  
  만약 그것이 다른 법에 의함이라면
  피차가 번갈아 서로 보리니,
  이와 같이 무궁(無窮)한 허물일 것이며
  소(少)도 또한 소(少)의 체(體)가 없으리라.
  
  색(色)과 나무 등에 의하여
  환상과 같은 가견(可見)의 법이 있으니,
  이와 같이 일에 의지하여
  사람의 보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네.
  
  요술쟁이는 색(色) 등이 아니요
  나무도 아니고 또한 돌도 아니다.
  어리석은 이는 환 같은 것을 보지만
  환인 몸에 의지함인 것이다.
  
  사실에 의하여
  만약 작은 일이라도 본다면,
  견(見)은 두 법이 없으니
  어찌하여 작은 일을 보랴.
  
  분별은 분별이 없으나
  분별 없는 것 아니니,
  만약 분별이 없는 법이라면
  속박도 해탈도 없으리라.
  
[369 / 415] 쪽
  분별은 없는 법이기에
  그러므로 분별을 내지 않으리니,
  만약 분별을 내지 않는다면
  유심(唯心)이라 말하지 못하리라.
  
  여러 가지 마음이 차별함이요
  법 가운데엔 진실한 법이 없으니,
  진실한 법이 없기 때문에
  해탈도 세간도 없느니라.
  
  외물(外物)은 가히 볼 것이 없는데
  어리석은 이가 허망하게 분별하네.
  거울 모양에 나타남과 같은 마음에서
  훈습으로 마음이 미몰(迷沒)함이네.
  
  일체법은 생함 아니요
  있는 것 아니면서 생함 있는 것 같으니,
  이는 일체가 유심(唯心)인 것이라
  모든 분별을 떠났었네.
  
  어리석은 사람은 법을 말함에
  인연을 따르기에 지자(智者)가 아니다.
  실체는 마음을 떠난 것이요
  성인의 마음은 청정함이라네.
  
  승구(僧佉)와 비세사(毘世師)와
  나체(裸體)인 바라문과
  또한 자재천(自在天)은
  진실이 없어 사견(邪見)에 떨어지네.
  
 
[370 / 415] 쪽
  체(體)도 생(生)함도 없고
  공(空)과 환 같아 때[垢]가 없네.
  부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였으며
  부처님께서 어느 사람을 위해 말씀한 것인가?
  
  수행이 청정한 사람은
  사견의 각관(覺觀)을 떠났다네.
  여러 부처님께서 법대로 말씀하시며
  나의 말함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일체가 유심(唯心)이라면
  세간은 어느 곳에 머무르고
  가고 오는 것은 어떤 법에 의하며
  어찌하여 지위를 보는가?
  
  새가 허공에서
  바람을 의지하여 가는데
  머무르지 않고 관찰하지 않고
  땅 위에서 가듯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은
  분별의 바람이 움직임에 의하여
  자심(自心) 가운데에서 가고 오는 것이
  공중에 나는 새와 같네.
  
  몸과 살림살이와 그릇[器]을 보는 것이
  부처의 마음은 이와 같다 말하네.
  어떤 원인으로 현재 보는 것이
  유심(唯心)인지 저희 위해 말씀해 주소서.
  
[371 / 415] 쪽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현재 보는 것은 훈습에서 난 것이니,
  수행이 없는 중생은
  현재 보고 분별을 낸다네.
  
  경계의 체(體)를 분별하여
  마음은 경계에 의해 난 것이니,
  가견(可見)의 마음을 알면
  다시 분별을 내지 않으리라.
  
  만약 능히 분별을 보고
  각(覺)과 소각(所覺)을 떠나면,
  명(名)과 명(名)이 서로 합하지 않으리니
  이는 유위(有爲) 법이라 말하리.
  
  이는 오직 이 가각(可覺)이요
  명(名)과 명이 서로 혼합하지 않음이니,
  만약 사람이 각지(覺知)와 달리한다면
  자각(自覺)과 타각(他覺)이 아니리라.
  
  5법의 실법체(實法體)와
  여덟 가지 식(識)과
  두 가지 무아(無我)는
  대승에 포섭되는 것이네.
  
  만약 지(知)와 가지(可知)를 보아서
  고요히 세간을 본다면,
  명(名)과 명 가운데의 분별이
  그 때엔 다시 나지 않으리라.
  
[372 / 415] 쪽
  명자의 분별을 짓는 것이
  저를 보면 다시 나지 않으리.
  자심을 보지 못했기에
  그러므로 분별이 나니라.
  
  4음(陰)은 모든 상(相)없으니
  그것은 수(數)가 없는 법이다.
  어찌하여 색(色)이 여러 가지이며
  4대(大)가 각각 다른 모양인가?
  
  모든 상(相)의 법을 버리면
  모든 대(大)와 대는 없으리라.
  만약 다른 색상이 있다면
  모든 음(陰)·입(入)을 보지 못하리.
  
  경계와 근(根)과 식(識)에 의하여
  그러므로 여덟 가지 식(識)이 났다.
  상에 의하면 세 가지 있거니와
  고요함은 이와 같음 없다네.
  
  아리야(阿梨耶)와 의(意)와 아(我)와
  아소(我所)와 지혜에는
  두 법 취함으로 인한 것이니,
  그를 알면 법이 곧 법이리.
  
  피차의 법을 떠나서
  만약 서로 떠나지 않음 보면
  세간은 오직 마음의 분별일 것이다.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373 / 415] 쪽
  또한 다시 둘인 아(我)와
  아소(我所)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분별을 증장하지 않으면
  또한 의식(意識)의 인(因)도 없으리라.
  
  인(因)과 연(緣)을 떠났으며
  물건도 아니고 또 생함도 아니다.
  분별은 다만 이 마음인 것을
  세존께서는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모든 인연을 떠났으며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을 떠났으니,
  자심(自心)의 여러 가지를 본다면
  허망한 분별임을 가히 보리라.
  
  자심의 견(見)임을 알지 못하고
  마음과 다른 뜻임을 깨닫지 못하여
  견(見)없이 사견인 성립하고,
  만약 지혜에서 보지 못한다면
  저것은 무슨 까닭으로 있지 않는가?
  저 사람은 마음에 유(有)를 취함이었네.
  
  유무(有無)가 아니라고 분별하여
  그러므로 유(有)의 마음 내지 않으며
  유심(惟心)의 견(見)임을 알지 못하기에
  그러므로 분별을 내는 것이라네.
  
  분별과 분별이 없음이여,
  이는 인(因)이 없다함을 멸한 것이다.
  
[374 / 415] 쪽
  네 가지 붕당을 막고서
  만약 모든 법에 인(因)이 있다면
  이는 명자상(名字相)과 다름이라.
  그 사람은 짓는 것을 이루지 못하리라.
  
  그는 마땅히 다름이 스스로 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마땅히 인(因)이 날 것이다.
  인연이 마땅히 화합한 것이리니
  인연으로 생긴 법을 막으리라.
  
  나는 항상된다는 허물을 막으니
  만약 모든 인연이 무상(無常)하다면,
  이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어리석은 이의 무상(無常)한 견(見)일 것이다.
  
  멸상(滅相)인 법은 법이 없는 것이니
  인(因)을 짓는 것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상(無常)이 유(有)를 냄을
  어찌 사람이 보지 못하랴.
  
  나는 중생을 포섭하는데
  계(戒) 지닌 것으로 항복 받으며
  지혜로 사견(邪見)을 없애고
  해탈에 의하여 증장(增長)하네.
  
  일체 세속에서의
  외도는 허망한 말을 하고
  인과(因果)의 사견에 의하니
  자법(自法)이 능히 성립하지 못하네.
  
[375 / 415] 쪽
  다만 스스로 세우는 법만 이루고
  인연과 과(果)를 떠나서
  모든 제자들에겐
  세속 법을 떠났다 말하네.
  
  유심(惟心)이요, 가견(可見)은 없으니
  마음이 두 가지를 나타낸다.
  가취(可取)와 능취(能取)를 떠났으며
  또한 단(斷)과 상(常)을 떠났네.
  
  다만 마음이 움직이고 구르는 것은
  모두 세속 법인 것이다.
  다시 일으키고 굴러 나지 않으면
  세간이 자심임을 보리라.
  
  오는 것은 이 일이 생함이요
  가는 것은 이 일이 멸함이다.
  여실히 거래(去來)를 알면
  다시 분별을 내지 않으리라.
  
  항상됨과 무상함과 짓는 것들은
  또한 피차를 짓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일체는
  이 모두 세속의 법이라네.
  
  하늘·사람·아수라·
  축생·아귀(餓鬼)·야마(夜摩)에
  중생이 저 곳으로 가기에
  나는 6도(道)를 말했노라.
  
[376 / 415] 쪽
  상·중·하의 업인(業因)은
  능히 저 곳에서 나오니,
  모든 착한 법을 잘 두호하면
  수승한 곳의 해탈을 얻으리.
  
  부처님께서 생각 생각이 생멸(生滅)하여
  나고 죽고 또 물러가는 것 말하여
  비구(比丘) 대중을 위해 말씀하신 것인데
  무슨 뜻으로 저희 위해 말씀하십니까?
  
  마음이 제 2에 이르지 않으면
  멸하고 무너져서 계속되지 않으니,
  나는 제자를 위하여
  생각이 전전(展轉)히 생멸한다 말했노라.
  
  색(色)과 색을 분별로서 있다하여
  생함과 멸함이 바로 이루어지니,
  분별하면 곧 인(人)이요
  분별을 떠나면 인(人)이 없느니라.
  
  내가 염법(念法)을 말함은
  저에 의한 것으로 나의 말함을 마쳤으니,
  색상(色相)의 취함을 떠나면
  생도 멸도 아니라네.
  
  인연은 연(緣)으로부터 생겼으며
  무명(無明)과 진여(眞如) 등은
  두 법에 의해 생긴 것이나
  진여에는 이러한 체(體)가 없느니라.
  
[377 / 415] 쪽
  인연이 연(緣)으로부터 생겼으니
  만약 그렇다면 다른 법은 없을 것이요,
  항상됨으로부터 과(果)가 생기고
  과(果)는 곧 이 인연일 것이다.
  
  외도와 다름없고
  인과가 서로 혼잡하리니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의 말과
  큰 모니(牟尼)도 다름없다네.
  
  이 한 길[一尋]의 몸에서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와
  멸제(滅諦)와 도제(道諦)를
  나는 여러 제자를 위해 말했노라.
  
  셋을 취하여 진실로 여김은
  취(取)와 가취(可取)의 사견(邪見)이니,
  세간법과 출세법을
  범부들은 분별하네.
  
  나는 다른 법을 알았기에
  3법을 말하여
  저 사견(邪見)을 막기 위함이니,
  실체(實體)라 분별하지 말지어다.
  
  말해 본들 고정된 법 없고
  또한 다시 마음의 생(生)함이 없다.
  진실도 또한 2취(取)가 아니니
  진여(眞如)엔 두 가지가 없는 것이네.
  
[378 / 415] 쪽
  무명(無明)과 애착과 업(業)과
  식(識) 등이 사견으로부터 나오니,
  무궁한 허물을 짓지 않으면
  짓는 가운데에도 유(有)는 생하지 않으리.
  
  모든 법이 네 가지로 멸한다 함은
  지혜 없는 이의 말한 바요,
  두 가지로 생(生)한다 분별함은
  물질 있는 것과 물질 없는 것이네.
  
  네 가지 법을 떠나고
  또한 네 가지 견해를 떠나면
  두 가지 분별이 나는 견해도
  다시 나질 않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生)함 아닌
  지혜의 차별에서 일어나서
  현재 모든 법이 나고 있으나
  평등하게 모두 분별하지 말지어다.
  
  원컨대 큰 모니(牟尼) 어른이시여,
  저와 모두를 위하시어
  법에 상응(相應)함과 같이
  두 가지인 두 견해 떠남을 말씀해 주소서.
  
  저희는 사견을 떠났으며
  다른 여러 보살들도
  항상 유무(有無)를 보지 않으니,
  저 법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379 / 415] 쪽
  외도와 화합하여 섞임을 떠났고
  성문과 연각도 떠나서
  부처님께서 성인의 법을 증득하시고
  저희 위해 말함을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이다.
  
  전도(顚倒)의 인(因)과 연(緣)의 인(因),
  무생(無生)과 일체,
  다른 이름인 모든 미혹을
  지자(智者)는 멀리 떠날 바이네.
  
  비유컨대 구름·비·누각(樓)과
  궁각(宮閣)과 무지개와
  아지랑이와 털 바퀴와 환상의
  유무(有無)는 마음 따라나네.
  
  모든 외도는 분별하여
  세간이 자인(自因)으로 생겼다 하나
  불생(不生)인 진여법과
  실제(實際)와 공(空)이라 하는
  
  이 모든 다른 법의 이름을
  없는 물건이라 분별하지 말 것이요,
  색(色) 위에서의 여러 가지에도
  없는 법이라 분별하지 말지어다.
  
  세간의 손과 손톱으로
  자재롭게 능히 물건을 부수듯이
  이와 같은 일체법을
  없는 법이라 분별 말지어다.
  
 
[380 / 415] 쪽
  색(色)과 공(空)이 다르지 않음을 떠나서
  또한 생기는 법체도 없느니라.
  없다 다르다 분별하지 않을 것이니
  분별하면 사견에 집착하리라.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은
  모든 사상(事相)을 취하는 것이요,
  길고 짧고 모나고 둥근 것들은
  분별하는 상(相)에 포섭된 것이라네.
  
  분별은 심(心)의 법이요
  가분별(可分別)은 의(意)이니,
  만약 능히 법과 같이 안다면
  능상(能相)과 가상(可相)을 떠날 것이다.
  
  외도는 불생(不生)을 말하며
  아(我)와 법(法)을 취하여
  이와 같은 상(相)을 분별하나
  이 두 견(見)은 차별이 없다네.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했느냐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저 사람은 양(量)에 들어가서
  능히 나의 설법 알으리라.
  
  견(見)을 인함은 침몰(沈沒)하는 것이요
  무생(無生)은 의지함이 아니니,
  이 두 가지 뜻을 알았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한다.
  
[381 / 415] 쪽
  모든 법이 생김이 없는 것을
  모니(牟尼)는 저희를 위해 말씀하소서.
  인(因)이 없어 서로 상대함이 아니요
  법이 섞임도 있지 않으니
  
  인(因)도 생김도 없어서
  인(因)의 견(見)인 외도와 다르며
  유무(有無)를 떠나 법 없으니,
  그러므로 유심(唯心)이라 말하였네.
  
  생(生)과 불생(不生)에서
  법을 떠나면 사견(邪見)이요,
  인(因)없고 생김이 없다 말 한데서
  유(有)를 말하면 인(因)에 집착함이네.
  
  자연(自然)이요 짓는 자가 없으니
  짓는 것이라면 사견이네.
  방편과 모든 원(願) 등의
  이러한 견(見)을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만약 모든 법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3세(世)를 낸 것이며,
  가취(可取)와 능취(能取)를 떠나서
  생함도 멸함도 아니다면
  
  물건으로부터 다른 물건 보며
  저 법에 의해서 마음 나고
  모든 법이 변화를 내지 않는다고
  어찌하여 저희에게 말씀하셨습니까.
  
[382 / 415] 쪽
  실로 있는 데도 알지 못하기에
  그러므로 나는 설법한다 하여
  모니(牟尼)의 여러 법에서
  앞 뒤 말이 상위(相違) 하나이다.
  
  외도의 모든 허물을 떠났고
  전도(顚倒)의 인(因)도 떠났는데,
  생(生)과 불생(不生)을
  큰 스승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유(有)와 무(無)를 떠나고
  인과(因果)를 잃지도 않으며
  지위와 차제를
  하나의 무상(無相)이라 말씀하셨나이다.
  
  세간이 2변(邊)에 떨어진 것은
  모든 견(見)의 미혹 때문이니,
  생(生)과 무생(無生) 등이라 하여
  적멸(寂滅)의 인(因)을 알지 못하였네.
  
  나는 3세(世)의 법도 없으며
  나는 또한 설법도 아니한다.
  둘이 있으면 다 허물이 있으니
  제불(諸佛)은 둘이 청정하네.
  
  모든 법은 공(空)이요 찰나(刹那)며
  체(體)가 없으며 생함이 아니다.
  삿된 법이 마음을 가리웠다 말하니
  분별하면 여래 아니라네.
  
[383 / 415] 쪽
  생(生)과 불생(不生)을
  원컨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어찌하여 어떠한 법들이
  경계를 떠나서 나리요
  색(色)이 구족하여 화합함은
  희론으로부터 모인 것이었네.
  
  바깥 색상(色相)을 취하여
  분별함으로부터 났으니,
  저 법을 아는 자라면
  이는 여실히 아는 것이네.
  
  성인(聖)의 성(性)을 수순하여
  마음이 다시 나지 않으며,
  일체 대(大)를 떠나서
  생법(生法)이 상응(相應)하지 않으리.
  
  마음의 허망으로 대(大)를 본 것이니
  이와 같이 무생(無生)임을 관찰하여
  분별과 가별(可別) 아니할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분별 아니하네.
  
  분별에서 분별하는
  이 둘은 열반이 없다네
  무생(無生)법에 서서[立]
  환과 같은 법을 보지 않으리.
  
  환 등의 인(因)으로부터 생겨서
  건립한 바 모든 법은 무너지네.
  
[384 / 415] 쪽
  견(見)의 마음은 거울 모양 같고
  끝없는 훈습의 인(因)이어서
  의(義) 같으면서 의(義)가 없으니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함으로 관찰하라.
  
  거울의 색상(色像)은
  1·2의 모양을 떠났듯이
  가견(可見)인 무(無)와 비무(非無)의
  모든 상(相)도 또한 이와 같다네.
  
  건달바와 환(幻) 등을
  인연에 의해 관찰할 것이니,
  이와 같은 모든 법의 체성은
  생(生)이요, 불생(不生)아닌 법이라네.
  
  분별함이 아(我)법과 같아서
  두 가지 모양이 나타나네.
  아(我)와 법을 말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네.
  
  상위(相違)와 무인(無因)과
  성문인 나한과
  스스로 이룬 이와 부처님의 힘이
  다섯 가지의 성문이라네.
  
  시간의 간격과 멸하는 것과
  제일(第一)과 제일을 떠난 것이
  이 네 가지 무상(無常)이니,
  어리석은 이는 지혜 없이 분별하네.
  
[385 / 415] 쪽
  어리석은 이는 2변(邊)인
  공덕과 미진(微塵)에 떨어져서
  해탈의 인(因)을 알지 못하고
  유무(有無)법에 집착하네.
  
  비유컨대 어리석은 사람이
  손가락을 달이라고 하듯이,
  이와 같이 명자(名字)를 좋아하고
  나의 설법을 알지 못하네.
  
  모든 대(大)는 각각 다른 모양이고
  색(色)의 체(體)가 서로 나는 것이 없다네.
  그리고 모든 대(大)는 화합하여
  대(大)도 없고 대에 의지함도 없네.
  
  불은 능히 모든 색(色)을 태우며
  물은 능히 모든 물건을 뭉크러지게 하고
  바람은 능히 모든 색을 움직이거니
  어찌 대(大)의 모양이 나리요.
  
  색음(色陰)과 또한 식(識)이여,
  이 법은 둘이요 다섯이 아니니,
  이 모든 음(陰)의 다른 이름은
  나는 제석(帝釋)과 같다고 말한다.
  
  심(心)과 심수(心數)가 차별하여
  현재 구르므로 모든 법이 생기니,
  4대(大)는 피차가 다르나
  색(色)과 심(心)은 그로부터 의지함이 아니네.
  
[386 / 415] 쪽
  푸른 것들에 의해 흰 것이 있으며
  흰 것에 의해 푸른 것들이 있으며
  인과(因果)에 의하여
  공(空)과 유(有)와 무(無)가 생긴다네.
  
  능작(能作)과 가작(可作)이 짓는 것과
  차고 뜨거운 견(見)들인 견(見)이여,
  이와 같은 것들의 일체는
  허망한 각(覺)으로는 능히 성립하지 못하리.
  
  심(心)과 의(意)와 기외 여섯인
  모든 식(識)이 함께 화합하여
  같음·다름의 체(體)를 떠났는데,
  나고 죽음이 허망하게 난다네.
  
  승구(僧佉)와 비세사(毘世師)와
  나체(裸形)인 외도는 자재천(自在天)이라고 하여
  유무(有無)의 붕당에 떨어지고
  고요한 뜻을 떠난 것이라네.
  
  형상과 용모가 수승하게 나는 것과
  4대(大)로 나는 것 아니라고 함은
  이 외도의 나는 것을 말하는
  4대와 4진(塵)이었네.
  
  그밖에는 날 곳 없는데서
  외도는 인(因)이라 분별하고
  어리석고 깨닫지 못하여
  유무의 붕당에 의지하네.
  
[387 / 415] 쪽
  생(生)이란 공심(共心)과 상응(相應)하고
  사(死)는 불공(不共)과 상응하며
  청정한 실상(實相)의 법은
  지혜와 함께 상응하여 머무르네.
  
  업(業)과 색상(色相)엔
  5음(陰) 경계의 인(因)이요,
  중생은 인(因)의 체(體)가 없기에
  무색계(無色界)에는 머무르지 아니하네.
  
  부처님의 말씀하신 법무아(法無我)여,
  무색(無色)은 외도와 같을 것이다.
  무아(無我)를 말함은 이 단(斷)이니
  식(識)이 또한 마땅히 나지 않으리.
  
  마음은 네 가지 머무름이 있는데
  무색(無色)엔 어떻게 머무르랴.
  안과 밖에서 모든 법상(法相)은
  식(識)이 능히 행하지 못하네.
  
  허망하게 각(覺)하는 이는 유(有)라 계교하여
  중음(中陰)에 5음(陰)이 있다 하고
  이와 같이 무색(無色)에 나며
  유(有)이면서 무색(無色)이라고 하네.
  
  자연히 마땅히 해탈할 것이요
  중생과 식(識)이 없다 하니,
  이는 외도임이 틀림없는데도
  허망한 각(覺)은 능히 알지 못하네.
  
[388 / 415] 쪽
  만약 저 곳이 무색(無色)이라면
  그러므로 무색을 볼 것이니,
  저 무색은 법을 세운 것이 아니며
  승(乘)과 무승자(無乘者)도 아니네.
  
  식(識)은 종지로부터 나서
  모든 근(根)과 함께 화합하였으니,
  여덟 가지와 색(色)의 일분(一分)은
  생각의 시간에도 취하질 못하리.
  
  색(色)이 시간에 머무르지 않으며
  근(根)도 근(根)과 함께 머무름이 아니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말하여
  모든 근(根)이 생각과 머무르지 않는다 한다.
  
  만약 색의 체(體)를 보지 못한다면
  식(識)이 어떻게 분별하리요,
  만약 지(智)가 나지 않았다면
  어찌 세간을 내었으랴.
  
  곧 생길 때에 곧 멸한다고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지 아니하였네.
  일시도 또한 생각함이 아니건만
  허망한 분별로 취한 것이었네.
  
  모든 근(根)과 경계여,
  어리석음이요 지자(智者) 아니네.
  어리석은 이는 이름 듣고 취하지만
  성인은 여실히 아느니라.
  
[389 / 415] 쪽
  제 6은 의지함이 없으니
  인(因)을 가히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我)를 잘 알지 못하고서
  법의 허물 있는 것 떠나려고 하네.
  
  유무(有無) 법엔 두려워하지만
  깨달은 이는 실지(實智)도 떠난다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아(我)를
  어리석은 이는 능히 알지 못하네.
  
  하나[一]에도 시설한 법이 있으며
  다름[異]에도 또한 이와 같네.
  한가지의 마음 가운데 일체(一體)임을
  의식(意識)은 능히 아네.
  
  만약 시설이 마음이라면
  심수(心數)는 명자(名字)일 것이다.
  어찌하여 능취(能取)를 떠나랴
  일(一)과 이(異)를 분별함인 것이네.
  
  같은 인(共因)이 견(見)에 의지하여
  업(業)과 생(生)과 작업(作業)등이라 하며,
  불과 같고 이와 같다는 말은
  비슷하고 비슷한 법이라네.
  
  불은 일시의 순간에도
  가소(可燒)와 능소(能燒)가 다르듯이,
  이와 같은 아(我)도 인(因)에 의지하거니
  망각(妄覺)인들 어찌 그렇지 않으랴.
  
 
[390 / 415] 쪽
  생(生)과 또한 불생(不生)이여,
  마음은 항상 청정하네.
  망각(妄覺)한 이의 아(我)를 세우는데
  무슨 까닭으로 비유를 말하지 아니하랴.
  
  식(識)의 주림(稠林)에 미혹하고
  진실 법을 떠나서
  망각(妄覺)에서 동서(東西)로 헤매니
  신아(神我)를 찾는 것 또한 그러하네.
  
  속 몸으로 진실한 행 닦는
  아(我)는 청정한 모양이라네.
  여래장(如來藏)은 부처님의 경계요
  망각(妄覺)은 그 경계가 아니라네.
  
  가취와 능취(可取能取)와
  차별인 5음(陰)·아(我)를
  만약 능히 이 모양 알면
  그 때엔 참 지혜가 생하리.
  
  외도는 말하기를
  의식(意識)과 아리야장(阿梨耶藏)의 체(體)는
  아(我)와 함께 상응한다고 하나
  나의 설법은 그렇지 아니하네.
  
  만약 여실히 법을 알면
  실체(實諦)에서 해탈 얻으며
  수행하여 도(道)를 보면
  번뇌 끊어 청정하리라.
  
[391 / 415] 쪽
  마음의 자성은 청정하니
  여래의 청정한 법신(法身)이라네.
  이 법은 중생에 의함이니
  변(邊)과 무변(無邊)을 떠났다네.
  
  금과 또한 금빛과
  돌의 성질과 진금(眞金)을
  도야(陶冶)하는 사람이 능히 나타내니
  중생도 음(陰)에서 또한 그러하네.
  
  사람도 또 음(陰)도 아니요
  불(佛)은 무루(無漏)의 지혜니,
  무루이며 항상됨인 세존이기에
  그러므로 나는 귀의함이네.
  
  마음의 자성[心自性]은 청정한데
  번뇌와 뜻으로 짓는 것이
  5음과 함께 상응(相應)하는 것을
  부처님[說中勝者]은 말씀하소서.
  
  마음의 자성은 청정한 것이요
  의(意) 등은 이 인연이다.
  그가 능히 모든 법을 지으니
  그러므로 저 두 가지 염(染)이라네.
  
  의(意) 등의 객진(客塵)과 번뇌 법과
  아(我)의 청정한 그것이
  번뇌의 염(染)에 의지했으니
  때[垢]가 청정한데에 의지함 같네.
  
[392 / 415] 쪽
  옷이 때[垢]를 벗어남과 같아서
  있으나 가히 볼 수 없으니
  나의 허물 떠남도 또한 그러하네.
  
  거문고와 소라와 북의
  여러 가지 미묘한 소리와 같이
  음(陰) 가운데에 아(我)도 또한 그러한데
  어리석은 이는 일(一)·이(異)로서 찾으려 하네.
  
  땅속의 모든 보장(寶藏)과
  청정한 물과 같아서
  음(陰) 가운데에 아(我)도 또 그러하여
  실로 있지만 가히 볼 수 없다네.
  
  심(心)과 심수(心數) 법과 공덕이
  음(陰)과 화합하였듯이
  음 가운데에 아(我)도 또 그러하여
  지혜 없는 이는 능히 보지 못하네.
  
  여인(女人)의 태장(胎藏)과 같아서
  비록 있으나 보이지 않듯이
  아(我)는 5음(陰)에서
  지혜가 없으므로 보이지 아니하네.
  
  향기로운 약과 무거운 짐과
  불과 섶과 같아서
  음(陰) 가운데에 아(我)도 또한 그러하건만
  지혜 없이 능히 보이지 아니하네.
  
  
[393 / 415] 쪽
  일체 모든 법에서
  무상(無常)과 공(空)이듯이
  음(陰)에서 아(我)도 또한 그러하건만
  지혜가 없어 보이지 않음이 있네.
  
  모든 지위와 자재함과
  신통과 지위 받음과
  위없는 묘한 여러 법과
  다른 모든 삼매와
  
  또는 모든 수승한 경계여,
  만약 음(陰) 가운데에 아(我) 없다면
  이 모든 법들은
  모두 또한 없어야 하리.
  
  어떤 사람이 쳐부수어 말하기를
  만약 아(我)를 마땅히 보일 수 있다 하면
  지자(智者)는 마땅히 답해 말하기를
  너의 마음을 마땅히 나에게 보여라 하리.
  
  진여(眞如)에 아(我)가 없다고 말함은
  오직 이 허망한 말이니,
  비구 업을 짓는 자라면
  마땅히 함께 화합하지 말지어다.
  
  이 사람은 유무(有無)를 세우고
  두 붕당(朋黨)에 떨어져서
  불법을 파괴함이니
  그는 나의 법에 머무르지 아니 하리라.
  
[394 / 415] 쪽
  외도의 허물을 떠나며
  무아견(無我見)을 불태우고
  나로 하여금 치연(熾然)한 것을 보는 것이
  겁(劫)이 다할 때 불꽃과 같게 하리.
  
  석밀(石蜜)과 포도와
  젖과 타락(酪)과 우유·기름 등의
  저 곳에 있는 맛은
  맛보지 않는 이는 알지 못하듯이
  
  다섯 가지 가운데에서
  5음(陰)의 아(我)를 취함도 또 그러하네.
  어리석은 이는 보지 못하니
  지혜로 보아야 해탈 얻으리.
  
  밝음의 모든 비유로는
  심법(心法)을 볼 수 없으니,
  어느 곳 무슨 인연으로도
  화합한 것을 볼 수 없네.
  
  모든 법의 다른 체상(體相)을
  일심(一心)으론 능히 취하지 못하네.
  인(因)도 없고 또 생(生)도 없으니
  허망각자(虛妄覺者)의 허물이다.
  
  진실로 수행하는 이는 마음을 볼 것이니
  마음 가운데엔 마음을 보지 못하네.
  가견(可見)은 견(見)으로부터 나거니와
  능견(能見)은 무슨 인(因)으로 나는 것이랴.
  
[395 / 415] 쪽
  나의 성(姓)은 가전연(迦旃延)인데
  수타회(首陀會)의 하늘에서 나서
  중생 위하여 설법하고
  열반 성(城)에 나아갔노라.
  
  이는 과거의 행하던 길이요,
  나와 여러 부처님께서
  3천 수다라(修多羅)에서
  열반의 법을 말했노라.
  
  욕계(欲界)와 무색계(無色界),
  부처님께서 그곳에서 성불 아니 하시고
  색계(色界)의 맨 위의 하늘인
  욕계 떠난 데서 보리(菩提)를 이루셨네.
  
  경계는 속박의 인(因)이 아니요
  경계를 따르는 것이 속박이다.
  지혜는 번뇌를 끊으니
  수행자의 날카로운 칼이라네.
  
  아(我)도 환상도 있으나
  법의 유무(有無)는 어떠한가?
  어리석은 이는 이와 같음을 보지 않으니
  어찌하여 아(我) 있고 없는 것이랴.
  
  지음과 짓지 않음이 있기에
  인(因) 없이 굴러서 나네
  일체법은 생김이 아닌 것을
  어리석은 이는 깨닫지 못하네.
  
[396 / 415] 쪽
  모든 인(因)은 능히 생김 아니며
  모든 연(緣)도 또한 짓는 것이 아니고,
  저 둘은 능히 생기지 못하니
  어찌 연(緣)이라고 분별하랴.
  
  선후(先後)와 일시(一時)를
  망각자(妄覺者)는 인(因)이라 말하며,
  허공과 병(甁)과 제자(弟子)의
  일체 물질이 난다고 하네.
  
  부처님께서 유위(有爲)로 된 것 아니니
  모든 상호(相好)로 장엄한 것은
  이는 전륜왕(轉輪王)의 공덕이요,
  부처님의 얻어진 이름 아니네.
  
  부처님께서 이 지혜의 모양이어서
  사견(邪見)의 허물 떠났으며
  속 몸인 이 지혜의 견(見)이요
  일체 허물을 떠났도다.
  
  귀 먹고 눈멀고 벙어리와
  늙고 젊은 악(惡)을 지닌 사람이여,
  이들 일체 사람들을
  범행(梵行)이 없는 자라 이름하리.
  
  광대하고 승묘(勝妙)한 몸은
  전륜왕(轉輪王)의 모양이네.
  출가한 이는 혹 하나·둘이고
  그 외는 방일(放逸)하는 자라네.
  
[397 / 415] 쪽
  비야사가나(毘耶娑迦那)와
  또는 이사바(梨沙婆)와
  가비라석가(迦毘羅釋迦)는
  내가 열반에 든 후 미래 세상에
  마땅히 이들이 출세하리라.
  
  내가 멸도(滅度)한 후 100년에는
  비야사위타(毘耶娑圍陀)와
  반다바(般茶婆)와
  구라바실라(鳩羅婆失羅)가 있어 날 것이요,
  그러한 후에는
  또 다시 모리(毛釐) 등이 있으리라.
  
  다음에는 모리굴다(毛釐掘多)요
  다음엔 무도왕(無道王)이 있을 것이며
  다음에 도검(刀釰)의 난(亂)이 있고
  다음은 도검(刀釰)의 말세일 것이다.
  
  다음 말세의 세상에는
  법도 없고 수행함도 없으리니,
  이러한 말세(末世)가 지나면
  세간에 바퀴 구르듯이
  
  해와 불이 함께 화합하여
  욕계(欲界)를 불태우고서
  다시 좋은 세계 이루고
  기세간(器世間)이 생기리라.
  
  4성(姓)과 국왕과
  
[398 / 415] 쪽
  모든 선인(仙人)과 법에서의
  큰 모임에서 공양 보시하면
  그 때엔 법이 도로 본래와 같으리라.
  
  설법은 본래 이와 같으니
  장행(長行)과 자주(子注)와
  자주(子注)에 또한 중작(重作 : 해석)이
  여러 가지로 한량없이 말하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는 것이
  세상에서 묻히고 없어지므로
  진실한 법을 알지 못하리니
  어떤 것이 시비(是非)이랴.
  
  옷을 법대로 염색하기를,
  다듬이질하고 다림질하여 깨끗이 하고
  진흙과 소똥 등으로
  괴색(壞色)하여 수용하리.
  
  몸을 바르는 모든 향과 옷으로
  외도의 모양을 떠난 것은
  나의 법륜(法輪)을 유통함이니
  이는 여래의 모양이었네.
  
  거른 물 아니면 마시지 않고
  허리띠와 속옷으로
  때[時]를 따라서 걸식(乞食)하지만
  하천(下賤)한 집은 떠나리.
  
  
[399 / 415] 쪽
  묘한 하늘과 인간의
  수승한 곳에 태어나서
  보배로운 모양 성취하여
  천인(天人) 가운데에서 자재하리.
  
  법에 의해 수행하는 자는
  하늘과 4천하(天下)에 태어나는데,
  많은 시간을 수용하다가
  탐심 많음에서 도로 없어지리라.
  
  바른 시대(正時)와 3재(灾)와
  또한 두 악한 세상이며
  나와 다른 바른 시대와
  석가의 말세인 시대엔
  
  석종(釋種), 실달타(悉達他)와
  8비(臂)와 자재(自在),
  이와 같은 외도들은
  내가 멸도(滅)하면 세상에 나오리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는 것들은
  석가 사자(師子)의 말함이니,
  일찍이 이와 같은 일이 있었고
  비야사(毘耶娑)도 이를 말한다.
  
  여덟 팔[八臂]인 나라연(羅羅延)과
  마혜수라(摩醢首羅)도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나의 변화로 세간을 만들었다고 하리.
  
 
[400 / 415] 쪽
  나의 어머니 이름은 선재(善才)며
  아버지 이름 범천왕(梵天王)이요
  나의 성(姓)은 가전연(迦旃延)인데
  모든 번뇌를 떠났노라 하리.
  
  섬바(贍婆) 성(城)에 태어나고
  나의 아버지와 조부이신
  아버지 이름은 월호(月護)이시니
  달 종족(種)으로부터 태어났다 하리.
  
  출가하여 진실 행을 닦았고
  천 가지 구절[句]을 말하며
  열반에 든다고 수기하고
  대혜에게 전륜의 굴림이 부족하네.
  
  대혜(大慧)는 법승(法勝)에게 주며
  법승은 미구리(彌佉梨)에게 주고
  미구리는 제자가 없어서
  그 다음 때엔 법이 없어지리라 하리.
  
  가섭(迦葉)과 구류손(拘留孫)과
  구나함모니(拘那含牟尼)와 나는
  모든 번뇌 떠났으니
  일체 바른 시대라 이름하네.
  
  저 정법(正法)을 지난 후에는
  부처님께서 있어 여의(如意)라 이름하리니,
  거기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사람을 위해 5법을 설하리라.
  
[401 / 415] 쪽
  2·3재(災)가 없는 가운데에는
  과거와 미래 세상도 또한 그러하여
  여러 부처님께서 출세 아니 하시고
  바른 시기에 세상에 출현하시네.
  
  상(相)이 있음을 박탈할 사람 없고,
  옷을 나누고 자르지 아니 하고
  납의(衲衣)를 찢고 모아서 만들어
  공작(孔雀) 그림의 색과 같네.
  
  두 치[寸]와 혹은 세 치로서
  얼기설기 납의(衲衣)를 깁을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이 아니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에게 탐내고 빼앗기리라.
  
  항상 탐욕의 불을 끄고
  지혜의 물로 항상 씻고 목욕하며,
  밤 낮 6시(時)에
  여실히 법을 수행하라.
  
  쏘는 화살과 돌과 나무는
  힘이 다하면 다시 땅에 떨어지니
  하나를 쏘면 다시 하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선(善)과 불선(不善)도 또한 그러하네.
  
  하나 가운데엔 많은 종류가 없으니
  상(相)은 이와 같음이 없기 때문이네.
  바람이 일체에 불어감과 같으며
  전지(田地)가 불에 타는 것과 같네.
  
[402 / 415] 쪽
  만약 하나가 능히 많음을 짓는다면
  일체는 짓는 것 없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일체를 잃음이니
  이는 망각자(妄覺者)의 법이리라.
  
  등불과 종자가 같은데
  어찌 많음이 비슷하리요,
  하나가 능히 많음을 내었다면
  이는 망각자(妄覺者)의 법이리라.
  
  호마[麻]엔 팥이 나지 않고
  나락에는 큰 보리가 나지 않으며
  작은 보리들의 종자가 나지 않으리니
  어찌 하나가 많음을 내리요.
  
  파니(波尼)가 성론(聲論)을 내었고
  아차파(阿叉波)의 태백(太白)이며
  말세에 범장(梵藏)이 있어서
  세속론(世俗論)을 말하리.
  
  가전연(迦旃延)이 경(經)을 지으며
  야바가(夜婆伽)도 또한 그러하네.
  부주가(浮稠迦)의 천문(天文)이여,
  이는 다음 말세의 논이라네.
  
  바리(婆梨)가 세복(世福)을 말하기에
  세상 사람이 복덕에 의지하여
  능히 모든 법을 두호하고
  왕 바리(婆離)는 땅을 보시하리라.
  
[403 / 415] 쪽
  미가마수라(彌迦摩修羅)와
  아서라(阿舒羅) 등은
  미혹과 왕론(王論)을 말하고
  말세엔 여러 신선 나타나리라.
  
  싯달타(悉達他)는 석종(釋種)이요
  부단타(浮單陀)는 5각(角)인 자라네.
  구력(口力)과 힐혜(黠慧)는
  내가 멸도한 후 출세하리라.
  
  아시나(阿示那) 삼굴(三掘)과
  미구라(彌佉羅) 조관(澡罐)이었네.
  내가 아란야(阿蘭若)에 있을 적
  범천(梵天)이 나에게 보시하였네.
  
  그대는 당래(當來) 세상에
  큰 이진구(離塵垢)라 이름할 것이요,
  능히 참 해탈을 말하리니
  이는 모니(牟尼)의 모양이라네.
  
  범천(梵天)이 범중(梵衆)과 함께
  모든 하늘 대중과 더불어
  녹피(鹿皮) 등을 나에게 보시하고
  도로 자재천(自在天)으로 사라졌네.
  
  여러 얼기설기 섞인 옷이며
  걸식하는 발우를 만들어
  제석과 사천왕(四天王)은
  조용한 곳에서 나에게 보시하였네.
  
[404 / 415] 쪽
  무생(無生)과 또한 인(因)과
  생(生)과 불생(不生)을 말하고서
  불생(不生)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는 다만 언어를 말함이네.
  
  만약 무명(無明) 등의 인(因)이
  능히 모든 마음을 내었다면
  색(色)이 나지 못했을 때엔
  중간이 어디에 머무르랴.
  
  즉시 마음에서 멸하고
  다시 다른 마음을 낸다면
  색(色)은 한 생각도 머무름이 아니니,
  무슨 법이 능히 생김을 관찰하랴.
  
  무슨 인연에 의지하는가?
  마음은 이 전도(顚倒)의 인(因)이다.
  그는 능히 법을 이루지 못하리니,
  어찌 생멸(生滅)을 알 것인가?
  
  수행자가 정(定)에 합하면
  금안사나(金安闍那)의 체(體)일 것이니
  광음천(光音天) 궁전에는
  세간법이 무너지지 않네.
  
  증득할 바 법에 머무름은
  이는 일체 부처님과
  여래 등의 지혜이니,
  비구는 그 법을 증득해야 하리.
  
[405 / 415] 쪽
  나머지 증득한 바 법이란
  그 법은 항상 무너지지 않네.
  
  어찌하여 허망하게 볼 것인가?
  모든 법은 생각에도 머무르질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생각에도 머무르지 않는가?
  건달바와 환(幻)의 색(色)이다.
  모든 색(色)은 4대(大)가 없거니,
  모든 대(大)는 무슨 소위(所爲)이랴.
  
  무명(無明)으로 있는 마음과
  끝없는 세계에의 훈습으로
  생멸(生滅)에 의한 화합(和合)이니,
  망각자(妄覺者)의 분별이었네.
  
  승구(僧佉)가 두 가지 있으니
  훌륭함과 전변(轉變)이다.
  훌륭함 속에 과(果)가 있으니
  과(果)가 또다시 과를 성취하네.
  
  훌륭함은 대(大)의 체상(體相)이니
  공덕의 차별을 말하는
  인과(因果) 두 가지 법은
  전변 가운데엔 없다네.
  
  수경(水鏡)은 청정하여
  진토(塵土)가 더럽히지 못하듯이
  진여(眞如)는 이와 같이 청정하여
  중생이 의지하였다네.
  
[406 / 415] 쪽
  흥거(興渠)와 파(葱)와
  여인(女人)의 회태장(懷胎藏)과
  소금과 소금 가운데 맛과 같아
  종자(種子)가 어찌 없으랴.
  
  이체(異體)와 불이체(不異體)라고 하는
  2체(體)의 두 법을 떠났고
  유(有) 법과 인연 없음의
  유위(有爲)에 없는 것이 아니라네.
  
  말(馬) 가운데엔 소(牛)가 없듯이
  음(陰) 가운데 아(我)도 그러하여
  유위(有爲)·무위(無爲)라 말하는
  이 법은 말할 수 없다네.
  
  악견(惡見)의 양(量)과 아함(阿含)은
  삿된 각(覺)의 구염(垢染)에 의함이네.
  깨닫지 못하고 아(我)있다 말함이니
  인(因)도 인을 떠남도 아니었네.
  
  5음엔 아(我)가 없으니
  아(我)를 취함은 허물이다.
  같음과 다름에서
  망각자(妄覺者)는 깨닫지 못하네.
  
  수경(水鏡)과 눈(眼)에서
  거울 속의 모양을 보는 것과 같아서
  일(一)과 이(異)를 멀리 떠났으니,
  음(陰) 가운데 아(我)도 또 그러하네.
  
[407 / 415] 쪽
  가관(可觀)과 능관(能觀)과
  선도(禪道)로 중생 보는 것인
  이 세 법을 관찰하여
  사견(邪見) 법을 떠나야 하리.
  
  곧 지견(知見)을 곧 없애면
  구멍 속에 허공 보는 것 같으리라.
  모든 법의 전변(轉變)하는 상(相)을
  어리석은 사람은 허망하게 분별하네.
  
  열반은 유무를 떠났으니
  여실(如實)한 견(見)의 자리에 머물러서
  생멸법을 멀리 떠나고
  또 유무(有無)의 체(體)도 떠나리.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을 떠나며
  전변하는 법을 관찰하고
  외도의 말을 떠나며
  명상(名相)과 형체(形體)를 떠나리.
  
  속 몸의 사견(邪見)에 의하여
  전변하는 법을 관찰하면
  모든 하늘과 지옥과
  촉감과 핍박과 고뇌라네.
  
  중음(中陰)의 법은 있지 않으니
  어찌 식(識)에 의하여 나리요.
  태(胎)·난(卵)·습(濕)·화(化) 등은
  중음(中陰) 가운데에 난다.
  
[408 / 415] 쪽
  중생의 몸 여러 가지에서
  마땅히 가고 오는 것을 관찰하여
  양(量)과 아함(阿含)이
  능히 번뇌 종자 내는 것을 떠나리.
  
  모든 외도의 헛된 말을
  지혜 있는 자는 취하지 말 것이요,
  먼저 아(我)를 관찰하고
  다음에 인연을 관찰하라.
  
  유(有)를 알지 못하고 유를 말하니
  그러므로 석녀의 아이[石女兒]가 수승하리.
  반야(般若)는 육안(肉眼)을 떠났으니
  묘한 눈으로 중생을 보라.
  
  유위(有爲)와 음(陰)을 떠나면
  묘한 신체의 중생일 것이다.
  좋고 나쁜 색(色)에 머물러서
  속박을 벗어나 해탈하라.
  
  유위(有爲)에 머무름을 묘하게 증득하면
  능히 묘한 법신(法身)을 보리라.
  6취(趣)에 있어서는
  망각(妄覺)이요, 그 경계가 아니다.
  
  아(我)는 인도(人道)를 벗어났고
  다른 망각자(妄覺者)는 아니며,
  그리고 아(我)의 마음 생김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이 나는 것인가?
  
[409 / 415] 쪽
  강물과 등불과 종자가 같다고
  어찌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느냐?
  식(識)이 나지 않을 때에는
  무명(無明) 등도 있지 아니하네.
  무명을 떠나면 식(識)이 없으니
  어찌 상속하여 생기겠는가?
  
  3세(世)와 또한 무세(無世)와
  제5는 가히 말할 수 없네.
  이는 부처님의 경계요,
  망각자(妄覺者)가 관찰하는
  행(行)에서는 말할 수 없음이니,
  지혜와 행(行)의 속을 떠났기 때문이네.
  
  모든 행을 취하는 가운데
  지혜는 행의 법을 떠났다네.
  이 법에 의하여 이것이 생겼으니
  현재 보인 것에는 인(因)이 없다네.
  
  모든 인연은 볼 수 없어서
  지음 없는 것도 떠났네.
  바람과 불에 의해 능히 태우니,
  바람이 움직임으로 능히 나며
  바람이 불을 불어 움직이게 하고
  바람이 다시 불을 능히 없애리.
  
  어리석은 이는 분별하지 못하니,
  어찌하여 중생이 생긴 것인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말하나
  
 
[410 / 415] 쪽
  의(依)와 소의(所依)를 떠났네.
  
  어찌하여 저 법이 성립함인가?
  바람과 불을 어리석은 이가 분별하니,
  피차(彼此)의 증장(增長)하는 힘이다.
  피차의 법은 미치지도 못하네.
  
  어찌하여 불이 생김인가?
  말 뿐이요, 뜻(義)은 없는 것이네.
  중생은 이 누구의 조작이냐고
  그를 분별함은 불과 같다.
  
  능히 음입(陰入)의 몸을 지은 것은
  의(意) 등의 인연으로 생김이네.
  항상됨과 무아(無我)의 뜻(義)이
  마음과 함께 항상 굴러 생한다.
  
  두 법은 항상 청정하여
  모든 인과(因果)를 떠났으며,
  불이 능히 그를 이루지 못하고
  망각자(妄覺者)는 알지 못하네.
  
  마음과 중생과 열반은
  자성이 항상 청정하다.
  끝없는 허물과 더럽힘이
  허공과 같아 차별 없네.
  
  외도의 사견(邪見)인 때(垢)는
  백상(白象)의 장성함과 같다.
  
[411 / 415] 쪽
  의(意)와 의식(意識)이 덮임에 의함이니
  대(大)들도 능히 청정하네.
  
  저 사람은 여실(如實)을 보니
  보고서 번뇌를 깨트리고
  비유 주림(稠林)을 버리며
  저 사람은 성인의 경지를 취한다.
  
  지(知)와 능지(能知)의 차별을
  그는 다른 체[異體]로 분별하네.
  어둡고 둔한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또한 다시 말할 수 없다고 말하네.
  
  비유컨대 전단(旃檀)과 북(鼓)을
  어리석은 사람이 다른 말함과 같으니,
  전단(旃檀)과 침수(沈水)와 같아서
  부처님의 지혜도 또한 그러하네.
  
  어리석은 사람이 깨닫지 못함은
  허망한 견해에 의한 때문이다.
  오후에는 받아먹지 않으며
  발우를 가지고 양(量)에 의해 취하리.
  
  입[口] 등의 모든 허물 떠나서
  청정한 먹을 것을 먹으니,
  이것이 법과 같은 행(行)인데도
  능히 상응(相應)함을 알지 못한다.
  
  법에 의하여 능히 믿으며
  
[412 / 415] 쪽
  삿된 행(行)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세간의 물건에 집착하지 말고
  능히 정의(正義)를 취할지어다.
  
  저 사람은 진금(眞金)을 취함이요
  능히 법의 등불 켜는 것이니,
  유무(有無)의 인연과
  사견(邪見)의 그물과 분별을 떠날 것이다.
  
  일체 번뇌의 때[垢]의
  탐심과 진애(嗔恚)를 떠나면
  그 때엔 다시 나지 않으니
  일체 염(染)이 없기 때문이다.
  
  여래께서는 손을 펴시고
  부처님의 지위를 주시리라.
  외도는 인과(因果)에 미혹되고
  나머지는 인연에 미혹되네.
  
  인(因)이 없고 물건이 있다는 것과
  단견(斷見)은 성인(聖)에겐 없다네.
  수(受)는 과(果)에서 전변(轉變)함이니
  식(識)과 의식(意識)이네.
  
  의(意)는 본식(本識)을 따라 나고
  식(識)은 의(意)를 떠나 생하네.
  일체 식(識)이 근본 식(識)으로부터
  능히 나는 것은 바다 물결 같네.
  
  
[413 / 415] 쪽
  일체 훈습의 인(因)으로부터
  인연을 따라 난다네.
  생각의 차별인 묶임[鎖]은
  자심을 속박하여 경계를 취하네.
  
  형체 모양이 같아서
  의(意)와 눈(眼) 등의 식(識)이 나니,
  끝없는 예로부터 허물과 속박으로
  훈습으로 생겨서 경계를 취하네.
  
  밖으로 나타난 심(心)과 모든 법인
  외도의 견해 막았네.
  저에 의해 또한 다른 것 생기며
  또한 저에 의하여 관(觀)이 생기네.
  
  그러므로 삿된 견해와
  세간과 나고 죽음이 생기네.
  모든 법은 꿈과 환(幻)이며
  건달바의 성과 아지랑이와
  물 속의 달과 같으니
  이는 자심(自心)임을 관찰하리라.
  
  행(行)의 차별인 진여(眞如)와
  바른 지혜와 환(幻)과 같은 삼매는
  수능엄(首楞嚴)의 정(定)과
  다른 여러 삼매에 의지하네.
  
  초지(初地)에 들어가서는
  모든 신통과 삼매와
  
[414 / 415] 쪽
  지혜와 뜻 같은 몸을 얻고
  지위를 받아 부처의 경지에 들어가네.
  
  그 때엔 마음이 생(生)하질 않고
  세상의 허망함을 보기 때문에
  환희지(歡喜地)와 다른 지위를 얻으며
  또한 부처님의 지위 얻는다네.
  
  의지(依止)인 몸을 전변(轉)함이
  여러 색(色)의 마니(摩尼)와 같고,
  또한 물 속의 달과 같아
  중생의 사업 지어주네.
  
  유무(有無)의 붕당(朋黨)을 떠나며
  2와 불이(不二)를 떠나고
  2승지(乘地)를 벗어나며
  제 7지(地)도 뛰어나네.
  
  속 몸에서 모든 법을 보고
  지위마다 청정하여
  외도와 바깥 물건을 떠나
  그 때엔 대승(大乘)을 말하네.
  
  분별식(分別識)을 굴리고
  변역(變易)과 생멸(生滅)을 떠나서
  토끼 뿔과 마니(摩尼) 같다고
  해탈을 얻은 이는 말하네.
  
  결박에 의해 상응(相應)하듯이
  
[415 / 415] 쪽
   법에 의함도 또한 이와 같네.
  상응에 의해서 상응하고
  다른 것을 분별 말 것이다.
  
  안식(眼識)과 업과 수(受)와
  무명(無明)과 바른 견해와
  눈과 색(色)과 의(意)와
  의식(意識)의 염(染)은 이와 같네.
  
  부처님께서 이 묘한 경을 말씀하시니
  거룩한 대혜보살과
  보살마하살들과
  
  라바나(羅婆那) 대왕과
  숙가(叔迦) 바라나(婆羅那)와
  옹이(甕耳) 등인 나찰(羅刹)과
  천룡(天龍), 야차(夜叉)들과
  건달바(乾闥婆)와 아수라(阿修羅)와
  모든 하늘과 비구·스님은
  크게 기뻐서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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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능가경 제 5 권  (0) 2007.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