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마음] 가장 쉽고 확실하고 보장받은 성불의 길, 염불

通達無我法者 2007. 12. 26. 16:29

    하나라는 도리를 떠나지 않아야



제Ⅱ부 : 본래의 자리, 본래의 성품으로

가장 쉽고 확실하고 보장받은 성불의 길, 염불

가장 소중하고 급박한 것은 자성을 깨닫는 일
우리 인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인가를 아는 일입니다. 부처님 법문 중『화엄경(華嚴經)』「문수보살품(文殊菩薩品)」에 심시보장제일법(心是寶藏第一法)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른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보배라는 뜻입니다.
바른 믿음이 부족하고 바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행동도 거기에 따라서 바르게 나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무지를 극복하고 바른 믿음이 되어야 우리 행동도 거기에 따르는 순수하고 거룩한 행동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혹시 "아, 나는 내 근본성품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사실 우리 중생들은, 근본적으로 교양이 있고 많은 수행(修行)을 했다 하더라도 인간성의 순수성과 순수한 성품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범부중생(凡夫衆生)의 통상(通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자(聖者)가 되어야 비로소 참다운 자성(自性)을 압니다. 자성, 이것은 우리 인간성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인간성의 순수한 자리입니다.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 이것이 자성입니다. 또는 법 법(法)자 성품 성(性)자 법성(法性)이 자성이고, 우주성(宇宙性)이 자성입니다. 또 요즘 말로 표현하면 우주생명이나 우주에너지나 다 같은 말로서 자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자성은 우리 중생들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며 깨달은 성자의 분상에서만 알 수 있다고 한다면 굉장히 어렵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의 나쁜 버릇 때문에 잠시간 자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지, 자성은 어느 때 어느 순간이고 우리를 떠나 있지 않는 것입니다.
불성이나 법성이나 자성이나 이런 것들이 우리와 떨어져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실존적인 현재 이래로 항시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우리 자성은 금생에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세나 현재나 미래나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나지 않고 죽지 않지요. 무시이래(無始以來)라, 과거에 시작함이 없어서 과거도 비롯함이 없어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미래도 끝도 없이 불생불멸로 존재하는 것이 이른바 우리 자성의 본질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자성은 인간에게는 인간성의 본질이요 본래면목이지만, 다른 동물이나 일반 무생물에는 어떠할 것인가' 의문을 갖는 분이 계시겠지요.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인 이 자성은 사람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무생물, 나아가 모든 존재의 본질인 동시에 실상(實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소중하기는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또 가장 급박한 것이 바로 우리 자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성을 깨달으면 성자고 깨닫지 못하면 범부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자성불성을 깨닫는 것은 가장 쉬운 일, 단지 소홀히 할 뿐...
자성이 이와 같이 소중하고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보통사람들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들을 합니다. 성인들은 업장이 가볍거나 소멸시킨 분들이고 다른 전생에서 많이 닦아 금생에 성인이 된 것이지, 중생들은 쉽게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님들, 우리 인간성 본래자리인 자성불성을 깨닫는 것은 사실 가장 쉬운 것입니다. 다만 잘못 배우고 잘못 느끼고 잘못된 습관으로 버릇이 잘못 굳어져버린 것뿐입니다. 자성은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순간도 우리한테서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지장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이나 대세지보살이나 보살님들 이름도 많고 부처님 명호(名號)도 많습니다. 그 보살님들이나 부처님 명호의 실상이 바로 우리 자성인 동시에 우주의 본성이란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중생의 그릇 따라서 그때그때 방편으로 취한 말씀이 많기 때문에, 같은 뜻인데도 그릇 따라 달리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자성불(自性佛) 또는 법성(法性) 또는 실상(實相), 실재(實在), 주인공(主人公), 하나의 도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의 뜻이 자성과 똑같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생명 자체가 바로 자성이고 불성이기 때문에, 제일의적(第一義的)으로 우리가 되찾고 깨달아야 할 것이 불성인 동시에 자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성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느끼고 있단 말입니다. 가깝기도 하고 또 지금 내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많은 도인들 가운데서 특히 조주(趙州)스님 같은 분은 자성에 대해, 우리가 지금 추구도 하고 그때그때 공부하는 것은 "마치 소를 탄 사람이 소를 찾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본성이 자성이고 불성이 자성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 중생들이 잘못 알아서 불성이나 본래면목이 저 피안(彼岸)이나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고 멀리서 구하는 것을 봅니다. 사실은 자성이 바로 불성이고 법성이며, 그 자리는 바로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내 생명인 동시에 우주생명 자체인데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나 사실은 똑같은 것입니다. 기독교 바이블의「마태복음」에도 '먼저 하느님과 하늘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그대에게 주어지리라'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굉장히 소중한 성자의 말입니다. 밥 먹고 결혼하는 것보다 먼저 진리를 구하란 말입니다.

일상생활을 승화시킨 공부가 바로 자성을 구하는 공부
우리 불경(佛經)을 보아도, 자성이 내 성품이고 우주의 성품이고 도리이기 때문에 자성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제일 요긴한 일입니다. 더러는 자성을 구하는 일이 그렇게 소중하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을 물리치고서 어떻게 자성을 구할 것인가, 염려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일상생활을 무시하고서 자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승화, 장엄시킨 공부가 바로 자성을 구하는 공부입니다.
불성자리는 너의 본성인 동시에 나의 본질이고 우주의 본성이고 우주의 근본생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의 본래 생명이라는 자성자리를 사실 우리 중생들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의 근본성품인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에 대해서 부처님은 아주 절묘하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자성불성이라 하는 것은 이른바 만공덕(萬功德)의 자리입니다. 지혜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행복으로 보나 어떤 자리보다 완벽한 것이 자성자리입니다. 곧 불성자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나아간 만큼 행복도 지혜도 건강도 훨씬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씀이 아닙니다. 제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옮기는 것입니다. 실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옮긴다 해도 그대로 옮기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무량공덕(無量功德)을 몇천 분의 일도 옮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공덕, 내 자성, 우주의 본성에 있는 공덕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어...
우리 불자님들은 원자력(原子力)의 무서운 힘을 짐작하시지요? 눈에 안 보이는 원자핵(原子核)에 들어 있는 무시무시한 지혜, 즉 원자핵체(原子核體)에 대해서 하이젠베르크 같은 여러 물리학자들이 아주 소상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원자핵이라는 것은 사람 눈에는 안 보이지마는 그 구조가 태양계 구조와 똑같다고 합니다. 다만 크고 작은 차이만 있는 것이지 태양을 중심으로 위성이 도는 것과,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도는 것과 이치가 똑같다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의 소립자(素粒子)나 경계는 하나의 방사선(放射線)이고 광량자(光量子)이고 하나의 빛이란 말입니다. 빛이란 것은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 이상 간다 하지 않습니까.
원자폭탄의 위력을 우리가 뼈아프게 경험했지요. 그렇게 무시무시한 힘이 사실은 우주의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자로 구성되지 않은 우주의 물질이 있습니까? 우리 몸뚱이라든가 흙이나 물이나 공기나 돌이나 모두 원자로 구성되지 않았습니까. 그럼 원자는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은 "원자는 오직 하나의 에너지다. 우주는 오직 통일된 하나의 힘, 즉 에너지가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근원(根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모릅니다. 어째서 물리학에서는 모르는가 하면, 물질을 떠나보낸 순수한 생명의 자리, 이른바 시간과 공간을 떠나버린 자리는 증명(證明)할 수 없으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지만 한도 끝도 없는 에너지가 거기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