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 '관'觀, '견'見의 차이 =
한글은 장점이 많은 우리의 국어입니다. 특히 다채로운 형용사와 그것의 활용은 단연 최고라고 할 만합니다. 노란 색을 표현하는 데만도 얼핏 노랗다, 누렇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등등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형용사는 색을 표현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워 하늘이 노랗다’, ‘놀라서 얼굴이 똥 빛이 된다’등에도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장점이 영어나 한문으로 번역할 때는 참 난감한 문젯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언어의 번역에 따른 난관과 오해의 한 예가 있습니다.
컴퓨터 수리를 맡은 사람이 이상한 파일을 발견하였습니다. 한글 파일인데 이름이 제비.hwp, 참새. hwp, 비둘기.hwp, 뻐꾸기.hwp, ……다시 청둥오리.hwp, 호사도요.hwp, 딱따구리.hwp, 직박구리. hwp, ……심지어 시조새.Hwp 도 있었습니다. 궁금하여 옆에서 지켜보는 컴퓨터 주인인 교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무슨 연구를 하시는데 이렇게 새 이름만 가득하십니까?" "아, 그것 때문에 고생 좀 했습니다. 문서를 모두 ‘새’ 이름으로 저장하라고 해서요."
물론 웃자고 든 예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한글은 영문이나 한문에 비해 동사의 표현이 제한적입니다. '보다'라는 한글에서 우리는 사물을 눈으로 인식한다는 뜻 이상을 연상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영사전에서 ‘보다’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아보면 얼핏 추려도, see(단순히 보인다), look(정지해 있는 것을 주의하여 보다), watch (움직이는 대상을 주의하여 보다), view(경치를 보다), sight(시계 범위 안의 것을 보다)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문의 경우도 이렇게 많지는 않지만 ‘아’다르고, ‘어’ 다르듯이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단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에 쓰일 경우, 그 진의眞義에 큰 차이가 나 버릴 수도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조견照見은 어떤 마음으로 보는 경지를 말하려는 것일까요? 흔히 쓰이는 견見 혹은 관觀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견見은 본다는 대상이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금강경의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모양 있는 것의 모양에 집착하지 않아야 법신을 보는 것 - 제 번역에 이의를 제기하실 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을 염두에 두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관觀은 모양이나 형태를 갖추지 않은 대상, 즉 소리나 의식 같은 감각작용의 상대적 받아들임 쪽에 더 비중을 둔 표현인 듯합니다. 몇 년 새 한층 고조된 위빠사나 수행도 결국은 자신의 의식을 따라 이 관觀 함을 놓치지 않는 수행법입니다. 관觀세음보살도 ‘세상의 소리를 관하는 수행’을 하는 보살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풀이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고 ‘이근원통耳根圓通’을 관세음보살의 수행법이라고 한 능엄경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이제 좀 복잡해 집니다. 관자재보살이 관세음보살과 같은 분이라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그리고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보살은 ‘관 오온개공’이 아니라, ‘조견照見 오온개공’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관 오온개공’이라 해도 조견과 같은 의미로 받아드릴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인도에서 경을 구해와 이렇게 번역한 현장스님에게 그 의도를 물어보고 싶지만, 그거야 불가능한 일이니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나 조그만 단서를 가지고 그 차이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발견한 단서란 반야심경은 모든 언어적 표현이 대단히 선적禪的이라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두루마리로 600권에 이르는 반야부 경전 중 하나입니다. 반야부의 경전은 잘 알려진 금강경과 반야심경이 속해 있는, 불법의 정수인 공空 과 반야般若(지혜)를 설하는 경전들입니다.
그런데 불과 본문이 260자에 불과한 이 반야심경이 실은 금강경을 능가하는 절묘한 표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법성게가 단지 210자로 방대한 80권 화엄경을 기막히게 담은 것을 연상케 합니다. 이 의미의 압축과 용어의 사용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위해 '관', '조견'의 선택의 문제는 잠시 접어둡니다. 아니, 이어지는 제 횡설수설을 보시면 차차 납득할 만하실 것입니다.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