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록(仰山錄)

앙산록 2

通達無我法者 2008. 2. 15. 09:51

11.

스님이 누워 있다가 미륵의 내원중당(內院衆堂)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자리가 다 찼는데 오로지 두번째 자리가 비어 있어 그 자리로 가니 한 존자(尊者)가 백추〔白槌:선방에서 개당(開堂)할 적에 추(椎)를 쳐서 대중에게 알리는 것〕를 치면서 말하였다.

"지금 두번째 자리에서 설법하시오."

앙산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백추를 치면서 말하였다.

"대승의 가르침〔摩詞衍法〕은 4구(四句)를 여의고 100비(百非)가 끊겼다. 자세히 잘 들으라!"

스님의 이 말을 듣고는 대중이 모두 흩어져 버렸다.

잠에서 깨어나 위산스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그대는 이미 성인의 경지〔聖位〕에 들어갔군" 하자 스님은 바로 절을 올렸다.

* 위산 수(山秀)스님은 말하였다.

"그저 문장대로만 의미를 이해한다 해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홀연히 미륵의 회상에서 눈 밝은 납자〔作者〕가 있어, 대승법을 말하는 앙산스님을 보고 대번에 `입 닥쳐!'한다면 스님의 잠꼬대를 그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인들이 꿈속에서 꿈 이야기 하는 것을 면하게 하였으리라."

낭야 혜각(慧覺)스님은 말하였다.

"말해보라. 성중(聖衆)들이 앙산스님을 긍정해야 할지, 아니면 앙산스님을 긍정하지 말아야 할지를. 긍정한다면 결국 앙산스님을 저버리는 것이며, 긍정하지 않는다 해도 앙산스님은 평평한 땅에서 넘어지는 꼴이 될 것이다. 산승〔낭야〕은 오늘 눈썹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대승법을 설파해 주리라. 4구를 여의고 100비를 끊는다고 한 것을 여러분들이 제방에서 말하듯이 하고, 제방에서도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동선 관(東禪觀)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이 백추를 치자 성중들이 곧바로 흩어졌으니 확실히 사람을 의심하게 한다. 다시 한번 구정물 맛을 봐야만 정신을 차리리라. 대승법은 4구를 여의고 100비가 끊겼다고 이미 다 말해버렸다. 여러분은 이제 앙산을 알겠느냐!"

12.

스님이 위산스님을 모시고 가다가 앞에서 먼지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눈 앞에 무엇이냐?"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나서는 문득 모양을 만들었다. 그것을 보시고 위산스님은 머리를 끄덕이셨다.

13.

위산스님께서 시중(示衆)하시되 "일체 중생은 모두가 불성(佛性)이 없다" 하였는데 반대로 염관 제안(鹽官齊安:?~842)스님은 시중하기를 "일체 중생은 모두가 불성이 있다"고 하였다.

염관스님의 회상에 있던 두 스님이 위산스님께 가서 따져 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위산에 도착하여 위산스님의 설법〔擧揚〕을 들었으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업신여기며 오만한 태도를 보이다가, 하루는 스님(앙산)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때에 그 스님이 스님에게 말하였다.

"사형(師兄)께서는 부지런히 배우셔야 합니다. 불법을 쉽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자 앙산스님이 바로 동그라미〔○〕를 그려 손으로 들어 보이고는 뒤로 던져 버리더니 이어서 두 손을 편 채 그 두 스님에게 다가가서는 동그라미를 찾았다. 그 두 스님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자 스님은 말하였다.

"형씨들〔염관의 두 스님〕께서는 부지런히 배우셔야 합니다. 불법을 쉽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바로 일어나서 가버렸다.

그 뒤에 이 두 스님은 다시 염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던중, 한 30리쯤 가서 한 스님에게 갑자기 깨달음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 스님이 말하였다.

"위산스님께서 `일체 중생은 모두가 불성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은 믿어도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는 위산으로 다시 되돌아가 버렸다. 남은 한 스님은 계속하여 앞으로 몇 리를 더 가다가 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그때 갑자기 깨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였다.

"위산스님께서 `일체 중생은 모두가 불성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분명히 그 분에게 어떤 도(道)가 있었구나."

그리고는 그 스님 또한 위산으로 되돌아와서 오랫동안 법석(法席)을 떠나지 않았다.

14.

염관스님의 회상에 있던 몇 사람이 위산에 찾아와서는 승복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하루는 그 스님들과 함께 서쪽 들판에서 볏단을 나르게 되었는데, 스님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볏단을 내려놓자 뒤따르던 십여명도 거기다가 볏단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스님은 볏단을 일으켜세워 걸머지고는 여러 스님들을 한 바퀴 빙 돌더니 말하였다.

"있느냐, 있어?"

모두 대꾸가 없자 스님은 "사람을 속였군"하고는 볏단을 걸머지고 휙 가버렸다.

15.

위산스님께서 스님과 함께 소를 치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가운데도 보살이 있을까?"

"있읍니다."

"어디에서 보았느냐? 보았다면 어디 있는지 가리켜 보아라."

"그러면 스님께서는 보살이 없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지적해 보십시오."

그러자 위산스님은 그만두셨다.

16.

스님이 위산스님께 과일을 올리자 받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어디서 났느냐?"

"집 뜰에서 났읍니다."

"먹을만 하더냐?"

"감히 맛보지 못하고 먼저 스님께챈I리는 것입니다."

"누구 것인데?"

"저, 혜적의 것입니다."

"그대의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나더러 먼저 맛보라고 하는가?"

"스님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맛보십시오."

그러자 위산스님이 맛을 보고는 "시고 떫구나" 하자 "시고 떫은 것은 반드시 스스로가 알아야 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위산스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7.

스님이 여름 결제 끝에 위산스님께 문안을 드렸더니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한여름 내내 문안하러 올라오지 않더니, 아래 있으면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

"제가 아래에 있으면서 한 기 새밭을 매다가 종자 한 웅큼을 얻었읍니다."

"그대는 금년 여름을 헛되게 보내진 않았군."

그러자 스님이 도리어 위산스님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한여름 동안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나는 해가 뜨면 밥 먹고, 밤이 되면 잠을 잤다네."

"스님께서도 금년 여름을 헛되게 보내진 않으셨군요."

이렇게 서로 대화를 끝내고 한참 있다가 앙산스님이 죄송스러운 마음에 혀를 낼름 내밀었는데, 이것을 보시고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혜적아, 무엇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상하게 하느냐!"

* 위산 철(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4천하(四天下)를 비추는 눈으로 대원경지(大圓境地)가 앞에 실현되었으나 도리어 깨끗한 자리에서 대원경지에 걸려 넘어졌도다. 그러니 자식 기른 인연이 후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면치 못했다 할 만하다."

용문 원(龍門遠)스님은 말하였다.

"위산과 앙산의 부자(父子)가 항상 서로 마주 보면서 신통한 경지에서 노닐어 좀스러운 무리와는 전혀 같지 않았다. 자! 알 수 있겠느냐? 내가 여러분에게 설명해 보여주겠다.

한 기 새밭 개간하니

빈틈없고 끊임없어라

한 번은 죽 먹고 한 번은 밥 먹으니

그 도가 스스로 분명하구나.

나는 여름 안거 동안 내내 여러분을 살펴보았으나 여러분 스스로 한 소식 하질 못했다. 한 조각만이라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조각이겠느냐? 문(門)에 있는 화살을 살펴보라!"

서선 유(西禪儒)스님은 말하였다.

"위산과 앙산의 부자(父子)가 들락거리며 말기도 하고 펴기도 하면서 자유자재하였다. 여러분에게 간절히 바라노니 세속적인 이치〔世諦〕로써 이리저리 따지지를 말라. 그렇다고 불법으로 따져서도 안된다. 이렇게 모든 것을 알음알이로 헤아리지 않으면 결국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겠는가?

한 기 새밭 개간하여

한 웅큼 곡식 심었네

고개를 들어 한가하게 바라보니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러라

낮이면 밥 먹고

밤이 되면 그저 잠잘 뿐이네

피곤하면 다리 뻗고 잠자니

모든 것 만족하여라

팔월 구월이 돌아오면

울타리 그득하게 노란 국화 피어 있으리."

동림 안(東林顔)스님은 말하였다.

"요즈음 시대에 스승 노릇하는 스님들은 백천명이나 되지만 겨울을 지내고 여름을 보내면서 세월만을 허비하며, 옛사람을 아주 욕되게 하는구나. 나 동림은 요즘 사람과 달라 선대 성인을 점검해 보았더니 앙산스님은 잘난체가 지나쳤고, 혀를 낼롬 내민 것은 반쯤을 얻었을 뿐이다."

18.

위산스님께서 하루는 제자인 스님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두 손을 맞댄 채로 지나가시면서 양 손을 세 번씩 벌리더니, 갑자기 한 손가락을 세우셨다. 이것을 보고 스님도 두 손을 맞댄 채로 양 손을 세 번씩 벌리더니, 다시 가슴께로 가져가서 한 손은 위로 한 손은 아래로 놓고서 위산스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위산스님은 그만두셨다.

19.

위산스님께서 까마귀에게 생반(生飯:재 지낼 때 짐승이나 귀신 몫으로 떼어주는 음식)을 주시다가 머리를 돌려 스님을 보더니 말씀하셨다.

"오늘은 까마귀를 위해 상당(上堂)하여 설법 한번 하리라."

"그럼 저는 이제껏 그래왔던 대로 `그것'을 듣겠읍니다."

"무엇을 듣는다는 말이냐?"

"까마귀는 까마귀소리를 내고, 까치는 까치소리로 지저귑니다."

"그것은 겉모습이 아니냐?"

"스님께서는 조금 전에 무슨 말씀을 하셨읍니까?"

"나는 `이것'을 위해 상당(上堂)하여 한번 설법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겉모습이라고 하셨읍니까?"

"그렇기는 하나 이렇게 시험해보는 것도 무방하다네."

"그러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은 또 어떻게 시험하시렵니까?"

위산스님께서 주먹을 쳐들자 스님은 말하였다.

"이것은 결국 애매모호한 말씀입니다."

"자네가 조금 전에 무슨 말을 하였지?"

"스님께 일대사인연을 여쭈었읍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애매모호하다고 했는가?"

"겉모습에 집착하시는 것 같아서 그렇게 여쭈었읍니다."

"그러나 결코 이 일을 분명히 깨치진 못했네."

"어떻게 해야 이 일을 분명히 깨칠 수 있는지요?"

"혜적아, 그대의 겉모습은 노승의 것이다."

"달 하나가 천 강에 비칠 때 그 달은 물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그래야 할 것이다."

"같은 금끼리는 전혀 다르지 않은 것과도 같습니다. 물질〔色〕인들 어찌 이름이 다르겠읍니까?"

"무엇이 이름이 다르지 않은 도리인가?"

"병, 소반, 비녀, 팔찌, 그릇, 항아리입니다."

"혜적이 선(禪)을 말하면 마치 사자의 포효에 여우, 이리, 야간(野干)들이 놀라 흩어지는 것과 같구나."

20.

스님이 하루는 위산스님을 모시고 있다가 홀연히 새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위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새가 참 성급하게 무어라고 말하는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겠읍니다."

"어째서지?"

"너무 직설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잘것없는 법문을 혜적이 일시에 밀쳐 버리는군."

"밀쳐버리다니, 어떻게요?"

위산스님은 선상을 세 번 내리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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