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록(仰山錄)

앙산록 3

通達無我法者 2008. 2. 15. 09:54

21.

스님이 왕망산(王莽山)에 머물다가 부모님을 뵈러 가려는데 위산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이미 선지식이라고 불리우니 제방에서 온 사람들이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에게 스승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교학승인지 선승인지를 어떻게 가려내는지 나에게 말해 보게나."

스님이 대답하였다.

"제게는 그것을 시험하는 방법이 있읍니다. 제방의 선객이 찾아오면 대뜸 불자(拂子)를 치켜세우고 그에게 `제방에서도 이것을 말하더냐?'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묻기를, `이것은 우선 그만두더라도 제방 노숙(老宿)들의 생각은 어떠하던가?'라고 합니다."

이말을 듣고는 위산스님께서 탄복하여 말씀하셨다.

"이는 옛부터 종문(宗門)을 지키는 손톱이요 어금니이니라."

위산스님께서 또 물으셨다.

"온누리 중생들의 업식(業識)은 끝이 없어 기댈 근본이 없다. 그대는 어떻게 그들에게서 그 업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느냐?"

그러자 위산스님이 대답했다.

제게는 그것을 시험하는 방법이 있읍니다."

이때 바로 앞에 지나가는 스님을 보고는 스님이 불렀다.

"스님!"

그 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위산스님께 말씀드렸다.

"스님이시여, 이것이 바로 의거할 근본이 없는 망망한 업식입니다."

위산스님께서 탄복하여 말씀하셨다.

"이는 사자의 젖 한 방울로 노새의 젖 여섯 섬을 물리쳐 버린 격이로다."

22.

스님이 쌍봉(雙峯)스님에게 물었다.

"사제, 요즈음의 보는 경지가 어떠한가?"

"제가 보기에는 실로 알음알이라 할 법이 아무것도 없읍니다."

"그대의 견해는 오히려 경계에 걸려 있다."

"저는 그렇다치고, 그럼 사형께서는 어떠하신지요?"

"알음알이라 할 법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지 않는가?"

위산스님께서 들으시고는 말씀하셨다.

"혜적의 이 한 마디가 천하 사람들을 의혹으로 몰아넣는구나."

* 현각(玄覺)스님은 말하였다.

" 『금강경』에 이르기를, `실로 연등불(然燈佛)이 아무 법도 나에게 수기(授記)하지 않으셨다'라고 하였고, 그도 `실로 알음알이라 할 법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알음알이가 경계에 남아 있다고 하였을까? 자, 말해 보아라. 잘잘못이 어느 곳에 있는지를."

23.

하루는 비가 내리는데 천성(天性)스님이 스님에게 말하였다.

"좋은 비로군요."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

천성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하였다.

"나는 말할 수 있다네."

천성스님이 물었다.

"좋은 것이 어디 있읍니까?"

스님이 비를 가리켰는데 천성스님은 또 대꾸가 없자 스님은 말하였다.

"왜 큰 지혜를 얻고도 말이 없느냐?"

24.

하루는 제1좌스님(위산)께서 불자(拂子)를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든지 도리를 말한다면 그에게 이것을 주리라."

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도리를 말씀드려도 되겠읍니까?"

"그럼, 도리를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자 스님이 불자를 빼앗아 가지고는 가버렸다.

* 운거 석(雲居錫)스님은 말하였다.

"어느 곳이 앙산의 도리인가?"

25.

방(龐)거사가 물었다.

"우러러 보는 산〔仰山〕이라 오래전부터 들었는데 와서 보니 어째서 굽어보시오?"

스님이 불자를 세웠더니 방거사가 "그럴듯하군" 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는 우러러보는 것입니까, 굽어보는 것입니까?"

그러자 방거사는 노주(露柱)를 치면서 말하였다.

"아무도 없으나 이 노주(露柱)가 증명하고 있소."

스님이 불자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제방에 찾아가거든 마음대로 전하게."

* 은정 잠(隱靜岺)스님은 말하였다.

"가엾게도 `작은 석가(앙산스님)'가 방거사에게 한 번 밀리고서는 그대로 정신을 못차리는군. 방거사가 노주(露柱)를 한 번 두들긴 뜻이 무엇인가? 고래가 바닷물을 모두 삼켜버리고 이슬이 산호가지에 맺혔네."

26.

삼성 혜연(三聖慧然)스님이 찾아와 절을 올리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혜적(慧寂)입니다."

"혜적은 나의 이름이라네."

"저의 이름은 혜연(慧然)입니다."

그러자 스님은 크게 웃으셨다.

27.

어떤 관리가 찾아왔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관직이 무엇인가?"

"추관(推官:시비를 가리는 벼슬)입니다."

스님께서 불자를 세우시더니 말씀하셨다.

"이것도 심문할 수 있는가?"

관리가 말이 막히자 대중들에게 대답해 보라고 하였으나 모두가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때에 삼성스님은 몸이 편치 못하여 열반당(涅槃堂)에서 쉬고 있었다. 스님께서 대답을 받아오라고 시자를 보내니 삼성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돌아가서는 다만 `스님께서는 오늘 일이 있군요'라고만 하라."

이 말을 전해 듣고 스님은 다시 시자에게,

"잘 모르겠다. 어떤 일이 있는지를."

이라고 물어보라 하셨다. 이 소리를 전해듣고 삼성스님은 말하였다.

"재범(再鮎)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

28.

남탑 광용(南塔光涌:850~938)스님이 북쪽으로 유람하여 임제(臨濟)스님을 뵙고, 다시 돌아와서 스님을 모시고 있었다. 스님께서 남탑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엇을 하러 왔느냐?"

"스님께 절을 올리려 합니다."

"스님을 뵈었느냐?"

"뵈었읍니다."

"스님이 노새와 얼마나 닮았더냐?"

"제가 스님을 보니 역시 부처님과도 닮지 않았더군요."

"부처님과도 닮지 않았다면 무엇과 닮았더냐?"

"닮아야 할 그 무엇이 있다면 노새와 무엇이 다르겠읍니까."

스님은 크게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범부와 성인을 둘 다 잊고 알음알이가 다하여 자성자리가 드러났구나. 나는 이것으로 납자들을 20년이나 시험하였는데 확실하게 깨달은 사람이 없었다. 그대는 잘 간직하거라."

그 후 스님은 매양 사람들에게 남탑스님을 육신불(肉身佛)이라고 말씀하셨다.

29.

곽산 경통(山景通)스님이 찾아와서 절을 하려고 하는데 스님은 눈을 감고 앉아계셨다. 그러자 곽산스님이 오른쪽 발을 들고는 말하였다.

"이렇구나, 이렇구나. 인도의 28대 조사도 이렇고, 중국의 6대 조사들도 이렇고, 나아가 스님도 이러하며, 나 경통(景通)도 이렇구나."

그러자 스님께서 일어나 오시더니 등나무 주장자로 네 차례 때리셨다. 곽산스님은 이 일로, 스스로 `등나무 주장자로 맞은 자리가 네 줄기가 남아 있는 집운봉(集雲峯) 밑에 사는 천하의 대선사(大禪師)'라 자칭하였다.

30.

적간(赤干)행자가 종소리를 듣더니 스님께 여쭈었다.

"귀가 있어서 종을 칩니까, 귀가 없어서 종을 칩니까?"

"너는 묻기만 할 뿐 내가 대답하지 못할까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말라."

"벌써 물었는걸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님께서 "할"하고는 가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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