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록(仰山錄)

앙산록 6

通達無我法者 2008. 2. 15. 10:01

51.

스님께서 한 스님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불자를 세우자 그 스님은 대뜸 "할"하였다. 앙산스님은 말씀하셨다.

" `할'이야 못할 것 없지만 말해보아라. 노승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 스님은 말하였다.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맞지 않습니다."

스님은 갑자기 그 스님을 후려치셨다.

52.

인도에서 공중으로 날아 온 스님이 있었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요즈음 어디에 가 있다 왔는가?"

"인도〔西天〕에서 왔읍니다."

"언제 그곳을 떠났는가?"

"오늘 아침에 떠났읍니다."

"어찌해서 이리 늦었는가?"

"산도 유람하고 물도 구경했기 때문입니다."

"신통유희는 없지 않다만 불법 일랑 나에게 돌려줘야 하겠네."

"중국〔東土〕에 찾아와 그저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했는데 도리어 `작은 석가'를 만났읍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 스님은 범서(梵書) 패다라엽(貝多羅葉)을 꺼내어 스님께 드리고 절을 올리고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로부터 스님은 `작은 석가〔小繹迦〕'라 불리우게 되었다.

* 동림 총(東林總)스님은 말하였다.

"이에 대해 모두들 삼대와 좁쌀처럼 헤아리면서 말하기를, `이 눈 푸른 오랑캐가 온 종적도 없고 떠난 자취도 없으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 앙산스님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자재하게 쥐었다 놨다 하기는 어려웠으리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선덕(禪德)들은 이 눈 푸른 오랑캐가 허공을 타고 왔다가 허공을 타고 가 일생을 허공 속에서 살 궁리를 하였다는 것은 사뭇 몰랐으니 무슨 전무후무한 소식이 있으랴. 가엾은 앙산스님도 그에게 두통의 구정물 세례를 받았다 하리라. 당시 집운봉(集雲峯) 아래에 애초부터 올바른 법령이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시행하지 않았을까? 대중은 말해보라. 어떤 것이 진정한 법령인지를……. 쯧쯧."

황룡 신(黃龍新)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앙산스님이 그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고 또 범서불경을 꺼내자 다시 한번 얼버무렸다. 이제 또다시 낯선 승려가 허공을 타고 온다면 이 운암(雲巖)의 문하에선 불러다가 다리나 씻기라고 하리라."

늑담 준(潭準)스님은 말하였다.

"애석하도다, 앙산스님이 이 놈을 놓아주다니. 당시에 나 보봉(¿峯)이었더라면 멱살을 움켜쥐고서 유나(維那)더러 종을 치라 하여 큰방 앞에 대중을 집합시켜 놓고 죄상을 따지고 쫓아냈으리라. 하물며 불법은 인정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 이미 아라한(阿羅漢)이라 불리우게 되었다면 모든 번뇌가 다하고 범행(梵行)이 섰을텐데, 무엇 때문에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있지 않고 산수나 유람하였겠는가."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농사꾼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사람의 음식을 빼앗는 것이 옛부터 종문의 날랜 솜씨다. 이 아라한은 많은 신통묘용을 갖추었으나 앙산스님 앞에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헤 벌렸을 뿐이다. 왜냐하면 학이 깊은 연못에 있으면 휠휠 날아오르기 어렵고, 용마〔馬〕는 천리 길이 아니면 제멋대로 날뛰기 때문이다."

대위 태(大泰)스님은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앙산스님은 사슴을 아 앞으로 나갈 줄만 알았지 제몸이 그물에 떨어지는 줄은 몰랐다 하리라. 존자(尊者)가 문장을 이루었는데 납승의 호흡이 상당히 들어 있다. 알아들은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호랑이 수염을 뽑았다고 인정하리라."

53.

스님이 동평(東平)스님의 회상에 머물 때 위산스님께서 동평스님을 통해 편지와 거울을 보내주셨다. 스님은 상당하여 거울을 꺼내 들고 대중들에게 보여주면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이것이 위산스님의 거울인지 동평스님의 거울인지를. 동평스님의 거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위산스님께서 보내온 것이 아닌가? 반대로 위산스님의 거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동평스님의 손아귀에 있다. 바로 말한다면 깨뜨리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깨뜨려 버리겠다."

아무 대꾸가 없자 스님은 이윽고 거울을 깨뜨리고 바로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다시 도리를 설명해 주십시오. 그대로 빼앗아서 깨부숴 버리겠읍니다."

54.

한 스님이 스님께 절을 올리면서 불쑥 물었다.

"스님께서는 글자를 아십니까?"

"조금 알지."

그 스님이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바치자 스님께서는 옷소매로 그것을 쓱쓱 지워버리셨다. 그 스님이 또 다시 동그라미를 그려 바치자, 스님은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등 뒤로 던져버리는 시늉을 하셨다. 그 스님이 눈으로 던져지는 동그라미를 아가자 스님은 머리를 휙 저으셨다. 그 스님이 스님 주위를 한 바퀴 돌자, 스님께서 갑자기 후려치셨는데 그 스님은 그냥 나가버렸다.

55.

스님께서 앉아계신데 한 스님이 찾아와 절을 올렸다. 스님께서 돌아보시지도 않자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글자를 아십니까?"

"조금 알지."

그 스님은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더니 말하였다.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께서 땅 위에 열 십〔十〕자를 써서 대답하자, 그 스님은 다시 왼쪽으로 한 바퀴 돌더니 말하였다.

"그러면 이것은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께서 열 십〔十〕자를 만(卍)자로 고치자 그 스님은 동그라미를 그려서 마치 아수라가 두 손으로 해와 달을 떠받친 자세를 하면서 말하였다.

"이는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께서 ○卍 모양을 그려 대꾸하자 그 스님이 우는〔婁至〕 시늉*을 하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네, 그래. 이는 모든 부처님이 보호하고 아끼는 것으로써 그대도 그러하고 나도 그러하네. 스스로 잘 보호해 지니도록 하게나."

이 말이 끝나자 그 스님은 절을 올리고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때에 한 도교 수행인(道者)이 있었는데 이를 보고는 닷새 뒤에 가서 스님께 그 일에 대해 여쭈어보자 스님께서 그 도교 수행자에게 물었다.

"그대도 보았는가?"

"저는 문을 나왔을 때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읍니다."

"이는 인도의 아라한으로 일부러 찾아와 나의 도를 염탐한 것이다."

"저는 갖가지 삼매를 보기는 했지만 그 이치를 분별하진 못합니다."

"그대에게 그 뜻을 설명해주겠다. 여기서 말하는 8가지 삼매는 `깨달음〔覺〕의 차원'을 `설명〔義〕차원'으로 돌린 것인데, 그 바탕〔體〕은 마찬가지다. 의미를 설명하는 데에는 당연히 인(因)도 있고 과(果)도 있으며, 동시〔卽時〕일 수도 있고 시차가 있을〔異時〕수도 있는데, 총체〔總〕적이든 개별〔別〕적이든 은밀한 삼매신〔隱身三昧〕을 떠나있지 않다."

56.

한 인도승(印度僧)이 와서 절을 올리자 스님은 땅 위에다 반달 모양을 그리셨다. 그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서는 반쪽을 마저 그려 보름달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발로 지워 버리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께서 두 손을 펴시자 그 스님은 소매를 떨치면서 나가버렸다.

57.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요즈음 어디 있다가 왔느냐?"

"남방에 있다 왔습니다."

스님은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그곳의 큰스님도 이것을 말하시더냐?"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저것은 말하더냐?"

"말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스님!" 하고 부르니 "예!" 하고 대답하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법당에 참례하고 가거라."

그 스님이 막 나가려는데 스님은 다시 "스님!" 하고 부르셨다. 그 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이 "이리 가까이 오너라." 하여 가까이 가자 주장자로 머리를 한 대 때리고는 "가라" 하셨다.

* 운문 문언(雲門文偃)스님은 말하였다.

"뒷말이 없었다면 어떻게 앙산스님인줄을 알랴."

58.

스님께서 하루는 법당에 앉아계시는데 한 스님이 밖에서 들어오더니 곧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는 차수하고 동쪽에 서서 스님의 눈치를 살폈다. 스님께서 왼발을 아래로 내렸더니 그 스님은 서쪽으로 가서 차수하고 섰다. 스님께서 오른발을 내리자 이번에는 중간에서 차수하고 섰다. 스님께서 두 발을 오무리자 그 스님은 절을 올렸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에 살면서 아직 한 사람도 때리지 않았다." 하시고는 주장자를 집어 들고 그대로 후려치자 그 스님은 갑자기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59.

스님께서 눈덩어리로 만든 사자를 가리키시며 대중에게 물으셨다.

"이 색(色)보다 나을 것이 있겠느냐?"

대중이 대꾸가 없었다.

*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그때 그대로 밀쳐서 쓰러뜨렸어야 좋았을 터인데…."

설두 중현(雪重顯)스님은 말하였다.

"운문스님은 밀쳐서 쓰러뜨릴 줄만 알았지 붙들어 일으킬 줄은 몰랐군."

60.

앙산스님께서 누워계신데 한 스님이 물었다.

"법신(法身)도 설법할 줄 아는지요?"

"나는 말할 수 없네만 다른 어떤 사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읍니까?"

그러자 스님은 퇴침〔巖子〕을 쓱 내밀었다.

위산스님께서 뒤에 이 말을 들으시고는 말씀하셨다.

"혜적이 칼날 위의 일을 잘 활용하였구나."하셨다.

* 경산종고(徑山宗果)스님은 말하였다.

"위산스님은 귀여워 하는 아이 버릇없는 줄 모르는 꼴이다. 앙산스님이 퇴침을 밀어냈던 자체가 이미 허물인데, 거기다가 칼날 어쩌고 하며 토〔名字〕를 달았다. 그리하여 저 말 배우는 부류들이 이처럼 헛된 메아리를 받아서 퍼뜨리도록 그르쳤다. 나 묘희는 물을 빌려서 꽃을 바치더라도, 이치를 잘못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 자리에 나를 긍정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나오너라. 그에게 베개를 밀쳐낸 것이 `법신도 설법할 줄 아는지요'한 말에 맞는지 묻고 싶다."

천동 화(天童華)스님은 말하였다.

"칼날 위의 일이라면 혜적이 어찌 일찌기 쓸 줄 알았으랴. 홀연히 어떤 스님이 나와서 `법신도 설법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에게 `나는 설명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해주리라. 그리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3생(生) 60겁(劫) 지나야 말해주겠다'하리라."

영은 악(靈隱嶽)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원래 한 가닥의 척추가 무쇠처럼 단단했는데 이 스님에게 연달아 두들겨 맞고서는 사지를 뻗었다. 위산스님은 한번을 참아내지를 못하여 한쪽 눈을 잃는 줄도 몰랐다. 어떤 스님이 야부(冶父)스님에게 `법신도 설법할 줄 압니까' 라고 묻자 그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차서 거꾸러뜨리고는 일으켜서 쓸만한 놈으로 만들었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물소는 달 구경하다가 뿔에 무늬가 새겨지고, 코끼리는 우뢰소리에 놀랄 때 꽃이 어금니로 들어간다' 라고 했던 것을."

'앙산록(仰山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산록 8  (0) 2008.02.15
앙산록 7  (0) 2008.02.15
앙산록 5  (0) 2008.02.15
앙산록 4  (0) 2008.02.15
앙산록 3  (0) 2008.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