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록(仰山錄)

앙산록 5

通達無我法者 2008. 2. 15. 09:58

41.

스님이 중읍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불성의 의미를 깨칠 수 있읍니까?"

"나는 그대에게 비유로써 설명해 주겠다. 예컨대 한 방에 여섯 개의 창문이 있는데, 그 안에 원숭이가 한 마리 있다고 하자. 밖에 있는 원숭이가 동쪽에서 부르면 안에 있는 원숭이가 그 쪽으로 가서 대답하는데, 여섯 창문에서 모두 그렇게 하는 것과 같다."

이 말을 듣고 스님은 중읍스님께 절을 올리고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마침 스님께서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시어 확실하게 알았읍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는 어찌 됩니까? 즉, 안에 있는 원숭이가 졸고 있는데 밖에 있는 원숭이가 보려고 할 경우엔 말입니다."

중읍스님은 법상에서 내려오시더니 앙산스님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말씀하셨다.

"원숭이와 그대가 서로 만났네. 비유하자면, 초명(螟)벌레가 모기의 눈썹 위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사거리에서 말하기를 `땅덩어리는 넓은데 사람이 드므니 사람 보기 힘들다'라고 한 것과 같다네."

* 운거 청석스님은 말하였다.

"중읍스님이 당시에 앙산스님의 이 한 마디 말을 듣지 못했더라면 어찌 중읍(中邑)이 있었으랴?"

숭수 계조(崇困契稠)스님은 말하였다.

"이 도리를 알 사람이 진정 다시 있느냐? 정녕코 이 도리를 알지 못한다면 알음알이만을 희롱할 뿐 불성의 의미는 찾지 못한다."

현각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이 아니었다면 중읍스님을 어떻게 볼 수 있었으랴. 다시 말해 보아라. 앙산스님이 중읍스님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42.

스님이 암두 전할(巖頭全:828~887)스님께 절을 올리자 암두스님은 불자를 세우셨다. 스님이 좌구(坐具)를 펴자 암두스님은 불자를 얼른 뒤에다 두셨다. 다시 스님이 좌구를 어깨 위에 메고 나오니 암두스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가 놓아 버리는〔放下〕 것은 긍정하지 않고, 다만 거두어들이는〔收〕 것만을 긍정할 뿐이네."

43.

스님이 장사 경잠(長沙景岺)스님과 함께 달 구경을 하다가 말하였다.

"사람마다 모조리 이것이 있으나 사용하지 못할 뿐이라네."

이 말을 듣고 장사스님은 말하였다.

"그대야말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네."

"그러면 스님은 어떻게 사용하는가?"

장사스님이 정면으로 가슴을 한 번 걷어차자 스님이 "으르릉" 하는데 그대로 호랑이소리였다.

* 장경 혜릉(長慶慧稜: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앞에서는 피차 모두 본색종장이었는데, 뒤에서는 피차 모두가 본색종장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말하였다.

"삿된 법은 남아 있기 어렵다."

보복 종전(保福從展)스님은 말하였다.

"좋은 달이긴 하지만 그 작용이 대단히 크다. 그에게 밟히고 나서 갑자기 두 개가 되었으니 사람마다 높은 산 호랑이(경잠스님의 별명)가 참으로 굉장하다고들 하는구나. 모름지기 알아야 할 것은 앙산스님에겐 호랑이를 얽어맬 덫이 있었다는 점이다."

덕산 연밀(德山緣密)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다시 한 번 밟아주어라."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이릉(李陵)이 솜씨가 좋긴하나 새밭에 몸이 빠지는 것을 면할 수 있으랴."

경산 종고(徑山宗果)스님은 말하였다.

"깨끗하고도 밝은 달빛이 싸늘한 광채를 만리에 뻗친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낙엽이 지면 가을인 줄 알겠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진심에서 나오는 말을 해줘도 싫어하리라. 쉬었느냐, 쉬지 못했느냐? 그만두었느냐, 그만두지 못하였느냐? 작은 석가(앙산)에게 호랑이를 잡는 덫이 있었으나 늙은 호랑이는 어금니가 없었다. 당시의 한 번 밟은 것이 어찌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겠으며, 갑자기 거꾸러진 것이 우연이 아니다. 대중 가운데 있는 승․속 중에서 누가 두 늙은이를 꺼내올 수 있느냐?"

한참 말이 없더니 "설사 있다고 해도 방망이를 휘두르며 달을 치는 격이다"라고 했다.

44.

스님이 낭주 고제(朗州古提)스님께 절을 올리자 고제스님은 말씀하셨다.

"떠나라. 너에겐 불성이 없다."

스님이 차수하고 앞으로 가까이 세 걸음을 가서, "예"하고 대답하자, 고제스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디에서 이 삼매를 얻었느냐?"

"저는 탐원스님의 회상에서 이름〔名〕을 들어 보았고, 위산스님의 회상에서 경지〔地〕를 체득했읍니다."

"그렇다면 위산스님의 아들이 아닌가?"

"세속적인 뜻으로 말하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불법의 측면에서 본다면 감히 그렇다고 할 수 없읍니다."

그리고는 도리어 고제스님께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이 삼매를 얻으셨는지요."

고제스님은 대답했다.

"나는 장경(章敬)스님의 회상에서 이 삼매를 얻었다네."

그러자 앙산스님은 놀라며 말하였다.

"너무도 불가사의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나룻배를 어디에 대야할지 모르겠군요!"

45.

스님이 건주(虔州)의 처미(處微)스님을 찾아가니 그 스님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혜적입니다."

"어느 것이 혜(慧)이며, 어느 것이 적(寂)인가?"

"눈앞에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앞이니 뒤니 하는 생각을 갖고 있군."

"앞이니 뒤니 하는 것 말고 스님께서는 무엇을 보십니까?"

"차나 마시고 가게."

46.

스님은 뒤에 왕망산(王莽山)에서 법을 설하시고 어떤 스님에게 물으셨다.

"요즈음 어느 곳에 있다 왔느냐?"

"여산(廬山)에 있었읍니다."

"강서(江西)의 오노봉(五老峯)에 가본 적이 있느냐?"

"글쎄요, 가보질 못했읍니다."

"스님은 산도 제대로 다녀 보지 못했군."

* 운문 문언(雲門文偃:864~949)스님은 말하였다.

"이 말을 모두가 자비 때문에 세속에 맞게 수준을 낮춘 얘기라고 한다."

위산 수(山秀)스님은 말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모두가 자비 때문에 세속에 맞게 수준을 낮춘 얘기라고 하나, 달을 잡을 줄만 알았지 물이 깊은 줄은 몰랐다 하리라. 만약 운문스님이 당시에 입을 조심했더라면 아마도 후인들이 이렇게 말로 이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파리는 눈이 없기 때문에 먹이를 구하려면 반드시 새우를 의탁해서 구해야만 한다."

황룡 심(黃龍心)스님은 말하였다.

"운문스님과 앙산스님은 구슬을 받을 마음만 있었지 성(城)을 나눠 보상해 줄 의사는 없었다. 이 스님에게 한꺼번에 허물을 뒤집어 썼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나 황룡은 오늘 다시 죽은 말 고치는 의사〔死馬醫:쓸데없는 짓 하는 사람〕가 되리라."

그리고는 불자를 집어 한 스님에게 건네주었는데 그 스님이 받는 순간 갑자기 몽둥이질을 하였다.

위산 철(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전무후무한 사람〔光前絶後〕이었다고 할 만 하다. 운문스님이 이처럼 종요를 펴서 천하의 납승을 단련하기는 했으나, 바람도 없는데 풍랑을 일으켰는데야 어찌하랴. 여러분은 이 스님을 알겠느냐? 직접 여산에서 왔느니라."

황룡 진(黃龍震)스님은 말하였다.

"앙산스님은 이미 콧구멍(자기면목)을 잃어 버렸는데 운문스님이 다시 주해한들 어찌 그 잘못을 구제할 수 있으리요. 나는 이렇게 하진 않겠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여산입니다.'

`일찌기 오노봉에 가보았느냐?'

`아직 가보질 못했읍니다.'

라고 하면 나는 그에게 `향 하나를 따로 피워서 불어 이 사람에게 공양하라'고 말해 주리라."

47.

상당(上堂)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각자 회광반조(廻光返照)할지언정 나의 말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라. 그대들은 비롯함이 없는 옛부터 밝음을 등지고 어두움과 합하여 망상의 근원을 단박에 뽑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방편을 시설하여 그대들의 거친 업식(業識)을 뽑아 버리려고 한다. 이것은 마치 누런 낙엽을 돈이라고 속여 어린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과도 같으니 그것이 정말 돈이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갖가지 물건과 금은보배로 가게를 차려서 장사를 할 때, 사람들의 재산 정도에 따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석두(石頭)스님의 가게는 금방(金房)이요, 나의 가게는 잡화상이다'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와서 쥐똥을 찾으면 나는 그에게 쥐똥을 주고, 순금을 찾으면 순금을 준다."

언젠가 한 스님이 물었다.

"쥐똥은 필요치 않습니다. 스님께 순금을 청하노니 순금을 주십시오."

"활촉을 물고 입을 열려고 하는 일은 당나귀 해(12간지에 없는 해로 기약없다는 뜻)가 되어도 불가능하다."

그 스님이 대답이 없자 앙산스님은 말씀하셨다.

"찾는 이가 있으면 거래〔交易〕가 있고, 찾는 이가 없으면 거래도 없다. 내가 선종(禪宗)의 본면목을 이야기하자면 옆에 한 사람을 동반하려고 하여도 되지 않거늘 어찌 5백명, 7백명이 있을 수 있으랴. 내가 만일 도가 이러니저러니하고 횡설수설하면 앞을 다투어서 내 말을 들으려 올 터니니, 이것은 빈 주먹으로 아이들을 속이는 것과 같아서 도무지 진실함이 없다. 내가 이제 분명히 말하노니, 거룩한 쪽의 일에도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자기자신의 성품바다를 향해 여실히 수행하되 3명(三明) 6통(六通)을 바라지 말라. 왜냐하면 이는 성인들의 주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음을 알아 근본을 통달하기 바란다. 근본만 얻을 뿐 지말은 신경쓰지 말라. 언젠가 뒷날에는 저절로 갖추어지리라. 만일 근본을 얻지 못하면 비록 알음알이를 가지고 배운다 해도 되지 않으리라. 그대들은 보지도 못하였느냐?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여 참되고 항상함이 그대로 드러나면 사(事)와 이(理)가 둘이 아니어서 여여한 부처〔如如佛〕다' 라고 하셨다."

48.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인지요?"

스님께서 허공에다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불(佛)자를 써서 보여주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49.

스님께서 제1좌〔수좌〕에게 말씀하셨다.

"착함도 생각하지 않고 악함도 생각하지 않는 이럴 때는 어떠하겠는가?"

"이러할 때가 바로 제가 신명을 놀리는 곳입니다."

"왜 나에게 묻지 않느냐?"

"이러할 때는 스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를 부축해 준다면서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구나."

5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유주(幽州)에서 옵니다."

"내 마침 유주의 소식을 알고 싶었는데 그곳 쌀값이 얼마던가?"

"제가 떠날 때에 무심코 시장을 지나오다가 그곳 다리를 밟아 무너뜨렸읍니다."

스님은 그만두셨다.

* 후영 용(侯寧勇)스님은 말하였다. "그대에게 30대를 때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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