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16. 몹쓸 병으로 죄값을 치르다 / 기 선사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1:15
 


16. 몹쓸 병으로 죄값을 치르다 / 기 선사



기  선사는 진주 (秦州)  용성 (龍城)  사람이다. 처음 천성사 (天聖寺)  호태 (晧泰)

선사에게서 법을 얻고 만년에 황룡 혜남 (黃龍慧南) 선사에게 귀의하였는데, 혜남선사는 스

님이 바르고 투철하게 깨달았음을 보고 몹시 후대하여 전주 (全州)  흥국사 (興國寺) 에 주

지하게 하였다. 스님은 이곳에서 개당하여 마침내 혜남스님의 법을 이었는데, 어느 날 밤 꿈

에 산신이 나타나 말하였다.

ꡒ스님이 몹쓸 병을 만나면 이곳 인연은 다하는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 산신은 숨어버렸다. 30년이 지난 뒤에 과연 문둥병이 걸려서 일을 그만두고 용

성의 서쪽에 돌아와 작은 암자를 짓고 거기서 요양하였다.

스님에게 극자 (克慈) 라는 한 제자가 있었다. 오랫동안 양기 방회 (楊岐方會) 스님에게 귀

의하였고, 선림에서 뛰어난 사람이었다. 돌아와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비바람과 추위, 더위

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마을에서 걸식을 해와 봉양하였다. 하루는 스

님이 극자스님에게 말하였다.

ꡒ내가 천성사 호태스님에게 도를 얻었는데 만년에 황룡스님을 뵙고는 도 (道) 와 행 (行)

이 겸비함을 마음 속으로 존경하여 법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반평생 이런 몹쓸 병에 걸릴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 그러나 지금은 다행히 그 죄값을 다 갚았다. 옛날 신선들은 흔히

몹쓸 병으로 신선도를 얻었으니, 그것은 아마도 티끌세상의 얽매임을 잘라버리고 허유 (許

由) 와 소부 (敖父)*의 풍모를 마음에 품었기에 전화위복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나도 이

몹쓸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어찌 오늘이 있겠느냐. 이제는 머뭄도 떠남도 내게 달려 있어

머물고 떠남에 모두 자유롭게 되었다."

마침내 큰 기침을 한번 하고 묵묵히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화장을 하니 신비한 향기가 들

판에 가득하고 사리가 수없이 나왔다. 「주봉록 (舟峯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