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17. 석란문 (繹亂文) / 희안수좌 (希顔首坐)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1:18
 


17. 석란문 (繹亂文) / 희안수좌 (希顔首坐)



희안 (希顔) 수좌는 자 (字) 가 성도 (聖徒) 이며 강직하고 과감한 성격이었다. 불법은 물

론 다른 학문까지도 통달하였으며 품격과 절도로 스스로를 지켰다. 행각을 마치고 옛 초막

에 돌아와 숨어 살면서 세속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항상 문 닫고 좌선만 하니, 수행이

고결한 사람이 아니면 스님과 벗할 수 없었다. 명공귀인들이 여러 차례 몇몇 절에 주지로

모시려 했으나 굳이 거절하였다.

당시 참이 (參已) 라는 행자가 있었는데, 승려가 되고자 하여 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다. 그러

나 스님은 그가 승려 될 그릇이 못됨을 알고ꡐ석란문 (繹難文)ꡑ 이라는 글을 지어 물리쳤

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들을 아는 데는 아비만한 사람이 없고, 아비를 아는 데는 아들만한 사람이 없다. 내가 보

건대 참이 (參已) 는 승려 될 그릇이 아니다. 출가해서 승려가 된다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

겠는가. 편안함과 배부르고 따뜻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달팽이 뿔* 같은 하잘것없는 명리

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생사를 해결하는 길이고 중생을 위하는 길이며, 번뇌를 끊고 3계 바

다를 벗어나 부처님의 혜명 (慧命) 을 잇기 위한 것이다. 성인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불법

이 크게 허물어졌는데, 네가 감히 함부로 이런 일을 하겠다는 것이냐?

「보량경 (寶梁脛)」에 말하기를 ꡒ비구가 비구법을 닦지 않으면 대천세계에 침 뱉을 곳이

없다" 하였고, 「통혜록 (通慧錄)」에도 ꡒ승려가 되어 10과 (十科)* 에 들지 못하면 부처

님을 섬겨도 백년 헛수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래서 어렵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도 외람되게 승려의 대열에 끼어 불도에 누를 끼치고 있는데 하물며 네가 하겠다는 것

이냐?

출가해서 승려가 되어 3승 12분교와 주공 공자 (周公軫子) 의 도를 모른다면, 그는 인과에도

어두울 뿐더러 자기 성품도 알지 못한 사람이다. 농사 짓는 수고도 모르고, 신도들의 시주를

받기 어려운 줄을 생각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함부로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재계 (齋戒)

를 파하고 범하여 장사를 차리고 앉아 부처를 팔아먹는다. 도둑질, 간음, 노름으로 절집을

떠들썩하게 하고 큰수레를 타고 드나들면서 자기 한 몸만을 아낄 뿐이니, 슬픈 일이다. 여섯

자 몸뚱아리는 있어도 지혜가 없는 이를 부처님께서는 바보중이라 하셨다. 세치 혀는 있어

도 설법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벙어리 염소중이라 하셨다. 또한 승려 같으나 승

려도 아니고 속인 같으면서 속인도 아닌 사람을 박쥐중, 또는 민머리 거사라고 하셨다. 그러

므로 「능엄경 (磅嚴脛) 」에 이르시기를 ꡒ어찌하여 도적이 내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마

구 팔아 온갖 죄업을 짓는가" 하였으니, 이런 이들은 세상을 제도하는 나룻배가 아니라 지

옥의 씨앗으로서 설사 미륵이 하생할 때가 되어 머리를 내밀고 나올 수 있다 해도 몸은 이

미 쇠우리 안에 빠져 온갖 형벌의 아픔이 하루아침 하룻저녁이 아닐 것이다" 하였다. 지금

이런 자들이 백천, 혹은 만이나 되는데, 겉으로 승려의 옷만 걸쳤을 뿐, 그 속을 까놓고 말

해보면 승려라 할 수 없다. 그것이 소위 솔개의 날개를 달고 봉 울음을 운다 하는 것이다.

이들은 길에 굴러다니는 돌이지 옥 (玉) 은 아니며, 풀 무더기 속에 우거진 쑥대지 설산 (雪

山) 의 인초 (忍草) 는 아니다.

나라에서 승려에게 도첩 (度牒) 을 주는 것은 본래 복을 빌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도

리어 부역 면제 받는 것을 따지면서 승려에게 평민이 되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 승려

들에게 심한 푸대접을 하고 있다.

오직 지난날 육왕 회련 (育王懷璉) ,* 영안 설숭 (永安契嵩) ,* 용정 원정 (龍井元淨) , 영

지 원조 (靈芝元照) * 같은 분은 한 마리 여우털처럼 빛나는 보배라 할 수 있겠지만, 나머

지 양가죽 같은 보잘것없는 자들이야 말할 가치가 있겠는가. 아! 불법의 바다가 오늘날처럼

더럽혀진 적은 없었다. 이런 말도 지혜로운 이와 할 수 있을 뿐, 속인들과는 하기 어려운 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