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14. 참학 (參學) 하는 일 / 시랑 양억 (楊億)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1:12
 








14. 참학 (參學) 하는 일 / 시랑 양억 (楊億)



시랑 (侍郞)  양억 (楊億:974~1020) 은 한림학사 (翰林學君)  이유 (李維) 에게 편지

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잠깐 남창 (南昌)  태수로 와서 마침 광혜 상총 (廣慧常總:1025~1091, 임제종 황룡파) 스

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공양을 될 수 있는대로 간소하게 하여 밥상을 물리고 여가가

많았으므로 더러는 직접 오시기도 하고 더러는 수레로 모셔오기도 하여 이것저것 터놓고 물

었더니 어둡고 막혀 있던 것이 싹 풀렸습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뒤에는 마치 잊었던 일

이 갑자기 생각난 듯, 자다 깨어난 듯 마음이 탁 트여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소 가슴에 막혀 있던 것이 저절로 탁 떨어져 내려가서 몇 겁을 두고 밝히지 못했던 일이

환하게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는 정말로 스님께서 의심을 환희 결택 (決擇) 해 주시고, 막힘

없이 지도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옛분들이 큰스님을 찾아뵙던 일들을 거듭 생각해 봅니다. 설봉 의존 (雪峰義存) 스님

은 동산 양개 (洞山良介) 스님을 찾아뵙고 투자 의청 (投子義靑) 스님을 세 번 뵈었으나 마

침내는 덕산 선감 (德山宣鑑) 스님의 법제자가 되었으며, 임제 의현 (臨濟義玄) 스님은 대우

수지 (大愚守芝) 스님의 뒤를 이었으며, 운암 담성 (雲巖曇晟) 스님은 도오 원지 (道吾圓智)

스님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나 마침내 약산 유엄 (藥山惟儼) 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단

하 자순 (丹霞自淳) 스님은 마조 도일 (馬祖道一) 스님에게 인가를 받았으나 석두 희천 (石

頭希遷) 스님의 후예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으므로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

닙니다. 병든 이 몸이 지금 법을 이어받은 인연은 사실 광혜 (廣慧) 스님에게 있으나 처음

일깨워 지도해 주신 분은 바로 별봉 (鼈峰:임제종 대혜파, 無際了派의 제자) 스님이셨습니

다. 안녕히 계십시오.





시랑이 한 스님과 법담을 나누다가 말하였다.

ꡒ참학 (參學)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종일 언제나 자기를 살펴보아야 〔照顧〕 합니

다. 듣지 못했습니까? 선 〔禪道〕 을 말하자면 늘 살피고 다녀야 할 도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무슨 일을 하거나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알을 품고 있는 닭이

알을 두고 일어나버리면 기운이 이어질 수가 없어서 마침내 병아리가 부화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만가지 경계는 빽빽하고 6근은 요동하는데 조금만 살펴보는 일 〔照顧〕 을 놓치면 그

대로 신명을 잃게 되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태어날 인연을 받아 생사에

매여 있는 이유가 수많은 겁토록 생멸심을 쫓아 그것에 끄달려다니다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

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한번이라도 살펴봄을 잃은 적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겠습니까? 큰 길의 흰 소 〔露地白牛:본디는 법화경에서 一乘을 비유한 말로서, 선문

에서는 청정무구한 본심을 말한다〕 를 알고자 합니까? 콧구멍 〔鼻孔:본래면목〕 을 잡고

한번 끌어당겨 보십시오."

또 말하였다.

ꡒ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눈으로 가섭존자를 돌아보시며 대중에게 말씀하시기

를, ꡐ나에게 정법안장 (正法眼藏) 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셨고, 또 말

씀하시기를, ꡐ나는 49년 동안 한마디도 설법한 일이 없다' 하셨는데, 이것이 무슨 도리이겠

습니까?

누구나 저마다 한 글자 각주도 붙일 수 없게 되면 누구에게나 굉장한 일이 벌어진 셈이나

그것을 ꡐ굉장하다'고 해버리면 벌써 틀립니다. 그렇다면 석가는 패전한 군대의 장수이고,

가섭은 신명을 잃은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생사 열반이 모두

다 꿈속의 일이고, 부처와 중생도 모두 군더더기 말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곧바로 이렇게 알

아버려야지 밖으로 치달려 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밝히지 못했다면 그대는 한참 잘못

되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시랑은 임종 하루 전에 게송 한 수를 직접 써서 집사람들에게 주며 다음날 이부마 (李駙馬:

李遵  ?~1038) 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꺼졌다 일어나는 거품이여

두 법은 본래 같은 것

참된 귀결처를 알려 한다면

조주 동원의 서쪽이니라.

生與 滅   二法本來齊

欲識眞歸處  趙州東院西



이부마는 받아보고서 말하였다.

ꡒ태산 (泰山) 의 사당 〔廟〕  속에서 지전 (紙錢:죽은사람의 노자돈으로 쓰는 가짜 종이

돈) 을 팔도다." 「대성광등 (大聖廣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