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27. 좋은 인연들 / 시랑 장구성 (張九成)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1:35
 

27. 좋은 인연들 / 시랑 장구성 (張九成)



시랑 (侍郞)  장구성 (張九成:子韶) 거사는 젊어서 진사 공부를 하는 여가에 틈틈이 불경

공부에도 매우 마음을 쏟았다. 영은사 (靈隱寺) 의 오명 (悟明) 선사를 뵙고 종지를 물어보

니 오명선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ꡒ지금 한창 열심히 공부해서 이름을 날려야 할 때인데 어찌 생사 문제를 참구할 수 있겠는

가?"

공이 말하였다.

ꡒ옛어른 〔先儒〕 이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도 (道) 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였

습니다. 그러나 세간과 출세간의 법이 처음부터 다른 것이 아니어서, 옛날 훌륭한 신하 중에

도 선문 (禪門) 으로 도를 얻은 사람이 부지기수이니 유교와 불교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불교의 우두머리이신 스님께서 어찌 말로 저를 막으려 하십니까?"

오명선사는 그 정성이 갸륵해서 그를 받아주며 말하였다.

ꡒ이 일은 생각생각에 놓아서는 안되니, 오래오래 인연이 무르익어 때가 되면 저절로 깨치

게 된다."

그리고는 화두를 주면서 말하였다. ꡒ조주 (趙州)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묻기를, 「조사가 서

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자, 조주스님은 ꡐ뜰앞의 잣나무니라' 하였다. 이 화두를

들어 보아라" 하였다.

그러나 공은 오래도록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호문정공 (胡文定公:胡安國) 을 뵙고 마음

쓰는 법에 대해 자세히 물으니 호안국은, 논어 맹자에서 인의 (仁義) 에 대해 말한 부분과

한곳으로 유추해 보면 그 속에 요점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공은 그 말을 간직하여 잠시도 잊지 않았다. 하루 저녁은 변소에 가서 ꡐ측은히 여기는 마

음은 인 (仁) 이 비롯되는 곳이다 〔惻隱之心仁之端〕ꡑ라는 구절을 깊이 생각하였다. 묵묵

히 생각에 잠겼는데, 그때 홀연히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뜰 앞 잣나무 화

두가 들리며 〔擧〕  갑자기 느낀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봄 하늘 달밤에 한마디 개구리 소리가

허공을 때려 깨서 한 집을 만들도다

바로 이런 때를 뉘라서 알겠는가

산꼭대기 곤한 다리에 현묘한 도리 있도다.*

春天夜月一聲蛙  撞破虛空共一家

正恁?時誰會得  嶺頭脚痛有玄妙



공은 우연히 묘희 (妙喜大慧:1089~1163) 스님이 불상에 붙인 다음과 같은 글을 보게 되었

다.



까맣게 옻칠한 커다란 죽비 (竹 ) 에

부처가 온다면 한 방 치리라.



이 게송을 보고 나서 묘희스님을 만나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다 조정으로 돌아와 예부

시랑 (禮部侍郞) 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묘희스님이 서울로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더니, 스님이 만나겠다고 알려와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날씨에 관한 이야기말고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스님은 돌아와 문도들에게 말하였

다.

ꡒ장시랑은 깨달은 바가 있더라."

ꡒ서로 만나 선 (禪) 의 선 자도 뻥긋하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아십니까?"

ꡒ내 눈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이냐?"

공이 조상의 사당에 제사를 받들기 위해 휴가를 청해 경산 (徑山) 을 지나던 길에 스님을

뵙고, 「대학 (大學)」에 나오는 격물의 뜻 〔格物致知〕 을 물었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ꡒ공은 격물 (格物) 만 알았지 물격 (物格) 은 모르는군요."

공은 망연히 있다가 한참 뒤에 말하기를,

ꡒ거기에도 어떤 방편이 있겠지요"라고 하였다. 스님이 다시 이야기 말하였다.

ꡒ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당나라 사람이 안록산 (安祿山) 과 짜고 반란을 일으켰는

데, 그 사람은 난 (亂) 에 앞서 낭주 (州)  태수였던 이라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당 현종

(玄宗) 이 촉 땅에 행차했을 때 그 그림을 보고 노하여 신하에게 그의 목을 칼로 치라 하였

다, 그 사람은 그때 섬서성 (曳西城) 에 있었는데 갑자기 목이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 말입

니다."

공이 이 말을 듣자 홀연히 꿈에서 깨어난 듯하여 벽에 글을 지어 붙였다.



자소 (子韶)는 격물 (格物)이요

묘희 (妙喜)는 물격 (物格)이니

한 관 (貫) 이 얼마나 되는고

오백돈이 둘이로구나.

子韶格物  妙喜物格

欲識一貫  兩箇五百



공은 이로부터 도를 참구하여 법을 깨달아 자유로왔고, 마음이 텅 비고 의혹이 없어졌다.

언젠가는 이렇게 감탄하였다.

ꡒ경산 노스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사방팔방으로 활짝 트여서 마치 천문만호를 한번 밟아

보지 않고도 활짝 열어제치는 듯하다. 어떤 때는 가마를 나란히 타고 높은 산에 올라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깊은 연못가를 천천히 걷기도 하는데,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으나 아무

도 우리 두 사람의 경계 〔落處〕 를 알지 못한다.

이 장구성이 생사 문제 〔末後大事〕 를 깨닫게 된 것은 실로 경산스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니, 이 한 줌의 향 (香) 은 스님을 감히 등질 수 없기 때문에 피우는 것이다."

공이 남안 (南安) 에서 유배생활을 보낸 14년 동안, 불교 경전과 유가 서적들을 공부하면서

지나가는 납자 (納子) 가 있으면 반드시 경계를 확인해 보고 선열 (禪悅) 의 즐거움을 맛보

았으나, 한번도 득실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는 사람은 모두 그의 도풍과 현달함

을 높이 평가하고 마음 깊이 존경하였다.

공은 언젠가 중승 (中丞)  하백수 (何伯困) 에게 다음과 같은 답서를 보낸 적이 있다.



내가 경산스님과 절친하게 왕래하는 것은 다 유래가 있는 일입니다.

옛일들을 살펴보니, 배휴 (裴休) 도 황벽 (黃岫希運)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고 한퇴지 (韓退

之) 도 태전 (太)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습지 (李習之:) 는 약산 (藥山惟儼)

스님께, 백낙천 (白樂天) 은 조과 (鳥果道林) 스님께, 양대년 (楊大年:億) 은 광혜 (廣慧常總)

스님께, 이화문 (李和文) 은 조자 (照慈;睛聰) 스님께, 소동파 (蘇東坡) 는 조각 (照覺:東林常

總) 스님께, 황산곡 (黃山谷:庭堅) 은 회당 (晦堂祖心) 스님께, 장무진 (張無盡:商英) 은 도솔

(兜率從悅)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으니, 이 분들을 어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서 변소 청소

나 하는 노파들과 같다 하겠습니까.

경산스님은 그 마음 바탕 〔心地〕 이 생과 사를 하나로 보고 사물의 이치를 지극히 궁구하

였습니다. 나아가 도를 논하기를 좋아했는데, 선비들도 당하지 못할 적이 있었습니다. 하늘

에서 해가 내려다보고 있는데, 내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름난 명사와 사귀기를 좋

아하고 그 사람들과의 친분으로 세상에서 행세하려 드는 것은 도둑들이나 하는 짓인데, 어

찌 이 분들이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지난번 사형께서 나를 일깨워주신 편지를 받고 마음 속에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평소 문하

에서 같이 수학하지 않았더라면, 마음을 쏟아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알렸겠습니까. 덕 높으

신 사형께서는 살펴주소서.



공이 유배에서 풀려나 북쪽으로 돌아올 때 장주에 도착하니 묘희스님도 매양 (梅陽:묘희

스님이 유배갔던 곳) 에서 그곳으로 와 있었다. 나란히 배를 타고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스님은 날마다 종지 〔宗要〕 를 말해 주었다. 공이 물러나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ꡒ오늘 이 장구성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노스님께서 선 (禪) 의 강물을 기울여 여러분들께

법을 들려 주셨겠는가?"

공이 영가현 (永圈縣) 을 다스릴 때 광효사 (光孝寺) 의 주지 자리가 비어 있으므로 복당

(福唐)  서선사 (西禪寺) 의 수정 (守淨) 선사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불법이 떠난 지 오래되어 경산 노스님께서 영외 (嶺外:梅陽) 로 가신 뒤에 학인들은 의지

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조정은 맑고 경산스님도 돌아오셨으니 불법이 다시 일어나

려는가 봅니다.

저는 사실 이 도에 일찍부터 부딪쳐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명공대가 (名公大家)  한두 분을

찾아 그 분들의 제창으로 미혹한 이들을 깨우쳐 주고자 하니 스님께서 제발 저의 청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혹 서선사는 넉넉한 곳이고 광효사는 박한 곳이라서 수정스

님은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말은 속인의 소견으로 다른 사람을 맞추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으로 불법의 흥망을 점쳐 보려 하니, 스님께서 불법을 일으켜

보겠다는 마음을 내고 여러분들이 반 팔의 힘만 내주신다면 지극히 다행이겠습니다.



불법을 지키려는 공의 정성이 이 편지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문도전(聞道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