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31. 자기 제문을 짓다 / 고산 지원 (孤山智圓) 법사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1:40
 


31. 자기 제문을 짓다 / 고산 지원 (孤山智圓) 법사



고산 지원 (孤山智圓:976~1022) 법사는 뛰어난 재주와 깊은 학문으로 경론에 대하여 수많

은 저술을 남겼다. 서호 (西湖)  가에 높이 누웠으니, 권세로도 부귀로도 스님을 꺾을 수 없

었으므로 속된 무리들은 스님과 벗할 수 없었다.

이때 문목왕공 (文穆王公) 이 전당 (錢塘) 에 오게 되었는데, 군 (郡) 의 스님네들이 모두

관문까지 마중을 나가자고 하자, 스님은 몸이 아프다면서 가지 않고는 심부름꾼을 보고 웃

으며 말하였다.

ꡒ자운법사 (慈雲法師) 에게 내 말을 전하시오. 전당 땅에 중이 하나 있다고."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스님은 늘 비장 (脾臟) 에 병이 있어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는 가운데서도 침상에 붓과 벼

루를 깔아놓고 저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루는 대중에게 고하였다.

ꡒ내 나이 마흔아홉인데 이미 오래 못 살 것을 안다. 내가 죽거든 땅을 골라 후하게 장례치

르노라 내 허물을 더 불리지 말고 너희들이 항아리를 합쳐서 장사 지내다오."

죽음에 임박해서 스스로 제문 (祭文) 을 지어 부탁하였다.



삼가 강산과 달과 구름을 차려놓고 중용자 (中庸子:지원법사의 호) 의 영을 제사 지내노라.

그대는 본래 법계의 원상 (元常) 이며 보배롭고 완전한 묘성 (妙性) 으로서, 아직까지 동정

의 조짐이 없었으니 어찌 오고 감에 자취가 있겠는가. 이제 일곱 구멍 (七穴:사람 얼굴에 나

있는 구멍) 을 뚫으니 혼돈 (混沌) 이 죽고 6근이 나뉘어 정명 (精明:一心) 이 흩어지게 되

었도다. 그리하여 그대 스스로의 마음을 보건대 바깥 경계와 다른 바가 있도다. 생존과 사멸

두쪽을 집착해서 항상 흔들려 쉴 날이 없으며 깜깜하여 비출 줄을 모르는구나.

내 혼돈 (混沌) 을 회복하여 정명 (精明) 으로 돌아가려 하노라. 그리하여 허깨비 아닌 〔非

幻〕  법에서 허깨비 언설을 지어내는 것이니, 허깨비 아님도 없거늘 어찌 허깨비라는 법이

있으랴. 그대 중용자도 묘하게 이 뜻을 알아들을지어다. 그대가 이미 허깨비 생을 받았으니

허깨비 죽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허깨비 몸이 있어서 허깨비 병이

있게 되었고, 입으로는 허깨비 말을 빌어 허깨비 제자에게 허깨비 붓을 잡아 허깨비 글을

쓰게 하노라. 그리하여 미리 그대 허깨비 중용자를 제사 지내고 끝없는 뒷사람들에게 모든

법이 허깨비 같음을 알게 하고자 하노라.

이렇게 하면 허깨비삼매 (如幻三味) 가 여기 있다 하리라. 아! 삼매,그것도 허깨비로다. 잘

받아 먹으라.



그리고는 가부좌한 채 열반에 드셨다. 「한거편 (閑居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