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감통전기 (惑通傳記) / 도선 (道宣) 율사
종남산 (終南山) 도선 (道宣:596~667) 율사는 처음 제 (齊) 나라에 태어나 승호 (僧護)
라 하였으며 월주 (越州) 염현 (顯) 에서 미륵불상을 조각하며 살았다. 두번째는 양 (梁)
나라에 태어나 승우 (僧祐) 라 하였고 뒤에는 수 (隨) 나라에 태어나 도선 (道宣) 이라 하였
다. 율사의 할아버지는 호주 (湖州) 사람이며 아버지는 진 (陳) 나라 이부상서 (吏部尙書)
였는데 임금을 따라 장안으로 갔다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달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는데 인도승이 나타나 ꡒ당신이 잉태한 아기는 양나라 승우율사이니 출
가시켜서 불교를 널리 펴도록 하시오" 하였다.
율사는 머리깎고 나서는 고행을 참고 마음을 다져 먹으며 전념으로 불법만을 구했다. 한번
은 보물함을 머리에 이고 탑을 돌면서 도를 닦았는데, 함 속에 사리가 내리게 해달라고 발
원했더니 7일만에 과연 감응을 얻었다. 이때부터 더욱 뜻을 고르게 하여 하루 한끼 먹고 곧
게 앉아 잠자지 않고 선정에 드는 것을 즐겼다.
정관 4 (貞觀 4:630) 년 청궁사 (淸宮寺) 에서 반주삼매 (般舟三昧) 를 닦는데 천룡이 내려
와 시봉하는 감응을 얻었고 물이 모자란다 하여 흰 샘이 솟기도 하였다. 안거일에 성심으로
발원기도 하기를 ꡒ만일 하안거에 좌선한 공덕이 있다면 상서로운 징조를 내리소서" 하였더
니 뒷뜰에 과연 지초 (芝草) 가 났다. 율사가 과로로 병이 나자 천왕이 보심약 (補心藥) 을
내려주면서 말하였다.
ꡒ지금은 상법 (像法) 시대 말이라 나쁜 비구들이 절만 거창하게 짓고 선의 지혜는 닦지 않
으며 경전도 독송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천에 하나 둘 뿐입니
다."
그 후 서명사 (西明寺) 에 있을 때 깊은 밤에 도를 닦다가 법당 앞 계단을 헛디덧는데 어떤
성인이 발을 부축하였다. 누구냐고 물으니 북천왕의 아들인데 칙명을 받고 모시게 되었다고
하니 율사가 말하였다.
ꡒ저의 수행에 태자를 번거롭게 할 것 없습니다. 태자는 위력이 자재하시니 천축국에 지을
만한 불사가 있거든 그것이나 힘써 주시오."
ꡒ제게 길이 세치, 넓이 한치되는 부처님의 치아가 있는데 오랫동안 보물로 간직해왔습니다
이제 이것을 스님께 은밀히 드릴 터이니 잘 간직하소서."
율사는 받아서 낮에는 땅굴 속에 두었다가 밤에는 받들고 도를 닦았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
이 없었다. 다만 제자 강율사 (綱律師) 가 가만히 율사의 뒤를 따랐다가 보고는 세상에 알리
려 하자 율사가 말하기를 ꡒ신근이 천박한 이는 나를 요망하다 할 것이니 너와 나 단둘이만
알도록 하자" 하였다.
율사는 천신과 자주 왕래하였는데 신령스런 자취나 성스러운 일에 대해 듣기를 즐겼다. 그
리고 묻고 답하는대로 기록하여 그것으로 「감통전기 (惑通傳記)」 라는 책을 만들었다.
건봉 2년 (乾封:667) 봄 2월에 천신이 나타나 율사의 이제 과보가 다하려 하니 아마 미륵
궁에 날 것이라고 알렸다. 그리고는 향 한봉지를 남겨두면서, 제석천왕이 사루는 천상극림향
(天上棘林香) 이라고 하였다. 그해 시월 초사흘, 하늘에서 하늘 음악이 울리며 꽃과 향기가
가득히 내려와 율사를 청해 맞이하니 서거하셨다. 「별전등기 (別傳等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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