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돌배나무 무위 (無爲) 를 본받다 / 사암 엄 ( 庵嚴) 법사
사암 엄 ( 庵嚴:1020~1101) 법사는 경시 (脛試) 를 거쳐서 출가하여 동산 신조 (東山神
照)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신조선사는 큰그릇이라고 여겨 ꡒ우리 종문에 사람을 얻었으니
앞으로 종문이 실추되지 않겠구나" 하면서 그를 윗자리에 앉혔다.
법사는 단지 경을 강하는 것만을 제일로 치지 않고, 말을 하거나 묵묵히 있거나, 모든 처신
을 반드시 법도에 맞게 하였다. 당시 법진 (法眞:법진 처함) 스님이 지관 (缺觀) 의 부사의
경 (不思議境) 을 물으니 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ꡒ만법은 오직 한 마음일 뿐이어서 마음 밖에 별다른 법이 없는데 이 마음법 〔心法〕 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을 묘삼천 (妙三千) 이라 합니다."
얼마 있다가 법진스님이 동액 (東:궁궐 안에 있는 절) 으로 거처를 옮기며 주지를 사임하게
되자, 법사에게 명하여 뒤를 잇게 하니 법사가 말하였다.
ꡒ옛날 지자 (智者) 대사는 나이 50이 되기 전에 문도대중을 흩어버렸고, 사명 (四明) 대사
는 40이 되자 장좌불와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늙어서 한가하게
주지를 맡겠습니까."
그리하여 끝내 받지 않고 영취산 동쪽 봉우리에 은거하였는데, 그곳에 아기위나무가 한그루
있어 그 옆에 암자를 짓고 「사암 ( 庵) '이라 이름하였다. 암자의 기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ꡒ내 나이 60에 산에 돌아와 암자터를 잡았다. 암자가 다 되어 그 속에서 요양이나 하고
지내면서, 그렇다고 세상살이를 지나치게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암자 서쪽에 아가위나
무 한그루가 있어 그 이름을 따서 암자 이름을 지었는데, 아가위란 맛이 좋다고 이름난 과
실도 아니고 배나 밤에 비하면 부끄럽게 생겼다. 그러나 배는 그 시원한 맛 때문에 칼에 베
어지고 밤은 그 단맛 때문에 입에 씹히게 되니, 설혹 배와 밤에게 식성 (識性) 을 부여해서
그들 스스로 쓸모없는 곳에 있게 해달라고 해도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 아가위는 돌배의 종류에 속하는 것이어서 비록 향기는 있어도 맛이 떫다. 억지로
씹으려해도 향기로는 배를 채울 수 없고 떫은 맛은 입을 상쾌하게 할 수 없으니, 삼척동자
라도 이것을 찾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려 스스로 만족하는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 사람은 지혜 때문에 자기 뼈를 고단하게 하고 아가위는 떫은 맛 때문에 그몸이 편안하
니, 지혜와 떫은 맛 중에 어느것이 참된가? 나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아가위와 이웃이 되었
다."
법사는 몸에 필요한 물건이라고는 오직 작은 발우 하나 뿐이었고, 아침 점심의 밥은 오직
세가지 흰것 〔三白:밥과 무우와 소금〕 뿐이었다. 이렇게 혼자 살기를 20년, 문을 닫고 좌
선하니 세상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계율의 조목들은 경중을 막론하고 똑같이 지켰으
며, 생활용구는 문빗장 같은 자질구레한 것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게 하였다. 그리고 적막함에
자족하며 오로지 정토에 왕생할 것을 기약하였다.
하루 저녁은 꿈에 못에서 큰 연꽃이 피어나고 하늘 음악이 사방에서 줄지어 들려왔다. 법사
는 ꡒ이것이 내가 왕생할 정토의 모습이다" 하였는데, 그후 7일만에 과연 돌아가셨다.
「행업기 (行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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