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1. 화장 명수좌(華藏明首座)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1:02
 




대혜종고의 스승이며 [벽암록]의 저자인 원오 극근선사의 편지글.



1. 화장 명수좌(華藏明首座)에게 주는 글



곧바로 보여주는 조사선에 어찌 샛길을 용납하리오. 여기서는 향상인(向上人)만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그들은 듣자마자 곧 들어 보이고, 뽑아들자마자 당장 행하니, 설사 밝은 눈으로 엿본다 해도 벌써 바보짓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모서리를 들어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모서리를 돌이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 상대하지 않겠다"라고 하였으니, 하나를 들면 나머지 셋을 알고 눈대중으로 아주 작은 차이를 알아내어 수레바퀴가 데굴데굴 굴러가듯 전혀 막힘이 없어야 '향상의 수단을 쓴다[提持]'고 할 수 있으리라.



듣지 못하였는가. 양수(良遂)스님이 마곡(麻谷)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뵙자마자 마곡스님은 방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그가 의심을 품고 있다가 두번째 다시 찾아뵙자 이번에는 마곡스님이 채소밭으로 휙 가버렸다. 그러자 양수스님은 단박에 깨닫고 마곡스님에게 말하였다.



"스님!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스님을 찾아와 뵙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12부경론(十二部經論)에 속아서 지낼 뻔 하였습니다."



이처럼 했던 것을 보건대, 그는 참으로 힘을 덜었다[省力]하겠다. 양수스님은 되돌아와서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이 아는 것을 나는 모조리 알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여러분이 모르리라" 하였다. 양수스님이 안다 한 것은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경계로서,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겠으니 진짜 사자라 할 만하다. 그 집안의 종지를 잇는 법손이 되려면 반드시 그의 경지를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달마(達摩)스님이 양(梁)나라에 갔다가 위(魏)나라로 가서 낙초자비(落草慈悲)로 사람을 찾으며 소림(少林)에서 9년을 홀로 앉아 있었다. 이때 깊은 눈 속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마지막에 "무엇을 얻었느냐"고 묻자 다만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 가 서니 마침내 "골수를 얻었다"는 말이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는[守株待兎] 무리들 이 앞을 다투어 '말없이 절하고 제자리에 선 것을, 골수를 얻은 심오한 이치라고 여기에 되었으나 그들은 칼 잃은 자리를 뱃전에 새겨놓고 나중에 칼을 찾는 격[刻舟求劍]이 되었음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이런 자들이야말로 칼 잃은 자리를 배에다 새기는 자들이니 꿈엔들 달마스님을 뵐 수 있겠는가.



진정한 본색도류(本色道流)라면 반드시 정견(情見)을 벗어나서 별도의 생애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니, 결코 썩은 물 속에서 살아날 계책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 집안의 가업을 계승 하리라. 여기에 이르러서는 옛부터 내려오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른바 유하혜(柳下惠)의 일을 잘 배우면 결코 그의 자취를 본받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옛사람은 말하기를, "한 마디 합당한 말은 만 겁에 노새 매는 말뚝이라네" 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옳다 하겠다.



유(有)를 타파한 법왕(법왕: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셔서 중생의 욕구에 따라 갖가지로 법을 설하시나, 그 설법은 모두 방편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집착과 의심을 부수고 알음알이와 미루어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집착과 의심을 부수고 알음알이와 아견(我見)을 부숴주기 위해서이니, 그 많은 악각악견(惡覺惡見)이 없다면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시지도 않을 터인데, 하물며 갖가지 법을 설한 까닭이 있겠는가.



옛사람은 종지를 체득한 뒤에는 깊은 산 초막이나 돌집 속에서 다리 부러진 솥에 밥을 해 먹으며 10년이고 20년이고 지냈다. 그리하여 세상사를 모두 잊고 티끌세계를 영원히 떠났었다. 요즈음 시대엔 감히 그와 같기를 바라지는 못한다 해도 명예와 자취를 버리고 본분을 지켜 오로지 도에 순숙한 노납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몸소 깨달은 바를 자기 역량에 따라 쓰면서 지난 업을 소멸하고 오래도록 익혀온 습성을 녹여야 한다. 이렇게 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반야의 인연을 맺어주고 자기 근본이 익어지도록 연마해야 한다. 비유하면 거친 풀숲을 헤치고 온개 도인, 반개 도인[一個半個]을 얻은 것과 같은 것이니, 그리하여 불법이 있음[有]을 같이 알고 생사를 함께 벗어나야 한다. 미래세가 다하도록 이렇게 하여 부처님과 조사의 깊은 은혜에 보답해야만 한다.



설사 인연이 무르익어 부득이 세속에 나와 인연 따라 사람과 하늘 중생들을 제도하더라도 결코 무엇이라도 구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하물며 부귀하고 세력있는 이들과 결탁하여 세속에 물들고 아부하는 그런 스님들의 행동거지를 본받아 범부와 성인을 속이는 짓을 하라. 나아가 구차하게 잇속과 명예만을 탐내어 무간업을 지어서야 되겠는가! 설사 깨달을 계기는 없다 해도 이처럼 세상을 살다가다 보면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일은 없으리 니, 참으로 번뇌의 세계의 벗어난 아라한(阿羅漢)이라 할 수 있다.



한 스님이 천황(天皇道悟)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계(戒)·정(定)·혜(慧)입니까?" 하자 천황스님이 말하기를, "여기 나에겐 그런 부질없는 살림살이는 없다"고 하였다. 또 덕산스님(德山宣鑑 : 782∼865)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덕산스님은 "부처님은 서천(西天)의 늙은 비구다"하였다. 또 석두스님(石頭希遷)에게 "무엇이 도입니까?"하고 묻자, "벽돌이니라"하였다.



한 스님이 운문(雲門文偃)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불조(佛祖)를 초월한 이야기입니까?"하자 "호떡이지"하였고, 또 조주(趙州)스님에게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하였다. 또 청평(淸平)스님에게 "무엇이 유루(有漏)입니까?"물었더니, "나무국자"라고 하였으며, 삼각(三角)스님에게 "3보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쌀, 조, 콩"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모두는 지난 날 본분종사(本分宗師)가 실제의 경지를 몸소 밟아보고 본분자리에서 자비를 베푼 말씀이다. 그런데 그 스님들의 이런 말들만 뒤쫓는다면 은혜를 저버리는 짓이 될터이고 그렇다고 그 스님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금강정안(金剛正眼)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귀결점을 알 수 없으리라.



이 선문(禪門)에서는 홀연히 벗어나 깨쳐야지, 애초부터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 주어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캄캄한 봉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이근종성(利根種性) 맹팔랑(孟八郞)이 하루아침에 단박에 깨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