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3. 함께 부치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1:07
 





3. 함께 부치는 글



예로부터 성현은 격량(格量)을 초월하여 걸출하였습니다. 그들은 대근기(大根器)를 심어 이 큰 인연을 홀로 깨치고 자비원력으로 '바로 가리키는 도'를 폈습니다. 만유가 한 몸인 지극히 깊고 묘한 이 일[一段事]은 단계를 세우지 않고 단박에 뛰어넘어 홀로 증득하는 것입니다.



공겁(空劫) 이전으로부터 담담히 요동하지 않고 뭇 생령의 뿌리가 되며, 고금을 통하여 사려가 끊겼으며 범부와 성인을 벗어났고 알음알이[知見]를 뛰어넘었으며, 애초부터 움직이지 않고 확연히 드러난 채 살아 움직여, 바로 지금 모든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다 그것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시자마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크게 포효하여 대뜸 드러내 보이셨고, 다음으로는 밝은 별을 보셨으며, 마지막에는 꽃을 들어 보이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것을 알아차릴 바른 안목을 갖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 그로부터 서천의 28대와 중국의 6대 조사도 그것을 가만히 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줄을 모르는 자들은 뭔가 신통묘용이 있을 것이라 여겨서 말을 가지고 지류만을 좇을 뿐 애초에 그 근본을 밝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이부마(李駙馬)가 석문(石門)스님을 뵙자 석문스님은, 이 대장부의 일은 장수나 재상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부마는 바로 깨닫고 게송을 지어 자기 뜻을 진술하였습니다.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무쇠로 된 놈이라야 하리니

착수하는 마음에서 결판내도록 하라

곧바로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려거든

일체의 시비에 상관하지 말라.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趣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지혜롭고 영리한 상근기는 천기(天機)를 이미 갖추었으므로 그저 확실하게 깨닫기만을 힘쓸 뿐입니다. 그것을 쓸 경우에는 대기(大機)를 거머쥐고 대용(大用)을 발휘하여 기미보다 앞서 작동하고 사물을 끊어버리고 변통합니다.



암두(巖頭)스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물을 물리치는 것이 상급이고, 사물을 좇는 것은 하급이다. 전쟁으로 비유해 보면 개개의 능력은 변통하는 데에 달렸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빠르게 변통할 수 있다면 모두가 자기 발아래 있게 되고 자기 손아귀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잡고 놓고 말고 폄이 모두 중생교화라 할 것이며, 늘 편안하고 고요하게 제자리에 거처하면서 실 끝만큼도 마음에 거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움직여 기연에 감응할 때도 저절로 바탕[璿璣]을 잡아, 회전변통함에 대자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무리와 인연들을 모두 칼 휘두르는 대로 베어나니, 온통 파죽지세여서 바람 부는 대로 쏠립니다. 그러므로 서 있는 그 자리가 진실하면 작용할 때도 힘이 있습니다. 나아가 영웅을 몽땅 거느리고 호랑이 같은 군사를 휘몰아 큰 도적을 물리치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사직을 편안히 하고 중흥의 대업을 보좌함도 모두가 이 하나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위의 관건을 열어젖힘은 만세토록 없어지지 안을 공(功)이므로 옛부처님과 같이 보고 같이 들으며, 함께 알고 함께 쓰는 것입니다.



사조(四組)스님은 "마음이 아니면 부처를 묻지 못한다"하였고, 덕산(德山)스님은 "부처는 하릴없는 사람일 뿐이다"하였고, 영가(永嘉)스님은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담하니, 찾으면 그대를 아나, 볼 수 없도다"하였으며, "무위진인(無位眞人)이 항상 얼굴로 드나든다"고 한 이 모두가 이런 부류입니다.



지금 추밀대승상(樞密大丞相)께서는 이미 말 밖에서 알아차리고 소리 이전에서 깨달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괜스레 군더더기를 붙여 허물을 드러냈을까 걱정이오며, 크신 자비로 외람이 살펴 보아달라는 청을 받잡고, 이로써 마침내 노농(老農), 노포(老圃), 노마(老馬)의 지혜를 잊고 부끄러운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