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융지장(隆知藏)에게 주는 글
조사가 나오신 뒤로, 바로 가리킴만을 오로지 전하는 데 힘썼을 뿐, 사람을 물에 띄우고 진창으로 이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표방과 격식을 늘어놓는다면 바보짓이다. 석가부처님이 3백여 차례나 법회를 하시고 근기에 따라 교화를 베풀고 세상에 나와 모범을 보이신 것은 아마도 노파심에서 나온 번거로운 말씀들[周遮]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끝에 가서는 요점만을 가지고 최상근기를 제접하셨던 것이다. 가섭으로부터 28대 조사까지 기연에 따른 관문[機關]을 보여준 일은 적고 이치를 설명한 적이 많았으나, 법을 부촉해 줄 때 가서는 언제나 직접 대면하여 받아 지니지 않음이 없었다.
예컨대 찰간대를 거꾸러뜨리고 사발 물에 바늘을 던지며, 원상(圓相)을 보이고, 승리의 붉은 깃발을 잡으면 밝은 거울을 잡고 무쇠말뚝처럼 전법게(傳法偈)를 설하였다.
달마스님이 6종(六宗)으로 외도(外道)를 규정짓자 천하가 태평하여 '나는 하늘이고 너는 개다'로 낙착됐으니, 이는 헤아리고 따져서는 알 수 없는, 민첩한 신기(神機)이다. 마침내 양(梁)나라에 갔다가 위(魏)나라로 가서는 또다시 부처님 교설밖에 따로 행하고 오직 마음[心印]만을 전하는 도리를 말씀으로 드러내보였다. 6대에 걸쳐 가사를 전하며 지적한 도리가 분명하였고, 조계대감(曹谿大鑑)스님에 이르러선 언설에도 통하고 종지에도 통함을 자세하게 드러내보였다.
오래도록 이렇게 지내오자 바른 안목을 갖추어 크게 해탈한 종장들이 격식을 변동하고 막힌 길을 틔웠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름과 모습에 걸리거나 이론과 말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우뚝하게 살아있어서 씻은 듯 자유로운 묘한 기틀을 내 놓았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방(棒)을 휘두르고 할(喝)을 내지르며, 말로써 말을 무찌르고 기틀로 기틀을 빼앗으며, 독으로 독을 쳐부수고 작용으로 작용을 타파함을 보게 되었다.
때문에 700여 년을 흘러오는 동안, 파가 갈리고 저마다 호호탕탕하게 자기 가풍을 드날려 그 종극점을 알 수 없었으나, 그 귀착점을 논할진댄 직지인심(直指人心)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자리가 밝아지면 실낱만큼도 막힘과 장애가 없어서, 지고 이김, 너와 나, 옳고 그름 등의 지견(知見)과 알음알이를 버리고 크게 쉬어버린 안온한 데에 도달하거늘, 여기에 어찌 두 가지 이치가 있으랴.
이른바 "모든 시냇물은 제각기 흐르지만 바다로 다 함께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요컨대 원대한 식견을 갖춘 향상(向上)의 근기라야 불조의 뜻과 기개를 이을 수 있다. 그런 뒤에야 조실의 문지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철저하게 믿어서 곧장 붙들어 잡아야 비로소 인가를 받고 본분의 가풍을 감당할 만하리라. 이 밖에 부디 비밀스럽고 보배로이 잘 간직하여 말을 삼가하고, 쉽게 놓아 지내지 말라.
오조(五組)스님은 평생 고고하고 준엄하여 인가한 사람이 적었다. 무미건조하게 우뚝 서서 이 하나[一著子]만을 의지하며 항상 말하기를, "한 무더기 수미산을 의지하듯 하라"하였는데, 어찌 허튼 농담과 우스개일로 사람을 속이는 데 떨어졌겠는가. 아무 맛없는 생철 맛을 학인들에게 들이밀어 씹게하여 반드시 통 밑이 쑥 빠진 듯한 데에 이르러야 그 많은 악지악견을 떨어주고, 가슴엔 실낱만한 것도 남겨 두지 않아 투철하게 깨끗해야만 비로소 손을 써서 단련시키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주먹질과 발길질을 그만두었다.
그런 뒤에 금강왕 보검으로써 그가 과연 실천하고 감당할 수 있는지를 헤아려 보았다. 아무 일도 없이 깨끗하여 산은 산, 물은 물이게 되면 다시 모든 성인이 가두어도 머물지 않을 저쪽으로 옮겨가도록 하여, 옛부터 조사들이 깨닫고 전수해왔던 정법안장(政法眼藏)에 계합하게 하였다. 나아가 중생들을 위해 응용할 경우에는 농사꾼의 소를 몰고가버리고 주린 사람의 음식을 빼앗아서 완전함을 얻어 조금도 실수함이 없음을 증득해야만 바로 본분의 도류(道流)인 것이다.
마갈타국(摩竭陀國)에선 몸소 이 법령을 시행하였고, 소림의 9년 면벽(面壁)에선 바른 종지를 온전히 제창[全提]다. 그러나 뒷 사람들은 뚝 끊겨 말 없는 것으로써, 우뚝한 만길 벼랑같아 터진 틈도 없고 더듬어 볼 수도 없는 경계라고 잘못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본분사를 전혀 잘못 알고 알음알이를 가지고 제멋대로 헤아리면서 문득 높은 견해인 양 여긴 것이니, 이야말로 큰 병통이다. 예부터 내려온 이 일은 본래 이런 적이 없었다. 암두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목전에 드러난 바로 이것은 부싯돌 불이나 번뜩이는 번갯불과 같다. 만약 밝히지 못했다면 의심하지 말라. 이는 향상인의 경계로서 그런 것이 있는 줄을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조주스님이 "차나 마시게"했던 것과 비마스님이 나무집게를 들었던 것과 설봉스님이 나무공을 굴렸던 것과 화산스님이 "북 두드릴 줄 아는군"했던 것과 구지스님의 한 손가락과 귀종(歸宗)스님이 연자방아 돌린 일과 현사스님이 (영운스님을)깨닫지 못했다 한 것과 덕산스님의 방망이와 임제스님의 할이 모두 철두철미하게 알음알이[葛藤]를 뚝 끊어버린 것이다.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이 천차만별한 갈등들을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니, 사람에게 끈끈한 것을 떼어주고 결박을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는 이가 있다면 곧 본분수단[本分草料]을 노새 젖 열 섬에, 사자 젖 한 방울을 타면 모두가 흩어져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요컨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전수해 받아 면면히 계속 멀리 잇고자 할진댄, 부디 인정을 따르지 말고 쉽다고 여기지도 말지니, 이것이 바로 단적인 뜻이니라.
"마지막 한마디에 비로소 견고한 관문에 도달한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진실한 말씀이다.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 정인(正印)을 지님이 모두가 이러한 시절이니, 향상의 문빗장을 밟은 자라야만 바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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