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117. 선자(禪者)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5:47
 





117. 선자(禪者)에게 주는 글



달마조사는 이 땅에 대승의 근기가 있음을 보셨기 때문에 천축으로부터 오시어 교(敎) 밖의 종지를 전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말이나 문자를 세우지 않았으니 아마도 말이나 문자는 지말적인 일로서 여기에 집착해버리면 확연하게 깨닫지 못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집착도 타개하고 현묘함마저도 버렸으며, 전광석화와 같이 견문을 떠나고 생각의 밖으로 벗어났다. 한 생각도 내지 않고 곧바로 6근, 6진을 꿰뚫어 각자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 하나의 큰 인연을 알아차려 분명히 깨닫도록 하였다.



문득 홀로 벗어나 한 물건에도 의지하지 않고 시방허공을 들이마시기도 하고 토해내기도 하면서 고요하고 잠잠하여 본래의 오묘한 마음을 깨닫게 하였다. 이 마음은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법을 낼 수 있으니, 오직 오랜 세월 이전부터 익혀온 사람은 들먹여 주기만 해도 대뜸 그 귀결점이 다시 딴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전체 부처가 바로 중생이며, 중생과 부처가 둘이 없이 한결같이 청정하고 텅 빈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어찌 이익과 손해, 잘잘못, 마음에 들고 안듬, 좋고 싫음, 길고 짧음이 있으랴. 유위(有爲)와 유루(有漏)는 허깨비 같고 꿈과 같아 끝내 한 티끌 만큼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재지(才智)를 갖춘 역량이 있는 사람은 단박에 일념의 진정한 보리심을 발현하여, 여러 인연에 끄달리거나 부귀영화에 얽매지 않아서 움쩍했다 하면 오랜 세월토록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머리를 묻고 앞으로 전진하면서 이것만을 생각하고 회광반조하여 옛날 위음왕불 저쪽, 모든 인연의 근본을 분명히 살핀다. 꿰뚫어 보기만 하면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 하루내내 다시는 놓아버리지 않고 단박에 철저히 깨치니, 이로써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성품이 원래 고요하고 순일하며 자비롭고 선하여 이런저런 잘못된 지견이나 깨달음이 없으며, 게다가 계속 면면히 참구하니 어찌 훌륭하지 않으랴.



옛사람은 모든 사물에서 알아차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저 아침으로부터 저녁까지 “이것이 무엇일까” 하면서, 생각 생각에 잘 살펴서 마음 마음에 머무름이 없어야 한다. 오래도록 푹 익어지면 빛을 보매, 일체법은 공(空)해서 실체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이 한 마음만이 고금에 뻗쳐 생사를 투철하게 벗어나게 된다. 이 도를 배우는 사람이 그 관문을 뚫지 못하면 망정과 알음알이 속에 있으면서 부딪히는 것마다 막히게 된다.



그러나 만일 모든 망정을 부숴 없애 가슴 속에 티끌만한 그 무엇도 간직하지 않으면 자연히 칠통팔달하게 도리라. 다만 긴시간 끊임없이 모두 없애버리면 청정하다는 생각과 성스럽다는 생각도 오히려 있을 수가 없는데, 어찌 하물며 망정에 끄달려서 착하지 못한 일들을 할 수가 있으랴!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이끌어 주어서  더욱 향상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미래에 한 마리의 소가 포효하는 땅에 선지식이 있어, 서로서로 격려하고 함께 수행하면서 이 오묘한 도를 체득하리라고 수기(授記)하셨다. 경청(鏡淸)스님은 “너희들은 모름지기 하루 종일 모든 시간을 부린다” 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물을 굴릴 수 있다면 바로 여래와 같으리라” 하셨다.



이미 오랫동안 결심을 간직하였다면 힘써 전진하면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 그저 한가히 마음속에 한 물건도 남기지 말고 곧장 무심한 사람이 되어, 마치 어리석은 사람처럼 해서 훌륭하다는 생각조차 내지 말아야 한다. 항상 잘 기르고 길러서 생사란 몹시 한가롭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조주, 남전, 덕산, 임제 등의 스님들과 동등한 견해를 갖추게 되리라. 간절히 바라노니 스스로 보임(保任)하여, 이 남이 없고 함이 없는 큰 안락한 곳에 단정히 거처해야만 하니, 이래야만 매우 훌륭하다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