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감변.시중
스님이 설봉 의존(雪峯義尊: 822∼908)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천태산(天台山)에서 옵니다."
"지자(智者)스님을 뵈었느냐?"
"제가 무쇠방망이 맞을 짓을 했습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문안을 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문 안에 들어오면 무슨 말이 있어야지. 들어왔다고만 해서야 되겠느냐?"
"저는 입이 없습니다."
"입 없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에게 눈을 돌려다오."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은 앞의 말에 달리 말하였다.
"입 생긴 뒤에 말씀드리겠으니 기다리십시오."
장경 혜룡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설봉스님이 땔감을 운반하던 차에 스님의 면전에 한 단을 던지자 스님이 말하였다.
"무게가 얼마나 되던가?"
"온누리 사람이 들어도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던졌는가?"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부채 위에 불(佛)자를 쓰자 운암스님이 보고 거기다 불(不)자를 썼다.
스님이 다시 아닐 비(非)자를 붙였더니 설봉스님이 보고는 한꺼번에 지워버렸다.
흥화 존장(興化存奬: 830∼88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내가 너만 못하다."
백양 순(白楊順)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동산스님이었다면 설봉스님에게 '너는 나의 권속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리라."
천발 원(天鉢元)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과 운안스님은 평지에다 공연히 무더기를 일으켰으며,
설봉스님은 이 일로 지혜가 자라났다."
설봉스님이 공양주(飯頭)가 되어 쌀을 이는데 스님이 물었다.
"모래를 일어 쌀을 걸러내느냐, 쌀을 일어 모래를 걸러내느냐?"
"모래와 쌀, 양쪽 다 걸러냅니다."
"대중은 무엇을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드디어 쌀 항아리를 엎어버리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을 보건대 덕산(德山)에 있어야만 하겠군."
낭야 혜각(낭야慧覺)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의 이런 행동은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던져버리고 산을 찾아 신 오얏을 따는 격이다."
천동 정각(天童正覺: 1091∼1157)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은 걸음마다 높이 오를 줄만 알았고 짚신 뒤꿈치가 끊기는 줄은 몰랐다.
만일 정(正)과 편(偏)이 제대로 구르고 박자와 곡조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면
자연히 말과 기상이 서로 합하고 부자(父子)가 투합했으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이 설봉스님을 긍정하지 않은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만 리에 구름 없으나 하늘에 티끌 있고
푸른 연못 거울 같으나 달이 오기 어렵네."
설두 종(雪竇宗)스님은 말하였다.
"곧은 나무에 난봉(鸞鳳)이 깃들지 않는데
"금침(金針)은 이미 원앙을 수놓았네
만일 신풍(新豊)의 노인이 아니었다면
바로 빙소와해를 당했으리."
스님이 하루는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고 왔느냐?"
"물통(槽)을 찍어서 만들고 왔습니다."
"몇 개의 도끼로 찍어서 완성하였느냐?"
"하나로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이쪽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그대로 손 볼 곳이 없군요."
"그래도 이쪽의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설봉스님은 그만두었다.
분양 선소(汾陽善昭: 947∼1024)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저라면 벌써 궁색해졌을텐데요."
설봉스님이 하직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영중(嶺中)으로 돌아가렵니다."
"올 때는 어느 길로 왔었지?"
"비원령(飛猿嶺)을 따라 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길을 따라 되돌아가려는가?"
"비원령을 따라 가렵니다."
"비원령을 따라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도 아는가?"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모르는가?"
"그에게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대가 모른다면 어떻게 면목이 없는 줄 아는가?"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마음이 덩벙대는 자는 망한다."
'동산록(洞山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3. 감변.시중 (0) | 2008.02.21 |
---|---|
2-12. 감변.시중 (0) | 2008.02.21 |
2-10. 감변.시중 (0) | 2008.02.21 |
2-9. 감변.시중 (0) | 2008.02.21 |
2-8. 감변.시중 (0) | 2008.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