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감변.시중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취미(翠微)스님에게서 옵니다."
"그는 어떤 법문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더냐?"
"취미스님이 나한(羅漢)에게 공양을 하기에 저는 물었습니다. '나한에게
공양을 하면 나한이 온답니까?' 하니, 스님은 '그대가 매일 먹는 것은 그럼
무었이더냐?'하였습니다.
스님은 말하였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더냐?"
"그렇습니다."
"대선지식을 헛되게 참례하지 않고 왔구나."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이냐?"
"도응입니다."
"향상(向上) 자리에서 다시 말해보라."
"향상에서 도응이라 이름하지 못합니다."
"내가 도오(道吾)스님께 대답했던 말과 똑같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화상아! 그대가 뒷날 띠풀집을 짓고 제자들을 맞이할 때 홀연히 누가 질
문하면 어떻게 대꾸하려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스님이 하루는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대화상(思大和尙)이 왜국(倭國)에 태어나 국왕이 되었다던
데 정말 그런가?"
"만일 사대(思大)스님이 맞다면, 부처라 해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은 그렇다고 긍정하였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그 산은 머물만 하더냐?"
"머물만 하질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도성 안이 모조리 그대에게 점령되겠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들어갈 길을 얻었군."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겠는가."
'길이 있다면 스님과 사이에 산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뒷날 천 사람 만 사람이 붙들어도 머물지 않으리라."
스님이 운거스님과 물을 건너던 차에 물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젖지 않을 정도입니다."
"덜렁대는 사람이군."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마르지 않을 정도라네."
오조 법연(五祖法演: ?∼1104)스님은 말하였다.
"두 사람의 이 대화에 우열이 있느냐? 산승은 오늘 팔을 휘젖고 가면서 여러
분을 위해 설파하겠다.
물을 건넘에 '젖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창고에 진주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격이며, 물을 건넘에 '마르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꽂을 송곳조차 없는데 무슨 가
난과 추위를 말하겠는가. *마른길, 젖은 길 양쪽 다 관계치 말고 그저 녹수청산(綠
水靑山)에 맡기게."
운거스님이 하루는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 지렁이를 잘라 죽였더니 스님이
"적( )!"하고 호통을 쳤다.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조(二祖)는 업주(業州)로 갔다는데 어떠냐?"
운거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대천제인(大闡提人: 부처될 종자가 없는 중생)은 5역죄(五逆罪)를 지었는
데 효도고 봉양이고가 어디 있겠느냐."
"비로소 효도하고 봉양하게 되었군요."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과거에 남전(南泉)스님이 「彌勒下生經(미륵하생경)」을 강의하는 스님에
게 묻기를, '미륵은 언제 하생(下生)합니까?'했더니, 그는 '현재 도솔천궁에
계시어 미래세에 하생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남전스님은 '천상
에도 미륵은 없고, 지하에도 미륵은 없다'라고 말하였다."
운거스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질문하였다.
"천상에도 미륵이 없고 지하에도 미륵이 없다니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이
---------------------
* 향엄 지한스님이 대나무에 기왓쪽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치고는 송(頌)을 지었
는데, 위산스님이 듣고 앙산스님에게 '향엄이 확철대오했구나'하셨다. 앙산스님
은 향엄스님의 경계를 확인코자 다른 게송을 지어보라고 하자 향엄스님이 다음
의 게송을 지었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금년의 가난은 송곳마저 없구
나.' 앙산스님은 '여래선은 사제가 알았다고 인정하겠네만 조사선은 꿈에서도 보
지 못하고 있군'하였다.
름을 지어 주었단 말입니까?"
스님이 질문을 받자 선상이 진동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말하였다.
"도옹화상! 내가 운암스님에게 있으면서 그분께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화
로가 진동하듯 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한 번 질문을 받으니 온몸에 땀이 흐
르는구나."
그 뒤에 운거스님이 삼봉(三峯)에 암자를 지었다. 열흘이 지나도 큰 방에
오지 않자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요즈음 어째서 공양(齊)에 오질 않는가?"
"매일같이 천신(天神)이 음식을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이런 견해를 짓고 있
다니 그대는 느지막하게 찾아오게."
운거스님이 느지막하게 찾아오자 스님이 불렀다.
"도응 암주(道膺庵主)!"
"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것이 무엇일까?"
운거스님이 암자로 되돌아가 고요하게 편안히 앉아 있었더니, 이로부터 천
신이 찾아도 끝내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사흘 지나고서야 끊겼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느냐?"
"장(醬)을 담금니다."
"소금은 얼마나 넣느냐?"
"저으면서 넣습니다."
"어떤 맛을 만들지?"
"딱 되었습니다."
'동산록(洞山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4. 감변.시중 (0) | 2008.02.21 |
---|---|
2-13. 감변.시중 (0) | 2008.02.21 |
2-11. 감변.시중 (0) | 2008.02.21 |
2-10. 감변.시중 (0) | 2008.02.21 |
2-9. 감변.시중 (0) | 2008.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