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산 록(祖堂集)
행 록
운암(雲巖)스님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 고안현(高安縣)에 살았다. 스님
의 휘는 양개(良价), 성은 유(兪)씨며 월주(越州) 저기현(諸 縣)사람이다. 처
음에 마을에 있는 절(院, 普利院)의 원주(院主)에게 출가하였는데, 원주는 스
님을 감당하지 못했으나 스님은 싫어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전혀 없이 2년을
지냈다. 원주는 스님의 공손함을 보고 「심경(心經)」을 외우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도 못가서 환히 외워버렸다. 원주는 그 다음 경을 외우라 하니, 스
님이 대답했다.
"이미 외운 심경의 뜻도 아직 모르는데 그 다음 경을 더 배울 필요가 없
습니다."
"이제껏 줄줄 외워놓고 어째서 모른다 하는가?"
"심경에서 꼭 한 구절을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구절이 어디인가?"
"눈.귀.코.혀.몸.생각이 모두 없다(無眼耳鼻舌身意)는 구절을 모르겠으니 스
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원주는 말이 막혔다. 이로부터 이 법공(法公)이 예삿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원주는 곧 스님을 데리고 오설 영묵(五洩 靈默: 747∼818)스님에게로
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말했다.
"이 법공은 나로선 지도하기 어려우니, 스님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오설스님이 허락하니, 스님은 그 아래서 허락을 받고 3년을 지도받고 계를
받았다. 그리고는 모든 법을 다 물은 뒤에 사뢰었다.
"저는 행각을 떠나고 싶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오설스님이 말씀하셨다.
"찾아가서 물으려거든 남전(南泉)스님에게 가서 물으라."
"한 번 떠나면 인연이 다한 것이니 외로운 학은 둥우리로 돌아오지 않습
니다."
그리고는 오설스님을 하직하고 남전스님에게로 갔다.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4)스님이 귀종(歸宗)스님의 재(齋)를 올리면서
법어(法語)를 내렸다.
"오늘 귀종스님을 위해 재를 지내는데 귀종스님이 오겠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자 스님이 나서서 절하고는 "스님, 다시 물어 주십시오"
하여 남전스님이 물으니, "길동무가 있기만 하면 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
다.
그러자 남전스님이 뛰어내려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다.
"비록 후생(後生)이지만 다듬어봄직하겠다."
이에 스님이 말씀하셨다.
"양민을 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이로부터 이름이 천하에 퍼져, 선지식(作家)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나중에 운암 담성(雲巖曇成: 782∼841)스님에게 가서 현묘한 뜻을 모두 알
고는 대중(大中: 847∼879)연간이 끝날 무렵에는 신풍산(新豊山)에 가서 선요
(禪要)를 크게 폈는데, 이때 한 스님이 와서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뵙고자 하는데 어찌해야겠습니까?"
"나이가 비슷하니 걸릴 것이 없다."
학인이 다시 의문나는 점을 물으니, 스님이 대답했다.
"앞의 발자취를 거듭 밟지 않겠으니, 다른 질문을 하나 하거라."
그러자 운거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저는 스님의 본래 스승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상좌(上座)를 시켜 장경(長慶)스님에게 가서 이 이야기를 들어 묻
기를, "어떤 것이 나이가 비슷한 것입니까?" 하라 했더니, 장경스님이 말씀하
셨다.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 그대에게 여기까지 와서 무엇인가를 묻게 하
였더란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남전스님을 뵈었으면서 어째서 운암스님의 제사를 지냅니까?"
"나는 운암스님의 도와 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
을 귀중히 여길 뿐이다."
"무엇이 비로자나불의 스승이며 법신(法身)의 주인입니까?"
"벼 줄기, 조(栗) 줄기다."
스님이 백안(百顔)스님에게 갔을 때 백안스님이 물었다.
"요즘 어디서 떠나왔는가?"
"호남(湖南)에서 떠났습니다."
"관찰사(觀察使)의 성이 무엇이던가?"
"그의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엇이던가?"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밖에 나온 적이 있는가?"
"나와 본 적이 없습니다."
"일을 마땅하게 처리하던가?"
"낭막(郎幕)이 따로 있습니다."
"비록 나오지는 않았으나 일은 바로 처리하는구나."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백안스님은 하룻밤이 지나서야 아직 선
당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물었다.
"어제 그 두스님(頭陀)은 어디로 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저올시다."
"지난밤, 스님을 상대했으나 밤새도록 불안하였으니 불법이 퍽 어려운 것
임을 알겠소. 두타가 여기서 여름을 지내면 나는 두 스님을 모시고 따라야
되겠소."
그리고 대신 대답하기를 청하니, 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너무 존귀하십니다."
운암스님이 원주가 석실(石室)로 떠나려는 길에 말씀하셨다.
"석실에 들어가거든 그대로 돌아와서는 안된다."
원주가 대답이 없으므로 스님이 말했다.
"거기엔 벌써 누군가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운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대가 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인정을 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흡사 물소(解鷄犀)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