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록(洞山錄)

천 화

通達無我法者 2008. 2. 25. 10:40
 





천 화


스님께서 함통(咸通) 10년 기축(己丑: 869) 3월 1일에

머리깎고 가사를 입으시고 종을 치게 하고는 엄숙하게 떠나시니, 대중이 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다시 깨어나 말씀하셨다.

 

"마음을 물건에 두지 않는 것이 출가자의 참 수행이다.

어찌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원주를 불러 우치재(愚痴齋)를 차리라 하니,

원주가 슬피 울면서 재를 차려 7일을 끌었는데 스님께서도 조금씩 잡수시더니,

마지막 날에 말씀 하셨다.

 

"스님네들이 어찌 이다지 못났는가.

큰 길을 떠나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란하고 슬퍼하는가."

 

여드레가 되는 날, 목욕물을 데우라 하여 목욕을 하시고 단정히 앉아서 떠나시니,

나이는 62세, 승랍은 41세였다.

시호는 오본(悟本), 탑호는 혜각(慧覺)이라 하였다.

제자들을 경책하는 게송들이 문도들 사이에 많이 퍼졌으나,


여기에는 수록치 않는다.

정수선사(靜修禪師)는 찬(讚)을 지었다.



  스님께서 동산에 계시니

  5백 대중이 모였네

  눈으로 소리를 들으니

  경계와 반연이 꿈과 같았다.

  시냇가엔 곧은 대

  하늘가엔 상서로운 봉황이라

  세 부처에 속하지 않기에

  나는 이를 애통한다.

  師居洞山 聚五百衆

  眼處聞聲 境緣若夢

  磵泮貞筠 天邊瑞鳳

  不墜三身 吾於此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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