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록(洞山錄)

동산양개화상 사친서(洞山良价和尙辭親書)

通達無我法者 2008. 2. 25. 10:43
 















동산양개화상 사친서(洞山良价和尙辭親書)*



  부모님을 하직하며



  부처님도 세상에 나오실 때는 모두 부모님을 빌어 생명을 받았고, 만물이

생길 때도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는 덕분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

러므로 부모가 아니면 태어날 수 없고 천지가 아니면 자랄 수 없으니, 다 길

러주시는 은혜를 입고 덮어주고 실어주는 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러나 모든 중생과 갖가지 만상은 덧없는 것이어서 생멸을 벗어나

지 못합니다.

  어려서 젖을 먹여주신 정이 두텁고 길러주신 은혜가 깊으니, 돈을 꾸러미

채로 바친다 해도 그 은혜 다 갚기 어렵고, 고기를 봉양한다 해도 그것이 어

찌 오래오래 사시게 하는 길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효경(孝經)」에서는 "날

마다 3생(三牲: 소.염소.돼지로 만든 음식)으로 봉양해도 오히려 불효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영원한 윤회에 들도록 서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끝없는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출가하는 공덕이 최고입니다. 생사애

욕의 강물을 끊고 번뇌의 고통바다를 뛰어넘어 천생만겁 내려오던 자애로운

부모께 보답하고 3계의 네 가지 은혜(恩惠: 부처님.나라.부모.시주)를 다 갚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자식 하나가 출가하면 9족(九族)이 하늘

에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저 양개(良价)는 맹세코 이 생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집에 돌아가지 않

고, 영겁 티끌몸(根塵) 그대로 반야지혜를 활짝 깨치려 합니다. 바라옵건데,

부모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시어 속으로 자꾸만 생각지 마시고 거룩한

정반왕(淨飯王)과 마야(摩耶)부인을 본받으소서. 뒷날 부처님 회상에서 만나

기를 기약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우선 헤어지고자 합니다.

  저 양개는 부모봉양 못했다는 5역죄를 꺼려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

을 기다려주지 않음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몸을 금생에서 구제하

지 않는다면 또 다시 몇생을 기다려 구제할 것인가"하고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데, 부모께서는 저를 잊어주소서. 노래로 말하렵니다.


마음 근원을 깨치지 못한 채 몇해 봄이 지나니

  부평초 같은 세상 그럭저럭 보냄에 한숨만 쌓여갑니다.

  많은 사람이 불법문중에서 도를 깨쳤습니다.

  유독 저만이 세상 티끌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이제 짧은 글을 올려 권속의 사랑을 하직하고

  큰 법을 깨쳐 자애로운 부모님께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눈물을 뿌리면서 자꾸만 애닯게 생각할 것 없이

  애초부터 이 몸이 없었던 듯 생각하소서.


  숲 속의 흰구름은 언제나 짝이 되어주고

  문 앞의 푸른 봉우리는 이웃이 되어줄 것이니

  세상의 물질과 명예를 벗어나고

  인간의 애정을 영원히 떠나렵니다.



  조사의 마음은 말끝에서 그대로 깨치게 하고

  현묘한 이치는 글귀 속의 진실을 꿰뚫게 해주니

  온집안 친척들이여, 만나보고자 한다면

  다가올 정직한 인과(因果)를 기다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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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동산스님이 20세 전후에 쓴 것으로, 「5가어록 」에는 없으나 수행의 귀 

    감이 될 만하므로 여기 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에서 쓰는 현행본 「치문」 

    에 수록되어 있어 널리 알려진 글이나 원래 「치문경훈」에는 실려 있지 않다.  

    번역은 조선 숙종 21년(1695) 백암 성총(栢庵性總)스님이 중간(重刊)한

  「치문집주」의 원문을 저본으로 하였다.




뒤에 보낸 편지



  제가 부모님을 떠나 지팡이 짚고 남쪽으로 내려온 지 벌써 10년이 지나

어느덧 눈앞에는 만리나 되는 갈림길이 막혀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어머님께서는 마음을 거둬들여 도를 바라보고 생각을 다잡아

공(空)으로 돌리소서. 이별의 마음을 머물러 두지 마시고 문에 기대 기다리

지 마소서.

  집안일이란 인연을 따르는 것이어서 갈수록 늘어나 나날이 번뇌만 더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님은 힘써 효도하여 얼음 속에서 고기를 얻어

낼 것이며, * 아우는 힘을 다해 모셔서 서리 속에서 죽순이 나오라고 울 것

입니다.*

  보통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자기를 닦고 효도를 하여 본성(天性)에 합하고,

이 사문(沙門)은 불법문중(空門)에서 도를 바라보고 참선하여 어머님의 은혜





를 갚을 것입니다. 이제 천산만수(千山萬水)에 아득한 갈래길을 만났으니, 여

덟 줄 한 장에 아쉬운대로 마음을 적어봅니다. 노래로 말하렵니다.



  명리를 구하지도 선비가 되고자 하지도 않고

  불법이 좋아서 세속을 버렸으니

  번뇌가 다할 때 근심의 불 꺼지고

  은혜의 정 끊기는 곳에 애욕의 강물 마르리

  6근이 공해진 지혜(六根空慧)가 향기로운 바람에 실려와

  한 생각 생기려 하면 지혜의 힘이 잡아주네

  어머님께 아뢰오니, 슬퍼하며 기다리지 마시고

  죽은 자식이라 없던 자식이라 여겨주소서.




어머니의 답서



내 너와 전생에 인연이 있어 처음 모자로 맺어질 때, 애정을 쏟아부어 너

를 밴 뒤로 아들 낳게 해달라고 부처님과 신령님께 빌었느니라. 임신하고 달

이 차서는 실낱 같은 목숨이었으나 마침내 바람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너를

보배처럼 아꼈으니, 더러운 똥도 냄새난다 하지 않았으며 고생스럽게 젖먹일

때도 고생인 줄 몰랐느니라. 차츰 자라서 공부하러 보내놓고는 조금이라도

돌아올 때가 지나면 문에 기대 바라보곤 했었는데, 보내온 편지에 굳이 출가

(出家)하겠다 하는구나. 그러나 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 어미는 늙었으며,

네 형과 아우는 다들 살림이 가난하니, 내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자식은 어

미를 버릴 마음이 있으나, 어미는 자식을 버릴 뜻이 없느니라. 네가 일단 다

른 곳으로 떠난 뒤에는 밤낮으로 항상 슬픈 눈물을 흘리게 되었으니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구나. 그러나 이제 너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네 뜻대로 하기를 허락하노라.





  나는 네가 얼음에 눕는 왕상(王祥)이나 나무를 새기는 정란(丁蘭)*이 되기

를 기대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네가 목련존자(目連尊者)처럼* 되어서 나를

구제하여 윤회에서 해탈케 하고 나아가 부처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만일 그

렇게 되지 못한다면 무거운 죄를 짓는 것이니, 깊이 새겨 듣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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